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러시아 제재 함께한 동료들" 거론…한국은 또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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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전방위 제재에 나선 가운데 한국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한다면서도 “독자 제재는 없다”고 선을 긋는 모순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당장 미국은 한국을 적극적 제재 동참국으로 여기지 않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미국은 24일(현지시간)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 금지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이나 장비를 이용했을 경우 제3국에서 생산한 반도체도 대러 수출이 금지된다. 한국에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로이터/Leah Millis.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로이터/Leah Millis. 연합뉴스.

상무부 ‘제재 예외’서 빠진 한국, 왜?  

미국 상무부는 이를 위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에 관련 내용을 추가했다. 그런데 여기 예외조항이 있다.

상무부는 관련 설명 자료를 발표하며 ‘해당 규정에서 제외되는 파트너 국가들’이라는 항목을 따로 뒀다. “대체로 이와 비슷한 조치를 (이미)적용하고 있거나 적용하겠다는 의사(intention)를 밝힌 나라들에는 해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32개국의 명단을 제시했다.

이는 해당국들의 경우에는 러시아에 반도체를 수출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이미 자체적으로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위반 시 형사처벌을 가하도록 돼 있는 해당 규정을 굳이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자발적이고 강력한 제재 동참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의미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예외의 ‘예우’를 받는 32개국 명단에서 빠졌다. 유럽 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 및 일본은 포함됐다.

해당 조치는 한국이 24일 오후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독자 제재가 아닌)제재에 동참한다”고 발표한 이후에 이뤄졌다. 외교 소식통은 “상무부의 발표는 아직 한국을 ‘제재를 취하겠다는 충분한 의도가 있는 나라’로 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미 상무부가 24일(현지시간) 대러시아 제재 관련 발표한 팩트시트.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관련 '해당 규정에서 제외되는 파트너 국가들' 항목. 유럽 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 일본은 포함됐지만 한국은 없다. 미 상무부 홈페이지 캡쳐.

미 상무부가 24일(현지시간) 대러시아 제재 관련 발표한 팩트시트.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관련 '해당 규정에서 제외되는 파트너 국가들' 항목. 유럽 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 일본은 포함됐지만 한국은 없다. 미 상무부 홈페이지 캡쳐.

바이든 “러, 한국서도 고통” 의지 표명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공동된 대응”을 강조하며 대러 제재에 동참하는 나라를 거명했는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연합(EU) 27개국과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및 그 외 많은 국가”라고만 언급했다. 역시 한국 직접 언급은 빠졌다.  

그는 26일(현지시간) 공개된 유튜버 브라이언 타일러 코헨과 인터뷰에선 “러시아는 유럽 뿐 아니라 일본, 한국, 호주 등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장ㆍ단기적, 특히 장기적으로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한국을 대러 제재와 압박의 중요한 한 축으로 끌고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는 결국 독자 제재에는 한사코 선을 긋는 한국의 태도와 연관돼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는 크게 세 축으로 볼 수 있다. ▲금융 제재 ▲러시아 주요 인사 및 기관에 대한 제재 ▲수출 통제 제재다.

‘어차피 지킬 것’만 따른다는 정부

이 중 수출 통제는 굳이 ‘제재’라고 이름붙이지 않더라도 현행법 내에서 행정적 조치들을 통해 이행할 수 있다. 정부 역시 미국과 EU 등이 가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내용’ 측면에서 준수함으로써 동참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사실 이는 설령 동참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분야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미국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할 경우 한국 기업들이 처벌받기 때문이다. ‘빨간불이면 멈춰야 한다’는 원칙만큼이나 당연하고, 굳이 정부가 동참한다는 생색을 내지 않더라도 기업들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준수할 수밖에 없다.

금융 제재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러시아 주요 은행과의 달러화 거래를 금지했기 때문에 이제는 세컨더리 보이콧(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국 개인이나 기업도 제재)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더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일부 분야에 대해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했다. 국제적 자금 결제가 상당 부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상황에서 불이익을 피하려면 결국 대체 계좌 개설 등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제재에 동참한다면서 실상은 제재망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자기모순적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정부가 대러 금융 제재라는 독자 제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우크라이나 사태 등 관련 글로벌공급망 안정 방안 등을 논의하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우크라이나 사태 등 관련 글로벌공급망 안정 방안 등을 논의하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성룡 기자.

‘푸틴 제재’는 아예 배제

게다가 주요 인사 제재는 ‘제재’라는 고깔모자를 씌우지 않고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직접 제재 명단에 올린 가운데 한국이 독자 제재와 선을 그은 건 이런 조치들은 아예 하지 않겠다고 선택지에서 배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러 제재에 대해 이처럼 신중한 한국의 태도에 워싱턴 조야에선 아쉬움이 나온다.

미 국무부 핵확산금지 부차관보를 지낸 마크 피츠패트릭 국제전략연구소 연구원은 25일(VOA) 인터뷰에서 “한국이 소심하고 미온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며 “한국이 과거 (6‧25 전쟁)침략의 피해자로서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는데, 미국의 동맹국 명단에서 눈에 띌 정도로 빠진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충분치 않다” 터져나온 실망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국장도 현 상황을 한국의 인식을 시험해보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비유하며 “세계 10위권 경제와 광범위한 분야에서 강한 국력을 가진 한국이 그 위상에 따른 기대와는 괴리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2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거명해 규탄해야 하며, 단호한 양자 제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앞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미국과의 협의 뒤 “동맹 간 연대를 강조했다”는 트윗을 올린 데 대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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