티셔츠 한장에 목숨 걸었다···무신사·크림 '명품 전쟁'의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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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국내 최대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국내 최대 리셀(재판매) 플랫폼 크림이 브랜드 티셔츠 판매를 두고 한치의 양보 없는 ‘정·가품 판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품이어야만 사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과 검수로 걸러내야만 사는 리셀 플랫폼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다.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정식 수입 업체가 아닌 병행 수입·구매 대행 등 다양한 공급망을 활용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잠재돼 있던 갈등이 터졌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티셔츠 한장이 불러온 나비효과

피어오브갓 세컨브랜드 에센셜의 티셔츠. [스톡엑스 캡처]

피어오브갓 세컨브랜드 에센셜의 티셔츠. [스톡엑스 캡처]

논란은 한 소비자가 무신사 부티크에서 산 ‘에센셜’ 브랜드의 티셔츠를 되팔기 위해 리셀 플랫폼 크림에 올리면서 시작된다. 해당 제품은 미국의 럭셔리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피어오브갓’의 세컨드 라인인 ‘에센셜’의 ‘3D 실리콘 아플리케 박시 티셔츠’로 발매가는 40달러(약 4만8000원)다.

재판매 플랫폼인 크림은 업로드된 제품이 진품인지 가품인지를 판단하는 검수를 진행한다. 그 결과 업로드된 에센셜 티셔츠가 가품이라고 판정,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공지를 지난달 18일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유통업체인 무신사의 브랜드 씰이 노출되자 무신사가 발끈하고 나섰다. 무신사는 지난 22일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해당 제품은 100% 정품이라는 에센셜의 공식 판매처인 미국 유통업체 팍선의 확인을 받고, 주문해 온 영수증을 첨부했다. 한국명품감정원, 레짓 체크 바이씨에이치 등 국내외 감정 업체의 의뢰 소견까지 담았다.

하지만 다음날인 23일 크림이 이에 대한 재반박 공지문을 올렸다. 크림은 거의 영업 기밀 급에 해당하는 정·가품 구별 포인트를 세부적인 사항까지 공개하면서 해당 에센셜 티셔츠가 가품임을 다시 한번 주장했다. 해당 제품을 3000건가량 검수한 자체 데이터, 같은 리셀 플랫폼인 중국 ‘나이스’와 일본 ‘스니커덩크’에 의뢰한 결과, 감정서비스 ‘레짓 체크 바이씨에이치’에 의뢰한 결과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크림이 지난달 18일 가품 에센셜 티셔츠 거래 주의 당부를 공지하며 올린 가품 예시. [사진 크림 홈페이지]

크림이 지난달 18일 가품 에센셜 티셔츠 거래 주의 당부를 공지하며 올린 가품 예시. [사진 크림 홈페이지]

“공산품 개체 차이” VS “검수 시스템 문제없어”

22일 공식 입장문에서 무신사는 “상품의 개체 차이가 정·가품 판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상품에 대한 정·가품 판정은 상표법상 브랜드 제조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무신사는 에센셜의 공식 유통사인 팍선을 통해 직매입했으므로 가품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2일 무신사가 공식 판매처에서 판매되는 제품 사이에서도 개체차 발생한다며 올린 반박 자료. [사진 무신사 홈페이지]

22일 무신사가 공식 판매처에서 판매되는 제품 사이에서도 개체차 발생한다며 올린 반박 자료. [사진 무신사 홈페이지]

에센셜은 국내에 정식 진출하지 않은 미국 브랜드다. 현재 공식 유통 채널인 팍선, 센스, 미스터포터 등 세 곳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무신사가 가장 힘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주장은 팍선 측으로부터 “100% 정품이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점이다.

무신사가 에센셜 공식 판매처인 팍선으로부터 제품을 주문했다는 증거. [사진 무신사 홈페이지]

무신사가 에센셜 공식 판매처인 팍선으로부터 제품을 주문했다는 증거. [사진 무신사 홈페이지]

크림은 브랜드 사가 아니면 정·가품 판정을 할 수 없다는 무신사의 주장에 대해 “소비자 보호를 위한 리셀 플랫폼 사업자의 정·가품 판별 노력을 의미 없는 활동으로 폄훼하는 것”이라며 유감 입장을 밝혔다. 크림은 “생산 시기에 따른 라벨 및 내부 봉제의 형태의 차이는 가품 판정의 중요한 근거”라며 “위조품과의 확실한 차이를 위해 시즌별로 봉제 형태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하는 브랜드가 상당수 있다”고 주장했다.

23일 크림이 영업 비밀급의 검수 노하우까지 공개하면서 가품 이슈 재점화. [사진 크림 홈페이지]

23일 크림이 영업 비밀급의 검수 노하우까지 공개하면서 가품 이슈 재점화. [사진 크림 홈페이지]

유통 단계 늘어날수록 ‘정품’ 확신 어려워

업계에선 이번 무신사와 크림 간 논란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수요는 늘어났는데 공급할 물건이 적다 보니 정식 수입 업체가 아닌 병행 수입·구매 대행 등 다양한 공급망을 활용하면서 자연스레 정·가품 이슈가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온라인 명품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 업체들이 아무리 정품을 싸게 많이 공급하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제품을 다양한 유통 경로로 확보하는 과정에서 가품이 섞일 수밖에 없도록 구조가 짜여있다”고 지적했다.

누구도 정확히 정·가품을 판별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논란에서도 크림은 검수 경험치, 즉 데이터를 내세웠다. 무신사는 국내외 명품 감정원을 활용하는 등 판별 방법의 차이를 보였다. 에센셜의 모 브랜드인 ‘피어오브갓’의 확인까지 시간이 걸리고, 사실상 브랜드 평판 하락 등의 이슈로 확인해 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일각에선 브랜드 상품도 공급망에 따라 제작 여건 다르며 개체차가 확연하기 때문에 정·가품을 제품 상태로 판별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어오브갓 같은 작은 브랜드의 경우 수요 몰리면 제작 공장이 다양해지고, 이에 따라 정교한 제작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공산품이라도 제작 여건에 따라 개체차가 확연하다면 품질 논란 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커지는 명품 시장에 온라인 업체들 속속 가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현재 국내 온라인 명품 업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7.2% 증가한 1조7475억원으로 추산된다. 국내 전체 명품 시장의 11%에 달하는 수치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흐름을 타고 온라인 명품 판매 업체들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기존 패션 유통 업체들도 명품 특화 온라인 몰을 여는가 하면 트렌비·머스트잇·발란 등의 플랫폼 사들도 활약하고 있다. 여기에 크림·솔드아웃 등 리셀 업체들도 가세했다.

이런 가운데 오픈마켓 형태로 운영되는 플랫폼 회사들의 관리·감독 문제도 생기고 있다. 최근 모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한 명품 판매 업체가 수입 신고시 제품 가격을 낮춰 신고하는 언더밸류(under value·저가 신고) 방식으로 소비자가 낸 세금을 편취하는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해당 플랫폼 측은 “파트너사의 법령 위반이 발생할 경우 이용정지, 계약 해지 등의 패널티를 부과해 재발을 방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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