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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침공·한국대선 혼전 노렸다…북한의 미사일 '틈새도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 여념 없는 미국과 대선을 열흘 앞에 둔 한국의 국내정치적 상황 등을 노린 '틈새 도발'로 볼 수 있다. 한ㆍ미를 비롯한 국제 사회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도 자신들이 정한 시간표에 따른 무력 시위는 지속한다는 '마이 웨이'식 도발 굳히기 측면도 있다.

러시아 두둔, 이튿날 도발

북한은 이날 오전 7시 52분쯤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동해 상으로 탄도미사일 한 발을 쐈다. 지난달 30일 자강도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한지 28일만으로, 베이징 겨울 올림픽(지난 4일~20일)에 맞춘 북한의 미사일 도발 '휴지기'도 끝났다는 신호다.

북한의 도발 재개는 전날 외무성이 '미국은 국제평화와 안정의 근간을 허물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을 미국에 돌린 직후 이뤄졌다.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나온 북한의 첫 반응으로, 리지성 국제정치연구학회 연구사 개인 명의로 작성됐다.

논평에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러시아의 합법적인 안전상 요구를 무시하고 세계 패권과 군사적 우위만을 추구하면서 일방적인 제재 압박에만 매달려온 미국의 강권과 전횡에 그 근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역시 미국으로부터 받는 '안보 위협'을 핵ㆍ미사일 개발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북ㆍ중ㆍ러가 연합하는 모양새다.

동시에 이는 '러시아 때리기'에 온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미국의 안보 공백을 노린 도발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인데, 사실 안보리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만도 벅찬 상황이다.

합참에 따르면 이날 북한의 미사일은 비행거리 약 300㎞, 고도 약 620㎞로 탐지됐다. 단거리와 장거리 사이의 준중거리급 미사일을 선택해 어느 정도 수위를 조절하며 미국과 유엔의 대응 여력을 시험해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북한 미사일 발사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올해 북한 미사일 발사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안갯속’ 대선도 염두에

북한은 이날 발사가 다음 달 9일 한국 대선에 끼칠 수 있는 영향도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야 주요 대선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 여전히 박빙 경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추가 배치를 둘러싼 논란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내적으로 안보 이슈가 주목을 받는 상황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임기가 두 달 여 남은 문재인 정부의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 의지를 시험해보는 성격도 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9시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깊은 우려와 엄중한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달 30일 화성 12형 발사 때 표명했던 "규탄" 입장보다 수위를 낮췄다.

청와대는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진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세계와 지역과 한반도 평화 안정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을 염두에 둔 듯 "중요한 정치 일정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안보를 수호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대선 국면 와중에 북한 이슈를 부각해 대외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며 "지난 23일 우리 군의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 시험발사에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2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보는 모습. 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보는 모습. 연합뉴스.

'도발 일상화' 수순? 北 다음 행보는

베이징 올림픽 기간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북한이 이날 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오는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까지 점진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평양 미림비행장 인근 훈련장에 차량과 병력이 모이는 등 북한이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는 듯한 정황이 위성 사진을 통해 포착되기도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베이징 올림픽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입장 정리를 끝내고 '도발의 일상화'를 지속하는 수순으로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다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북한이 지난달 시사했던 모라토리엄(핵실험ㆍ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 파기 카드는 미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인 만큼 그 파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시기와 방법 등을 더욱 신중하게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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