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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K방역 대전환에 거는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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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음식점 상인들이 지난 21일 코로나19 영업 제한시간인 오후 10시 이후 영업점 불을 켜고 점등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음식점 상인들이 지난 21일 코로나19 영업 제한시간인 오후 10시 이후 영업점 불을 켜고 점등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종로의 한 횟집 주인이 영업시간 제한에 또 반기를 들었다. 오후 10시 이후에도 음식을 팔았다. 구청은 조만간 고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자영업자의 저항은 처벌 대상이지만 열흘 뒤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당선되면 자영업자의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24시간 영업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정부 잣대로 보면 두 후보 모두 심각한 ‘K방역 불경죄’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두 후보의 약속을 반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 역시 방역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방역은 달라진다.

우리 국민만큼 정부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나라도 드물다. 하루 확진자가 두 자릿수였던 시기에도 야외에서조차 모두 마스크를 썼다. 2명·4명·6명·8명·10명·12명으로 오락가락하는 사적 모임 제한 인원을 열심히 따랐다. 그런데도 상황은 악화했다.

그제도 16만356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누적 확진자도 오늘 300만 명을 넘기게 된다. 이런 와중에 내일부턴 확진자 가족 격리도 중단한다. 감염이 급증하면 방역을 조이고 추세가 나아지면 완화하게 마련이다. 하루 90만 명까지 치솟았던 확진자가 18만 명 정도로 줄자 지난 10일부터 사업장과 점포에서 실내 마스크 의무화를 해제한 미국 뉴욕주가 대표적이다.

대조적으로 우린 감염 추세가 심각해지자 갑자기 방역의 끈을 놓는다. 위중증 환자가 계속 늘고 최근 사망자가 델타 변이 유행 때보다 많아지는 국면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많이 해온 한 의사의 "그냥 다 같이 감염되라는 얘기"라는 해설이 와 닿는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과제가 새로 뽑히는 대통령 앞에 놓이게 된다. 이쯤에서 지난 2년을 돌아보자.

홍보에 치중하고 실무는 엉성 

팬데믹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민 그리고 의료계가 감당할 몫이 있다. 우리는 국민에게 과도한 짐을 안겼다. 김부겸 총리는 지난 25일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마스크 쓰기 등 방역수칙을 생활화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접종 등에 적극 협조해 주셨던 국민 여러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사실이다. 방역패스에 QR코드·안심콜·수기명부 요구를 비롯해 겹겹의 통제를 묵묵히 따랐다. 반면 정부는 매번 준비 부족으로 혼란을 야기했다. 위드 코로나에 들어가던 시점,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는 시기 등 주요 변곡점마다 국민을 위기에 빠뜨렸다. 지금도 진료를 받지 못해 전화와 씨름하는 확진자가 속출한다. 부처 간 불통의 대가를 여러 번 치렀다. 청해부대원 집단 감염 사태가 한 예다.

의료계와의 소통 역시 낙제점이다. 수시로 정책을 바꾸면서 현장과는 먹통이었다. 사상 최악의 위기에 대처할 전문가 인선에까지 ‘코드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감염병 전문가들이 사스·신종 플루·메르스를 겪으며 쌓은 노하우가 사장됐다. ‘보수 정부에서 일한 죄’라는 해석이 나왔다. 편 가르기 본능이 지배하는 구조에선 큰 잘못이 드러나도 문책이 없었다.

희망고문 2년간 통제만 골몰

“우리가 초반에 앞선 건 메르스 경험 덕분”이라는 감염병 베테랑의 우려는 K방역 자랑 욕구 앞에서 무력했다. 신상필벌은 사라지고 자화자찬만 난무했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상황이 닥친 후에야 임기응변으로 틀어막는 행태가 반복됐다.

여기에 ‘희망 고문’까지 얹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계 간담회에서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한 건 2020년 2월 13일이다. 지난해 7월엔 “짧고 굵게”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2년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하루라도 빨리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에서 포로가 된 미군 중 장기 수감을 각오한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곧 특사로 풀려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못 버텼다는 제임스 스톡데일의 증언을 간과했다.

이재명·윤석열 개선 대책 기대

새 지도자는 이런 시간을 되짚어봐야 한다. 새로운 방역 완화가 임기응변이 아닌, 장기 전략이란 신뢰를 줘야 한다. 우리는 당국이 통제에 안 따르는 사람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목격했다. 지난해 12월 경영난에 몰린 카페 주인이 오후 9시 이후 영업을 강행하며 저항하자 경찰이 나서 가게를 압수수색하고 고객 자료까지 가져갔다. 선거가 코앞인 상황에서도 똑같이 대응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열흘 뒤라고 코로나19 상황이 갑자기 호전될 리 없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형사처벌 협박과 희망 고문의 협공에 시달린 지난 2년은 너무 길었다. 어느 하나라도 숨통을 풀어줘야 국민이 버틸 희망을 품게 된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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