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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악한 회색지대 전술 펼치는 북한, 싸움없이 굴복시키려면[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하루 만에 수도 키예프에 입성했다. 파죽지세였다.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가 전쟁 이전의 경쟁 단계에서 러시아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한 결과다.

우크라이나군이 파괴한 러시아 차량 옆을 지나가고 있다. AP=연합

우크라이나군이 파괴한 러시아 차량 옆을 지나가고 있다. AP=연합

경쟁이란, 둘 이상의 행위자가 서로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피하며 주고받는 적대적 교류를 의미한다. 강대국 간의 확전은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따라서 경쟁을 추구하는 강대국들은 우위인 공간을 최대한 확장해가며 전쟁 없이 승리하려 하거나, 확전으로 번지기 전에 신속하게 이기려 한다.

단, 경쟁이 지리적 공간에 한정돼 이해돼서는 안 된다. 경쟁 공간이 군사적 공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교ㆍ군사ㆍ경제ㆍ사회ㆍ정보ㆍ기술-산업ㆍ환경ㆍ이념ㆍ공중보건 등은 모두 경쟁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경쟁에서의 패배는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하며, 패권의 위상을 약화하는데 결정적이다.

중국ㆍ러시아와 경쟁 중인 미국

소위 패권국으로서 누구도 도전할 엄두를 못 냈던 미국이 중국과는 인도ㆍ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와는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경쟁을 벌여왔다. 몇 년 전부터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정규군뿐 아니라 해상 민병대를 활용하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상대가 군사적 대응을 하기는 모호한 도발적 행동을 회색지대 전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아덴만 해적 퇴치 작전에 투입할 함대의 환송행사를 열고 있다. 중국은 해공군력을 늘리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신화=연합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아덴만 해적 퇴치 작전에 투입할 함대의 환송행사를 열고 있다. 중국은 해공군력을 늘리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신화=연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방위 군사공격을 실시하기 전에도 총성 없는 경쟁이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전개하는 한편, 나토 국가들과 우크라이나에 대해 사이버 공격과 허위 정보 확산을 통한 정보전을 벌였다. 서방 국가들도 첩보를 쏟아내는 정보전으로 맞대응했고, 대규모 경제 제재를 준비했다. 이 같은 경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의지를 무너뜨리고 확실한 우위를 점했더라면, 푸틴은 침공을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두 가지 차원의 군사적 경쟁  

그간 러시아나 중국과의 일상적 군사 경쟁 속에서, 미국은 무력충돌 이하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즉 사이버전, 전자기전, 우주전 능력의 강화 필요성을 인식해왔다. 전쟁을 원치 않는 여론을 의식해 미국이 물리적 충돌을 무릅쓰는 레드라인은 계속 높아졌다. 반면 상대의 무력사용은 비교적 쉬웠다. 그러므로 경쟁하는 단계에서 우위인 공간을 넓혀가야만,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면서도 미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강대국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AFP=연합

실제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강대국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AFP=연합

한편 일상적 경쟁과 충돌 가능성에 힘을 빼기보다, 장기적 차원의 패권 경쟁, 즉 강대국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는 미국 내 목소리도 높다. 전쟁 이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투 능력을 갖춘다면, 일상적 경쟁 중에도 상대의 행동을 제한하고 확전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투에 활용될 수 있는 최첨단 재래식 전력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미국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결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를 패배시킬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와 무관하게 미국의 입지는 크게 약화할 것이다. 일상적 경쟁에서의 패배는 해당 지역에서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자유를 제한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일상적 경쟁 개념 도입  

한국은 북한과의 일상적 경쟁보다는 전면전 대비 중심의 군사전략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일상적 경쟁은 그동안 한반도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 성과를 토대로 한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이후, 북한은 대규모 무력충돌을 피하면서도 북방한계선(NLL)과 군사분계선(MDL)에 대한 많은 침투와 도발을 시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심리전 도구와 조악한 드론 등을 통한 회색지대 전술로 한국에 경쟁을 걸어오는가 하면, 사이버 공간에서 한국의 주요 기업과 기관들에 접근하여 피해를 주고 중요 정보를 빼가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북한 군인들이 임진강변 철책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연합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북한 군인들이 임진강변 철책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연합

미국 육군의 정의에 따르면, 북한의 도발적 미사일 시험 역시 경쟁의 모습이다. 어떻게든 상대적 우위를 추구하고자 하는 남북 간의 오랜 상황은 일상적 군사 경쟁의 전형 그 자체이다.

일상적 경쟁 수단들을 강화하는 것은 북한을 넘어 전방위적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우리 군의 방향성에도 부합한다. 사이버, 전자기, 우주 영역과 관련된 군사력은 상대가 누구냐와 관계없이 우리 군이 갖추어야 할 기반이다.

싸워서 이길 방법과 동시에, 싸우지 않고 굴복시킬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경쟁 개념을 통해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우위를 지킬 수 있는 경쟁 공간을 확장해가고, 그 공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들을 조속히 확보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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