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청와대 춘추관의 까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청와대 춘추관에 내려앉은 까치. 대통령과 국민 간의 활발한 소통은 언제 가능할까. [사진 김녕만 작가]

청와대 춘추관에 내려앉은 까치. 대통령과 국민 간의 활발한 소통은 언제 가능할까. [사진 김녕만 작가]

까치 한 마리가 처마 끝에 오뚝하게 서 있다. 최근 열린 김녕만 사진전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서 본 까치다. 까치가 내려앉은 곳은 청와대 춘추관.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일하는 곳이다. 이를테면 청와대와 국민이 소통하는 최전선이다. 윤보선부터 문재인까지 전·현직 대통령 10명의 영광과 추락, 즉 권력 무상을 돌아본 이번 자리에서 김 작가는 까치 사진을 전시장 출구에 걸어 놓았다.

역대 대통령 부침 돌아본 사진전
시인 김수영이 읊은 ‘거대한 뿌리’
이번 대선은 어떤 소식 들려줄까

 김 작가의 의도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길조(吉鳥)의 대명사인 까치가 우리 사회에 즐거운 소식을 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사진집 뒷머리에 이렇게 썼다. “퇴임 이후에도 많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행복한 대통령, 행복한 국민, 행복한 국가를 꿈꾸어 본다”고 했다. 제20대 대선을 아흐레 앞둔 대다수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의 한마디가 시의적절하다. “지구상에 있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숫자는 같다는 말이 있어요.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또 누군가가 절대 권력과 절대 고독 사이에서 5년을 보내게 되겠지요.”
 우리는 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마지막은 대부분 불행했다. 절대 권력을 누린 대가가 너무나 컸다. 장르로 따지면 비극쯤 된다. 그 비극은 대통령 개인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이번 대선의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다. 요즘 여야 없이 권력구조 개편과 정치보복 단절을 부르짖지만 선거가 끝난 뒤 과연 그 약속을 얼마나 충실히 지킬지 의구심 또한 커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안철수 후보가 지난 25일 2차 법정 TV토론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하자”는 코미디 같은 제안을 했을까.
 류승룡 주연 영화에 ‘장르만 로맨스’(2021)가 있다. 사랑의 다양한 색깔을 그린 코미디에 가까운데, 메시지는 제법 웅숭깊다. 특히 남성 사이의 ‘브로맨스’를 소재로 성적 취향의 차이와 인정에 방점을 찍는다. 막판에 등장하는 ‘우주피스’ 공화국이 영화의 주제를 대변한다. 요즘 전란에 싸인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있는 우주피스는 매년 만우절 하루에만 ‘예술가의 나라’가 되는 곳으로, ‘모든 사람은 사랑할(행복할·이해할), 사랑받지 않을(행복하지 않을·이해하지 않을) 권리’를 헌법에 보장하고 있다.
 ‘장르만 로맨스’에 빗대면 지금은 ‘장르만 대선’ 상황이다. 선거가 코앞에 닥치면서 다른 후보에 대한 구애와 막말이 한창이다. 영화와 달리 차이와 수용보다 차별과 배제를 앞세우고 있다. 유세장에서 어퍼컷과 하이킥이 오가더니 지난 25일 토론에선 초밥과 커피가 맞붙었고, ‘빙하 타고 온 둘리’와 ‘이완용이 안중근에게 매국노 하는 꼴’이 충돌했다. 수퍼·하이퍼·울트라급 부조리극이다.
 까치와 까마귀가 싸우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약한 줄 알았던 까치의 전투력이 대단했다. 나무 둥지를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까마귀를 물리쳤다. 승자·패자가 확연하게 갈리는 대선판은 더할 것이다. ‘올(All) 아니면 낫싱(Nothing)’ 식의 승자독식 구조다. 향후 아흐레 동안 승기를 잡기 위한 다툼이 더더욱 격화할 게 불 보듯 환하다.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지만 마지막 기대를 걸어 본다. 여야·후보 간 대립이 더 첨예해졌으면 한다. 그래야 선택 기준도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대선은 지난 5년간 쌓여온 모순과 불만이 폭발하는 순간이 아닌가. 시인 김수영의 표현을 빌린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도 좋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 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 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로 살아오지 않았는가. 마침 내일은 3·1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