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반포1단지 경매 입주권 논란
강남 최고 아파트를 분양받는 ‘대박’ → 입주권 없는 현금청산 ‘물딱지’ → 반만 현금청산하는 ‘반쪽 로또'→?
대표적인 서울 강남 재건축 추진 단지인 반포주공1단지를 배경으로 새 아파트 입주권 자격을 둘러싸고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보잘것없던 ‘물딱지’가 현재 시세 기준으로 최고 40억 ‘로또’로 바뀔 수 있다.
2018년 말 반포주공1단지 전용 140㎡가 법원 경매에 나왔다. 주인 A씨가 86억원의 채무를 갚지 못해서다. 당시 이 아파트는 재건축 공사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계획(분양계획) 인가를 앞두고 있었다. 재건축 후 바로 옆에 들어서 있는 국내 최고가의 아크로리버파크를 능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블루칩’이다.
2019년 1월 감정평가금액이 41억9000만원이었다. 같은 주택형이 2018년 최고 45억원까지 거래됐었다. 시세와 별로 차이나지 않는 감정가였다.
42억3222만원 낙찰 취소
그해 9월 감정가를 최저가로 한 경매에 응찰자가 없어 유찰된 뒤 10월 최저가가 20% 내려간 33억5200만원에 경매가 열렸다. 4명이 경쟁해 K씨가 42억3222만원에 낙찰했다. 같은 달 실거래가(45억원)보다 3억원가량 낮았다.
이 아파트가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이주·철거를 앞둔 상태여서 거주하려는 게 아니라 입주권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조합원 자격에 문제가 생겼다. 2017년 8·2대책에 따라 서초구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설립 이후 취득한 재건축 주택은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적용을 받는다. 이 아파트는 이미 2013년 조합설립을 했다.
조합원 지위 상실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권리(입주권)가 없어진다. 현금을 받고 소유권을 조합에 넘겨야 한다(현금청산). 매매·증여 등이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에 해당한다. 이혼·상속 등으로 인한 취득은 예외다.
경매의 경우 신청자가 국가·지방자치단체·금융기관이면 예외로 조합원 자격을 인정받지만 개인이 신청한 경매는 금지에 해당한다. A씨 채권자가 개인들이었다.
낙찰한 K씨가 법원에 매각허가 결정 취소 신청을 했다.
법원이 “감정평가서에 조합원 승계를 조건으로 감정평가했으나 매각물건명세서에 조합원 승계 등 여부를 기재하지 않았다”며 K씨 신청을 받아들여 경매가 무효가 됐다.
그 뒤 명세서에 현금청산 대상이라고 명시됐다. “조합원 지위를 유지할 것을 전제로 입주권을 고려해 감정평가했으나 조합원 지위가 승계되지 않는 현금청산 대상임을 유의.”
감정가 65%인 27억2500만원 낙찰
2020년 4월 최저가 33억5200만원 그대로 경매에 부쳐졌다가 유찰됐다. 다음 달인 5월 최저가가 20% 더 낮춘 26억8160만원으로 내려갔다. 2명이 응찰해 27억2500만원을 써낸 L씨가 280만원 차이로 낙찰했다. 그해 6월 조합원 자격을 승계하는 집의 실거래가가 43억원이었다. L씨는 현금청산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금청산 과정에서 조합원 지위가 다시 뒤집어졌다. 조합이 2020년 8월 현금청산하기 위해 소유권이전등기(매도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이 집의 조합원 자격이 없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감정평가한 금액 33억385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소유권을 조합에 이전하라는 내용이었다.
L씨 측이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의 다른 예외 조항을 제시하며 조합원 자격이 있다고 반박했다. 전 소유주 A씨가 1992년부터 10년 넘게 소유하고 5년 이상 거주했기 때문이다. 조합설립 이후에도 5년 이상 거주하고 10년 이상 소유한 주택은 조합원 지위를 승계할 수 있다.
사라졌던 조합원 자격이 되살아날 상황에서 변수가 생겼다. A씨의 5년 이상 보유, 10년 이상 거주가 사실이지만 경매 당시 공동소유자인 B씨가 문제가 됐다. A씨가 2017년 6월 이혼하면서 B씨와 재산분할로 지분을 절반씩 나눴다.
지분 절반을 가진 B씨가 이혼 후 유주택자인 자녀와 사는 바람에 1세대 1주택자가 아니어서다. 5년 거주, 10년 소유 요건은 1세대 1주택자에 한해서다. A씨는 반포주공1단지만 소유한 1주택자였으나 B씨가 1세대 2주택자였다.
L씨가 경매로 받은 이 집의 절반만 조합원 자격이 있는 셈이다.
'반쪽' 조합원 자격
지난해 5월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B씨 지분에 해당하는 절반이 조합원 자격이 없기 때문에 절반만 현금청산하라는 것이었다. L씨는 현금청산금액의 절반인 16억6925만원을 받고 지분 절반의 소유권을 조합에 넘기면 된다.
L씨와 조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해 6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양측 모두 절반이 아닌 온전한 권리를 주장한다. 조합 측 변호사는 “어떻게 절반의 지분에 대해 새 아파트를 분양하느냐”며 “L씨가 당초 경매받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되는데 이는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의 입법목적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L씨 측은 지분 일부가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더라도 지분 소유자가 조합원으로서 전체 지분의 분양권리를 대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도 1심 판결에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서로 엄마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둘로 나눠 주라는 과거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판결을 연상시킨다”며 “조합과 개인이 공동으로 반쪽만 입주권이 나오는 집을 어떻게 나눠 가질 수 있느냐”고 말했다.
처분 막막한 조합 지분
1심 판결은 2심 재판에 전례 없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남겼다.
L씨와 조합이 공동으로 소유하면 누가 분양신청을 하느냐다. 관련 법령에는 여러 명이 공동으로 소유할 경우 한 명을 대표조합원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대표조합원이 조합원의 권리를 행사해 분양신청을 하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지분별로 공동소유하게 된다.
여기선 조합이 분양자격이 없는 지분을 갖기 때문에 L씨가 대표조합원이 되는가. L씨가 대표로 분양받아 소유권을 절반씩 조합과 나눠야 하나.
조합은 재건축 준공 후 해산해야 하는데 소유한 지분 절반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이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할 경우 L씨와 제3자가 공동소유한 상황에서 매매 등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니면 L씨와 조합이 각자 지분을 따로 처리하나. L씨는 본인 소유 지분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더라도 조합은 소유 지분을 어떻게 하나. 조합원 자격이 없어 분양받지 못한다. 매각하려해도 분양자격이 없는 지분을 누가 사겠는가.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현금청산한 주택은 조합에서 대개 일반분양분에 포함해 매각하는데 일부 지분만 현금청산한 예를 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주택이 조합원 자격이 있는 지분과 자격이 없는 지분으로 나눠질 경우 자격이 없는 지분을 현금청산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법제처는 지난해 “조합설립 인가 후 지분 일부를 양수해 조합원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더라도 손실보상(현금청산)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법령해석했다. 조합원이 아닌 지분 공유자는 조합원인 지분 공유자를 통해 분양신청해 조합원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법제처 해석대로라면 L씨가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B씨 지분에 해당하는 절반을 현금청산해 조합에 넘길 필요가 없다. 전체 지분으로 분양받아 그대로 소유할 수 있다. 조합원 자격이 없는 절반의 지분 소유자도 본인이어서다.
현금청산금액 감정평가 기준 불확실
다른 파장도 예상된다. L씨 집이 경매 때와 달리 조합원 자격이 있는 것으로 결론 나면 처음에 최초 소유자 A씨와 낙찰받았다가 취소한 K씨,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들이 반발할 수 있다. A씨는 경매로 갚을 수 있는 금액이 줄었고, K씨는 입주권을 날렸다. 채권자들은 낙찰가가 42억원에서 27억원으로 떨어지면서 15억원을 손해봤다.
1심 판결을 둘러싼 쟁점이 더 있다. 현금청산금액 산정 기준이다. 1심 재판부는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전제로 조합원 지위를 승계하는 거래가격보다 낮게 감정평가했다. 33억3850만원 감정평가 시점의 실거래가가 44억원이었다. 20% 정도가 조합원 자격 가치인 셈이다.
앞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매도청구 금액 기준이 ‘시가’이고 시가는 ‘개발이익’을 포함한다. 2014년 "시가는 매도청구권이 행사된 당시의 객관적 거래가격으로서, 재건축사업이 시행되는 것을 전제로 해 평가한 가격, 즉 재건축으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발이익이 포함된 가격을 말한다"고 판결했다.
“조합원 자격을 개발이익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조합설립 인가 후 취득으로 조합원 자격이 명백하게 없어졌는데 조합원 자격을 반영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팽팽하다.
반포주공1단지와 인근 반포3주구에서 분양 미신청이나 재당첨 제한 등으로 조합원 자격을 잃은 주택을 현금청산할 때는 조합원 자격이 있는 주택의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했다.
최소 6억원 시세차익 기대
재판 결과에 따라 L씨는 경매받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L씨가 절반을 현금청산할 필요 없이 온전히 권리를 가지면 몸값이 65억원 정도 나간다. 지난해 최고 실거래가다. 낙찰가보다 40억원가량 비싼 금액이다.
주택 지분 모두 현금청산하더라도 1심 판결 기준으로 2년 새 20%가 넘는 6억원 정도 차익을 얻는다. 1심 현금청산금액 33억여원에서 낙찰가 27억여원을 뺀 금액이다.
현금청산금액이 조합원 자격을 반영한 감정가라면 40억원 이상으로 예상돼 1심 판결보다 10억원가량 더 받을 수 있다.
1심 판결처럼 절반을 현금청산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의 가치를 시세와 같다고 보면 총 50억원 가까이 평가되는 것이어서 20억원 이상 남게 된다.
2심 재판 결과에 재건축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유례가 없는 사안이고 민감하면서 애매한 쟁점이 다수 포함돼 있어 흥미진진한 재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