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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 대통령, 이제 와서 “원전이 주력”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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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에너지 공급망 관련 현안보고 회의에서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보고 받고 있다. 2022.2.25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에너지 공급망 관련 현안보고 회의에서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보고 받고 있다. 2022.2.25 청와대 제공

임기 내내 탈원전하다 정권 말 원전 강조  

공사 중인 원전 조기 가동도 ‘희망고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금요일 청와대 회의에서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이 지연된 신한울 1, 2호기와 신고리 5, 6호기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다.

임기 내내 탈원전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 원전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건 이례적이다. 물론 발언 전문을 보면 탈원전 정책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에너지 믹스 전환은 불가피하다”며 “에너지 전환 정책은 2084년까지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7년 10월 발표된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2017년 6월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를 선언하면서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탈핵국가로 가는 출발’이라고 했던 연설과는 사뭇 궤를 달리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해지자 안정적이고 발전단가가 낮은 원전의 장점이 뒤늦게 커 보였을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에 비판적인 민심을 달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에선 “지난 5년에 대한 자기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도 문제다. 정부의 탈원전은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하고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은 금지한다. 내년 4월 설계수명이 끝나는 고리2호기를 시작으로 2034년까지 가동을 중지하는 원전이 11기다. 원전 숫자는 2017년 24기에서 2030년 18기, 2050년 9기로 줄어든다. 갈수록 불 꺼지는 원전이 늘어 60여 년 뒤엔 ‘원전 제로’가 되는데 어떻게 ‘60여 년간’ 주력 전원이 될 수 있나. 정부가 지난해 확정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원전 비율은 2020년 29%에서 2050년 6.1%(화력발전 전면 중단 시)로 줄어든다. 30년도 채 지나기 전에 6% 수준까지 떨어지는 원전을 ‘60여 년간의 주력’이라고 표현했다. 대단한 ‘정신승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절차에 따라 시운전을 하거나 건설 중인 원전의 정상가동을 앞당기기도 쉽지 않다. 올해 3월 가동될 예정이었던 신한울 1호기는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 같은 과도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7월에야 시운전에 들어갔다. 2~3년 뒤에야 준공될 예정인 신고리 5, 6호기를 조속히 가동하라는 건 하나 마나 한 ‘희망고문’이다. 이러니 원전 지역 주민의 표를 의식한 ‘립서비스’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여당 대선후보조차 국민 합의를 전제로 다시 판단하겠다고 공언한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해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탈원전 고집은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고스란히 차기 정부의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