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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네 탓 공방 번졌다…윤석열·안철수 단일화 결렬 전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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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 같습니다.…(중략) 전화 부탁드립니다.”
“진정성을 믿어주시기 바라며…(중략)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화 부탁합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게 24일과 25일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중 일부다. 윤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을 공개한 27일, 윤 후보 측은 이런 내용이 담긴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협상 경과」자료를 배포했다. 윤 후보의 문자 메시지와 통화 시도에 답하지 않은 안 후보는 “지금도 모르는 번호로 계속 전화가 오고, 쌓인 문자가 3만 개가 넘는데 어떻게 보나. 국민의힘에서 제 번호를 뿌린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메시지를 둘러싼 공방에서 보여주듯, 야권 단일화는 사실상 파국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윤 후보는 직접 협상 과정을 세세하게 공개했고, 안 후보는 “가타부타 않더니, 최근 전달받은 내용도 바뀐 게 없다”고 일축했다. 결별 수순을 밟는 모양새지만, 양측은 이달 초부터 여러 경로로 협상을 벌여왔다.

윤 캠프에 따르면 양측 책임자들이 인지한 협상 개시일은 윤 후보가 최진석 국민의당 선대위원장과 통화한 7일이었다. 통화에서 윤 후보는 “안 후보의 뜻을 전폭 수용하겠다. 오늘 밤에도 만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날 오후 최 위원장이 “안 후보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단 멈춤’ 상태가 됐지만, 이후부터 본격적인 단일화 레이스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단일화 협상의 핵심 당사자는 윤 후보 측에선 장제원 의원이, 안 후보 측에선 이태규 선대본부장이 맡았다. 11일 처음 만난 두 사람은 18일ㆍ26일ㆍ27일까지 네 차례 만났고, 수시로 전화 통화도 했다. 협상 과정의 클라이막스는 26일로, “이 본부장이 전권을 갖고 나갈 것”(최진석 국민의당 선대위원장)이란 전갈 이후 장 의원이 이날 오후 2시 이 본부장과 만났다. 이때 협상 관련 최종안에 합의했다는 것이 윤 캠프 측 주장으로 ‘국정 운영의 동반자’를 선언한 뒤 두 후보가 인수위를 공동 운영하고, 공동 정부를 꾸리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윤 후보측에 따르면 오후 9시엔 이 본부장이 “안 후보가 완주를 철회할 명분을 달라”고 요청했고, 장 의원은 “윤 후보가 안 후보 자택을 방문해 정중히 요청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27일 자정을 넘긴 시점부터 오전 4시까지 두 사람은 비공개로 협상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 “윤 후보가 공개적으로 안 후보와의 회동을 요청하기로” 합의했지만, 이후 추가 피드백 없이 오전 9시 이 본부장이 협상 결렬을 통보했다는 것이 윤 캠프 측 주장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7일 전남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유세를 마친 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관련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7일 전남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유세를 마친 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관련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안 후보 측은 전혀 다른 설명이라고 일축했다. 안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13일 단일화 경선 제안 후나, 20일 ‘단일화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말에도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며 “어제 이 본부장이 윤 후보 측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지만, 그 내용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이 본부장은 ‘안 후보가 이미 결렬선언을 했는데, 후보 간 대화가 되려면 먼저 윤 후보 측의 불찰부터 사과해야 한다’고 말해왔다”며 “합의문이라는 것도 그쪽에서 정당ㆍ인수위ㆍ행정부로 나눠 협업하자는 내용을 브리핑 형태로 한 것으로, 후보에게 전달했더니 ‘신뢰를 확보하기엔 불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여론조사 경선을 놓고서도 양측의 말이 달랐다. 윤 후보는 “안 후보 측으로부터 ‘여론조사 제안은 협상의 시작’이라고 들었고, 다른 협의도 얼마든 할 수 있다고 봤다”며 “이후 협의 과정에서 여론조사 얘기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국민경선에 대해서 ‘받겠다, 받지 않겠다’는 언급조차 없이 협상 테이블에 올렸는데 ‘그것이 없었다’는 것은 상대자의 도리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날 윤 후보가 “안 후보가 시간과 장소를 정해주면 언제든 직접 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다”며 여지를 뒀지만, 양측간 대화는 물건너 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각 후보 진영의 계산도 분주해졌다. 윤 후보 캠프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단일화 해 봐야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윤 후보의 지지율이 일부 빠진 것은 단일화를 원하는 지지층 일부의 이탈 때문”이라며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 것이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정쩡한 단일화보다 그간 우리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낫다. 지지율은 곧 회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후보측 인사는 “일각에선 마치 윤 후보가 고압적 자세여서 단일화 협상이 안된다는 식의 지적이 있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윤 후보는 차라리 그동안의 일을 말끔히 공개하는 게 유권자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다만 당내에선 ‘1위 후보 책임론’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캠프 관계자는 “단일화가 무산되더라도 이런 식보단 더 섬세한 출구 전략이 필요했다. 진실공방 양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불리한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은 “윤 후보가 ‘안철수 책임론’에 불을 지피려는 것으로, 단일화는 끝났다”고 평가했다. 김영진 총무본부장은 “‘단일화 결렬 책임은 안철수에 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안철수가 짓밟았다’라는 선언을 하려고 지금 쇼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총괄본부장도 “윤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 결렬 책임을 안 후보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이라며 “윤 후보가 어떤 발언을 하든 국민은 안 후보가 제안한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윤 후보의 책임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의 다음 행보를 고려하면, 이 후보와의 단일화가 훨씬 유리하다”(정성호 총괄특보단장)는 구애성 발언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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