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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 겨우 띄웠는데, 시동걸자 삑삑...제주행 여객선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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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달 24일 오후 7시쯤 인천항 여객터미널. 정박해 있던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 호에 경보음이 울렸다. 출항을 위해 기관사가 배에 시동을 건 순간이었다. 엔진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였다. 기관사가 급히 엔진실로 달려갔다. 초동조치 후 엔진을 확인한 결과 엔진 2개 중 하나에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당시 엔지니어는 “엔진에 베어링이 소착돼 유막이 파괴됐고 윤활유에서 이물질이 발견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출항이 어렵다고 판단한 선사 측은 승선객을 내리게 했다. 이어 1주일간 결항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인천~제주 항로를 오가는 여객선이 재취항한 지 46일 만이었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7시30분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출항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7시30분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출항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늦어지는 원인 규명에 무기한 중단

선사 측은 대처에 나섰다. 운송약관에 따라 예약자에 승선료를 돌려주고 운임의 10%를 위약금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설 연휴를 앞둔 시기라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늦어지는 원인 규명이었다. 엔진 결함이 아닌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운항 재개 시점은 무기한 연기됐다. 결국 선사 측은 지난 10일 여객선을 울산 조선소로 보냈다. 엔진제조사, 조선소, 한국선급과 함께 합동조사단을 꾸려 정확한 결함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조사결과 이상 원인은 6가지로 압축됐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선사와 엔진 제조사 등의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고심 끝에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업체에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엔진 제조사는 조만간 분석 데이터를 엔진 컨설팅업체인 노르웨이 선급에 보낼 예정이다. 선사 측은 최종 결과를 토대로 안전성과 재발방지책을 검증받은 뒤 운항 재개 시점을 정하기로 했다.

지난달 3일 비욘드 트러스트호 기관실에서 기관사가 제어반을 통해 선내 기관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달 3일 비욘드 트러스트호 기관실에서 기관사가 제어반을 통해 선내 기관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체선박 투입 위해 협상 중 

지난달 3일 오후 비욘드 트러스트호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작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달 3일 오후 비욘드 트러스트호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작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편 여객업체는 비욘드 트러스트호를 임시로 대체할 선박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여객선 복귀 시점을 예견하기 어려워지면서 화주와 여객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현재 국내외 카페리 선사 3곳과 협상하고 있다. 선사 관계자는 “중국 등 장거리 항로를 다닌 적 있는 선박 중 화물을 운송하는 데 적합한 카페리로 대체 선박을 고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은 2014년 4월 세월호를 운항한 청해진 해운의 정기여객 운송사업 인천∼제주 항로 면허가 취소되면서 멈춰섰다. 두 차례 실패 뒤 2019년 하이덱스스토리지가 사업체로 선정됐지만, 선사 공모에서 탈락한 한 업체가 ‘공모 무효확인’ 소송을 내면서 다시 늦어졌다. 지난해 하이덱스스토리지가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2만7000t급 여객선인 비욘드 트러스트 호가 바다에 뜰 수 있게 됐다. 인천~제주 여객선 항로가 끊긴 지 7년 8개월 만이었다.

지난달 4일 일출 직전 제주도 30마일 밖 비욘드트러스트호. 중앙포토

지난달 4일 일출 직전 제주도 30마일 밖 비욘드트러스트호.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출항식에서 선사 측은 “선명(船名)엔 ‘신뢰 그 이상을 주는 운항을 하겠다’는 의지와 정성이 담겼다”고 밝혔다. “모두에게 아픔이었던 항로를 다시 운항하기에 안전한 운항으로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겠다”는 게 선사의 각오였다. 방현우 하이덱스스토리지 대표는 2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픔 서린 항로인 만큼 신뢰를 심기 위해 매 순간 안전을 위해 노력했는데 선박 엔진 문제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재운항 전까지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 다시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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