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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공격에 각성한 풋내기 대통령…국민 '화염병 항쟁' 만들었다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게 필요한 건 도망갈 수단(ride)이 아니라 탄약(ammunition)이다"

미국의 도피처 제공 제안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고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26일(현지시간) 전했다. AP통신은 이를 인용해 "젤렌스키가 '전장은 여기에 있다'고도 말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젤렌스키가 살해되거나 포로로 잡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가 키예프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코미디언 출신의 풋내기 정치인 취급받던 젤렌스키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국민을 결집하는 지도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2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SNS에 게재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SNS에 게재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젤렌스키 "결속으로 러 시나리오 깨" 

젤렌스키는 26일 저녁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의 결속과 용기가 러시아의 점령 시나리오를 깨뜨렸다. 세계는 우크라이나인의 강한 모습과 용기를 봤다"고 말했다.

약자의 입장인 그는 SNS를 항전의 수단으로 십분 활용 중이다. 지난 24일 오전 5시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스무 개 가까운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전쟁 상황을 알려 각국의 지원을 요청하고, 우크라이나군과 국민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그의 공식 SNS(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670만명에 이른다. 인스타그램은 전쟁 발발 이후 3일 동안 팔로워가 200만명 가까이 늘었다.

이미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올 초만 해도 그는 미숙한 리더십으로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러시아는 그를 공식 협상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였고, 자국의 안보가 걸린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의 담판을 지켜만 보는 처지였다. 오히려 "서방의 침공 위협이 과장됐다"고 상황을 축소해 빈축을 샀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신인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지난달 말 "그의 역부족인 모습에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수도 함락 막고, 외교력 가동 

26일 키예프 중심가에서 셀카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린 젤렌스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26일 키예프 중심가에서 셀카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린 젤렌스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 이후 그가 보인 모습은 달랐다. 침공 이틀만에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에 진입한 뒤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협상을 제안할 때만 해도 패색이 짙어보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친러 국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협상하자고 제안하자, 젤렌스키는 이를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우방국이자 나토 가입국인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로 옮기자고 역제안하는 등 샅바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침공 사흘차인 25일 키예프 시가전을 방어한 뒤 "러시아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걸었다"며 선제적으로 협상 무산을 선언했다.

그가 이끄는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에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무기와 자금 등을 지원하고 나섰다. 살상 무기는 안 준다던 독일도 이날 입장을 바꿔 지대공미사일, 대전차 로켓 발사기 등을 공급하기로 했다. 러시아와 협력 관계인 주요 산유국 아제르바이잔도 석유 지원을 약속했다.

독려에 스스로 화염병 만드는 국민 

24일 키예프 시청 앞에 모인 예비군들. AFP=연합뉴스

24일 키예프 시청 앞에 모인 예비군들. AFP=연합뉴스

러시아의 제거 표적 1순위인 그는 몸을 피하기는 커녕 키예프 중심에서 셀카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 대변인은 "젤렌스키가 이미 우크라이나 서쪽 리비우에 갔고, 올린 영상은 사전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그의 뒤에 서 있는 관료들은 휴대전화를 들어 현재 날짜와 시간을 보여준다.

젤렌스키의 전투 의식 고취에 우크라이나 국민도 호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당국은 26일 밤 "3만 7000여명이 방위군으로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2019년 대선에서 젤렌스키에 패한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예비군에 지원해 소총을 들었다. 국방부에서 25일 "화염병을 만들고 도와달라"고 호소하자, 우크라이나인들은 화염병을 만들어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26일 우크라이나 3번째로 큰 도시인 드니프로시에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화염병을 제작하고 있다. BBC 동유럽 특파원 사라 레인스포드 트위터

26일 우크라이나 3번째로 큰 도시인 드니프로시에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화염병을 제작하고 있다. BBC 동유럽 특파원 사라 레인스포드 트위터

CNN "대통령 배우→반항적 전시 지도자"  

이와 관련, 미국 CNN 방송은 젤렌스키에 대해 "TV에서 대통령을 연기하는 배우에서 반항적인 전시 지도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 언론 편집장 올가 루덴코는 트위터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동안 정말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점점 국가를 이끌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쉐겔 교수도 "지난해 탈레반이 장악하자 도망갔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비교해 수도에 남아 지휘하는 젤렌스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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