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산다는 것은 내 이야기 하나 보태고 가는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어령

이어령

“숨쉬기 힘들어하셔서 제가 편하게 안아드렸어요. 그랬더니 아주 가벼운 숨이 느껴져 가족들이 ‘다시 숨을 쉬신다’고 기뻐하며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렀어요. 그 가벼운 숨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난 26일 낮 타계한 이어령 선생의 큰아들인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특히 “죽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봐야겠다는 표정이었다. 허공을 아주 또렷하게 30분 정도 응시하시더라. 마치 죽음과 대결을 한번 해보시는 듯하다가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라고 했던 발언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한 마지막이었다.

88년이라는 짧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고인의 활동 반경은 시간의 한계 안에 갇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한국인의 의식과 감수성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젊어서 김동리·조연현 등 당대의 문학 권력을 비판한 투사였고, 난해한 시인 이상을 날카롭게 해석한 문학 연구자였다. 시인·소설가이자 교육·문화기획·문화행정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한 당대의 문화인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막식 총괄기획을 맡아 연출한 8세 소년의 굴렁쇠 장면은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회자됐다. 90년 출범한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아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국어연구원을 설립했다. 일본어 ‘노견’이나 이를 풀어쓴 ‘길어깨’를 대신하는 ‘갓길’이라는 표현을 만든 것도 고인이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씨는 “이름 자체가 한국의 독자적인 명예요 브랜드였던 분”이라고 평했다.

관련기사

무엇보다 예민한 촉수와 언어 감각으로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문명비판적인 작업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한국적 심성의 실체를 문화적으로 풀어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 하이쿠·분재 등에서 일본적 특성을 간파한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은 베스트셀러였다. 2006년 중앙일보 연재 칼럼을 묶은 『디지로그』에선 디지털 열풍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따뜻하게 보완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성한 필력으로 『가위바위보 문명론』『보자기 인문학』『지의 최전선』 등 130권이 넘는 저작을 남겼다. 열두 권으로 기획된 한국인 시리즈 첫 책 『너 어디에서 왔니』를 2020년 초에 펴내는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스스로 ‘크리에이터’라 불렀다. 2009년엔 각계각층 인사가 멘토로 참가하는 창조학교를 만들어 군사력·경제력에 앞서는 창조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년 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산다는 게 뭔가. 내 이야기 하나 보태고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주요 연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주요 연보

젊은 시절 이성의 언어를 신봉했던 고인은 말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나갔다. 딸 이민아 목사(2012년 별세)의 투병 과정에 영향을 받아 2007년 기독교 세례를 받으면서다. 그런 내면의 변화를 2010년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담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건국대 명예교수), 아들 이승무(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 이강무(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장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葬)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다음 달 2일 오전 9시, 영결식은 오전 10시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