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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중 1명은 모르고 당한다, 한국인 5만명 혼 빼놓는 '이놈' [건강한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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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희귀질환의 날 지난해 국내에서 희귀질환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5만여 명이다. 질환별 환자 수는 적지만 희귀질환의 종류가 많아 전체 환자 수는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약 8000종의 희귀질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는 1000여 개의 희귀질환이 지정돼 있다. 희귀질환은 진단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고, 진단 이후에도 치료·관리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조기 진단이 많아지고, 증상 완화와 질환 진행 억제로 삶의 질과 기대수명이 높아지는 추세다. 2월 28일 ‘희귀질환의 날’을 맞아 희귀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2020년 희귀질환 통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20년 희귀질환 통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많은 희귀질환자는 진단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여러 증상이 있지만 전형적이지 않고 정보가 부족하다. 국내 희귀질환자가 증상 후 병원 첫 방문부터 진단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1개월이다. 진단받기까지 평균 3곳 정도의 병원을 전전한다. 3명 중 1명은 다른 질병으로 진단받은 경험이 있다.

서울성모병원 유전진단검사센터 김명신(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희귀병의 대부분은 유전자가 원인이라서 여러 증상이 전신에 걸쳐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임상 증상만으로는 감별이 어렵다”며 “성인의 경우 그때그때 증상에 따른 치료만 하는 경우가 많아 진단까지의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보다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달하고, 정부의 희귀질환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김 교수는 “유전자 검사가 임상에 도입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진단율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 사업 확대로 환자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증가하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실 인원 수 상위 희귀질환과 주요 증상.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진료실 인원 수 상위 희귀질환과 주요 증상.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희귀질환 진단까지 평균 21개월 걸려

희귀질환자가 진단까지 걸리는 시간·비용을 줄이려면 증상만으로 대처하기보다 희귀병·유전자 진단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건국대병원 희귀질환클리닉 김영환(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병원에 다니는데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희귀질환을 다루는 센터·클리닉을 찾아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면 된다”며 “우리나라는 의료 접근성이 좋아서 희귀질환으로 분류된 특발성 폐섬유증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진단이 빠른 편이고 환자 수도 상대적으로 많다. 치료 수준도 높다”고 말했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폐가 서서히 굳어지는 희귀병이다.

유전자진단검사센터가 있는 병원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김명신 교수는 “가족력 없이 환자가 1세대로 나타나는 유전병도 있다”며 “완전한 유전 질환인데 성인이 된 후 처음 유전자 검사를 해보고 발견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아일 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유전자 검사를 잘 알고 있으므로 발달 지연 등 증상이 있을 때 상담받으면 된다”고 했다.

거주지가 지방이면 지역과 가까운 지역 거점 희귀질환센터를 먼저 찾는 것이 좋다. 대구·경북권 거점센터인 칠곡경북대병원 희귀질환센터 권순학(소아청소년과) 센터장은 “희귀질환자의 3분의 2 정도는 지역 내에서 신속한 진단과 꾸준한 치료·관리가 가능한 것으로 본다”며 “완치가 어려워 만성화하는 질환이 많으므로 거주지와 가까운 병원이 좀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지방 환자는 권역거점센터 이용 편리

대부분의 희귀병은 완치가 어렵다. 그렇지만 치료를 포기하고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김영환 교수는 “특발성 폐섬유증처럼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약을 써서 진행을 늦춰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질환이 많다”며 “간혹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크게 좌절하기도 하는데 오래전 마땅한 약도 없을 때의 정보나 부정확한 내용도 많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전문가와 만나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희귀병은 정확한 진단 자체로도 질환에 대처는 데 도움이 된다. 김명신 교수는 “질병을 알면 앞으로 나타나거나 악화할 수 있는 증상, 또 과거와 달리 관리를 통해 질환이 더 심해지지 않을 확률 등을 환자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단이 명확해지면 환자는 진로와 결혼 등 인생의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특정 질환에 대한 치료제 요구가 많아질수록 이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가 개발될 확률도 높아진다. 김명신 교수는 “유전적 원인인 희귀질환일 땐 유전 질환 전문가를 만나 장기적으로 질환에 접근하는 것을 권한다. 의료 발달 속도가 빠른 만큼 지금의 의료 수준에서 최대한 대처하며 치료기회가 왔을 때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희귀질환 진단·관리 돕는 세 가지 

1. 기본 정보는 ‘희귀질환 헬프라인’에서 확인
희귀질환에 관한 기본 정보는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헬프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희귀질환명과 영향 부위, 증상, 원인 등 질환 정보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진단 지원과 희귀질환 지정 신청, 의료비 지원과 온라인 신청 서비스를 안내받을 수 있다. 권역별 거점센터를 비롯해 의료기관에서 진행하는 희귀질환 관련 세미나와 환우 모임 행사도 확인할 수 있다. 희귀질환 환우회와 가족모임 등 관련 단체에 대한 안내도 있다는 ‘헬프라인-정보·알림-관련 사이트’에 나와 있다.

2. 의료비 지원사업 등 다양한 제도 활용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은 지원신청일로부터 의료비 지원이 가능하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도 지원 신청일 이전에 사용된 의료비는 지원되지 않는다. 신청은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것이 좋다.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에서는 신청 및 대상자 관리를 환자의 거주지 관할 보건소에서 담당한다. 의료비 지원 대상자가 주민등록 이전을 한 경우에는 전입지 보건소에 주소 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의료비 지원사업 외에 희귀질환 산정 특례제도, 본인부담 상한제도, 긴급복지 지원제도,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등이 있다.

3. 질병 극복 이야기 등 정보 공유의 장 이용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질환 정보와 환우들의 질병 극복 이야기를 담은 전자 간행물을 정기적으로 출판한다. 이와 함께 정부 지원 의료비 외에 다양한 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재활치료와 특수 식이 구입, 소모성 의료용품 구입 등 여러 항목을 환자의 치료계획에 맞게 지원한다. 지원 대상 조건 여부와 절차 등은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문의하면 된다. 지방 거주 환자와 보호자가 서울·경인 지역의 의료기관을 이용할 땐 단기숙박시설인 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치료 환경 개선 위한 전문가 한마디 

“환자 수가 극히 적어 임상시험이 어려운 질환에는 간단한 보고만 있어도 의사가 환자를 위해 약을 쓸 수 있게 허가 사항이 개정돼야 한다.” 김영환 건국대병원 교수

“한 시간 이상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유전 상담에 의료 수가를 인정하고, 임상시험과 유전 진단에 관한 최신 정보를 한국어로 번역해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김명신 서울성모병원 교수

“젊은 의사들이 희귀질환에 관심을 갖고 전문 간호사와 상담 코디네이터 등 전문인력을 키우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투자가 시급하다.” 권순학 칠곡경북대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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