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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선과 우크라이나 사태 틈탄 북한 미사일 도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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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발사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발사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발 수위 점점 더 높일 가능성

북한 오판 막는 데는 여야 없어

북한이 어제 아침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올해 들어서만 여덟 번째다. 지난달 30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를 발사한 뒤 베이징 겨울올림픽 기간 동안 잠시 멈췄던 미사일 도발을 28일 만에 재개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제안이나 미국의 대화 제의를 일축하고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 능력, 즉 핵무기 투발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다. 앞으로 한층 더 도발 수위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의 도발이 한국의 대통령선거 및 새 정부 출범, 외부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정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과 시기적으로 겹친다는 점이다. 북한으로서는 일련의 국제 정세 흐름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날로 첨예화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발생하는 힘의 틈새를 노리는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국제 정세의 커다란 체스판이 급박하게 움직이면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끼리 서로 대립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도발 수위를 끌어올려도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힘들다. 더구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이어 우크라이나 위기의 진행 과정에서도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럴 때 북한은 대미 압박을 강화하려는 유혹을 느낄 개연성이 충분하다. 북한의 도발 수위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첫째 이유다.

여기에 한국의 대선 국면이 겹쳤다. 특히 최근에는 안보 공약에 대한 정책 검증보다는 여야가 상대방을 서로 호전론자나 유화론자로 낙인찍는 프레임 공방이 선거판을 휩쓸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서도 여야는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다. 북한이 슬그머니 미사일 한 발 쏘아올리며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려는 유혹을 느끼지 말란 법이 없다. 여야 어느 쪽이 이기든 선거 과정에서 노출된 안보관의 균열과 대북 인식의 대립은 차기 정부가 냉철하게 대북 정책을 짜고 집행하는 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국내 변수와 대외 정세가 겹쳐 북한에는 딱 오판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미·중 대립이 격화하는 틈을 타 북한은 도발 수위를 높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레드라인에 다가서는 것은 당장엔 성공할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오판일 뿐이다. 북한 스스로 그런 인식을 하지 못한다면 청와대와 안보 당국이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각 당의 대선후보들은 포퓰리즘식 안보·평화 공방을 멈추고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한 정책과 복안을 제시하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