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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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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우리는 삶을 얼마나 너절하고 변변찮고 형편없이 영위하고 있는가! 우리 중 대체 누가 이 대가가 하듯 신과 숙명 앞에 나설 수 있을까. 저렇게 탄원과 감사를 외치며, 뼈저린 존재를 내세워 저렇게 위대하게 항거하면서. 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하리라. 다른 모습이어야 하리라. 좀 더 하늘 아래 나무 아래 거해야 할 것이며, 좀 더 묵묵히 혼자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비밀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음악 애호가였고, 문학에도 음악이 주요 키워드였던 헤르만 헤세의 음악 글 모음집이다. 인용문은 에세이 ‘고음악’의 일부. 외딴 시골집에 사는 그가 비 오는 저녁 도시의 고음악회를 다녀온 얘기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미지와 풍경, 스토리를 떠올리는 헤세는 그 음악적 인상을 풍부한 언어로 눈에 선하게 옮겨놓는다. 이 글은 이렇게 끝난다. “느긋하게 마지막 비탈을 올라 모두가 자고 있는 집에 들어서니, 느릅나무가 창문 너머 말을 걸어온다. 이제 나는 기쁘게 쉬러 간다. 다시 한동안 삶을 살아가며 그 운명에 기꺼이 농락당해도 괜찮으리라.”

헤세에게 음악은 ‘순수한 현재’이자 ‘미적으로 지각 가능하게 된 시간’ ‘순간과 영원의 동일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세계의 오묘한 의미가/ 그 노래의 숨결에 계시되었으니,/ 마음은 기쁘게 헌신했고/ 모든 시간은 현재가 되었다.’ 시 ‘플루트 연주’의 마지막 행이다.

시 ‘3성부 음악’의 마지막 행도 옮겨본다. ‘세상은 밤이고 두려움이니/ 너 없다면, 나 없다면, 너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