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부동산 세금 폭탄에 민주주의·사회연대 무너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수술 시급한 세금정책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못한 정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세금 체계 전반을 망쳐놓은 것”이라고 말하겠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서 보듯 부동산 정책은 효과가 전혀 없었다. 또 한쪽에서는 자식에게 부동산 증여하고 다른 쪽에서는 영원히 내 집 마련 못 하게 된 상황에서 보듯 계층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납세자를 편 가르기를 하고 징벌하는 데서 보듯 민주주의에 반하고,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보편 증세의 길을 막아버렸다.

여기에 행정 무능이 더해진다. 필요한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일단 세금 고지서부터 남발하다 보니 정부의 세수 예측은 세 번이나 틀리는 망신 끝에 60조원을 더 걷었다. 특히 정작 해야 할 근로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은 15년이나 방치하다 보니 40%나 더 걷었다. 부동산 보유세가 너무 낮다고 우기더니 이제는 재산세와 양도세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위가 됐다.

소득세는 역사적으로 치열한 권리 투쟁과 계급 타협의 산물
문 정부의 부동산 증세는 납세자 편 가르고 계층 갈등 조장
정치 논리가 빚은 왜곡된 세금, 지나친 대출규제 바로잡아야
세금과 복지의 선순환 체제로 고령화사회에 적극 대비해야

영국의 첫 소득세, 원인은 나폴레옹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헌법에 납세는 국민의 4대 의무라고 배우면서 자랐다. 하지만 그냥 그렇다니까 외우고 시험을 쳤을 뿐, 왜 그것이 의무인지, 납세의 대가로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납세가 헌법상 국민의 의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국가가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를 요구하며 가렴주구를 해도 헌법상 의무니까 그냥 내야 한다는 뜻일까? 혹은 다른 사람에게는 세금을 안 걷고 나한테만 계속 내라고 불공정한 요구를 해도 헌법상 의무니까 그냥 내야 한다는 뜻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소득세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 소득세의 기원은 영국이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버티기 위해 국민에게 읍소하다시피 해서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소득세에는 ‘나폴레옹을 패퇴시킨 세금’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1799년의 일이다. 전비(戰費)를 충당하기 위한 이런저런 증세 끝에 소득세까지 만들어지자 영국인들은 강력히 저항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세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국가가 세금을 매기기 위해 국민의 경제 행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사생활 침해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영국 재상이었던 윌리엄 피트는 전쟁 기간에만 걷는 시한부 세금이라는 점을 약속하고 간신히 소득세 도입에 성공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됨으로써 지루한 전쟁은 마침내 끝났지만, 영국 정부는 소득세의 달콤한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차일피일 소득세 폐지를 미뤘다. 그러자 영국 하원에는 단 6주 만에 379개의 청원이 밀려들고 마침내 폭동까지 일어나게 된다. 영국 정부는 1816년 약속대로 소득세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영국 의회는 소득세 폐지와 더불어 지난 17년간 걷었던 소득세 관련 모든 문서를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후대에 다시는 소득세 같은 것을 걷지 못하도록 아무 자료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소득세 관련 자료는 런던의 가장 상징적 장소인 올드 팰리스 야드에서 불태워졌다고 전해진다. 올드 팰리스 야드는 영국 의회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잇는 광장이다. 반역자의 공개 처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소득세는 평범한 영국인을 뜻하는 ‘존 불(John Bull)’을 착취한 반역자로 지목돼 공개 처형됐다.

무턱대고 집값 잡기에 나선 정부

소득세가 보편화하고 누진세까지 도입된 것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명 희생과 재정 필요성 때문에 또다시 상층이 양보한 결과였다. 전쟁으로 모든 국민이 목숨을 바치는데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은 세금으로 그 희생에 보답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니 세금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치열한 권리 투쟁과 계급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세금을 멋대로 휘두르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고 사회 구성원 간 연대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부동산 세금은 어떤가. 문 정부 내내 28번이나 시행된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어떻게든 집값을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우리나라의 집값이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조차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부동산 정책을 처음 시행할 때는 집값이 너무 높으니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부는 물론 정부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의 책이나 논문을 봐도 우리의 집값이 다른 나라보다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자료는 찾을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적어도 문 정부 이전까지 한국의 소득 대비 집값은 낮은 편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도시 중에서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은 평균 정도이다. 어느 객관적인 국제 비교 자료를 봐도 한국이나 서울의 집값이 유난히 비싸다는 자료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두 배로 뛰자 정부는 다른 나라 집값도 모두 올랐고 한국은 덜 오른 편이라며 그제야 슬그머니 국제 비교 자료를 들이민다. 그러니 문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주택 가격은 비싼 것인가, 안 비싼 것인가?

부동산 문제를 납세자에게 떠넘겨

집값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의 또 하나의 근거는 부동산 버블의 가능성이다. 버블이 터지면 가계 부채 대란이 일어날 거라서 세금으로 집값을 끌어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부동산 거품만 믿고 대출을 해주고 거품이 터지면 대책 없이 불량채권이 돼버린다면 그건 금융기관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신용평가를 엉터리로 했다는 뜻이다. 대출 액수까지 규제하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건 시장 기능 회복과 건전한 금융 감독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세금 올려서 납세자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다.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세상에 국정 운영보다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치킨값이 오르면 치킨 시켜 먹는 사람들에게 중과세하고, 코로나19가 퍼지면 폐활량이 큰 사람들에게 호흡세를 매기면 되지 않겠는가.

대선 후보 중 어떤 이들은 불로소득 환수를 주장한다. 서구에서는 불로소득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1970년대 이후 뜸해졌다. 불로소득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마다 세계 5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 ‘포천 500’은 이미 1995년에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GE가 매출의 40%를 서비스 산업에서 얻고, 전화기 제조사가 방송국과 경쟁하고, 나이키가 신발을 한 켤레도 직접 만들지 않는 세상에서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선언이었다.

불로소득 환수 주장은 시대착오

이런 세상에서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만 소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세상의 변화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해 발생한 부동산 명목가치의 상승이 불로소득이어서 환수해야 한다면 보유한 주식 가치의 상승이나, 요즘 최대 관심사인 대체불가능토큰(NFT)이나 암호화폐 가치의 상승도 모두 불로소득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증권거래세 폐지를 주장하는 대선 후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불로소득은 환수하고 어떤 불로소득은 조장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모순 때문에 서구에서는 불로소득이라는 말 대신 투자소득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얻은 소득이다. 불로소득 환수와 토지이익배당제 주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조지가 나온다. 125년 전에 죽은 그의 실험적 사상을 따라가기에는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너무나 엄중하다.

세금 걷어 나눠주겠다는 후보, 무턱대고 세금 깎아주겠다는 후보 모두 믿으면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 논리로 극단적으로 왜곡된 세금 체계를 정상화하고 세금과 복지의 선순환을 통해 국민 간의 연대를 회복하고, 무섭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기술 변동 속에서 지속가능한 세금 체계를 설계하는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