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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부르는 소음 공포…시끄러울수록 男 '이 병' 더 위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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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구암동 고가철도를 지나는 열차의 소음도를 측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남 창원시 구암동 고가철도를 지나는 열차의 소음도를 측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유엔 환경계획(UNEP)은 최근 발간한 '2022 프런티어 보고서'에서 도시 소음을 중요한 환경 문제로 거론했습니다. 유럽연합(EU) 내에서 매년 1만2000명이 소음 공해에 장기간 노출된 탓에 조기 사망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특히 "교통 소음 노출이 혈압 상승, 동맥성 고혈압, 관상동맥 심장 질환 같은 심혈관 질환과 당뇨병과 같은 대사장애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라는 증거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증거가 늘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뒤집어 보면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아직은 엇갈리는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소음이 정말 심혈관질환을 일으킬까요?

UNEP 도시 소음을 심각한 문제로 규정

도시 소음과 산불, 기후변화를 다룬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2년 프런티어 보고서' 표지. [UNEP, 2022]

도시 소음과 산불, 기후변화를 다룬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2년 프런티어 보고서' 표지. [UNEP, 2022]

UNEP 보고서는 2020년에 나온 유럽연합(EU)의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EU 보고서는 다시 2018년 논문을 인용했습니다.
2018년 논문은 관련된 기존 논문 7개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노출 소음도가 10데시벨(㏈) 증가할 때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이 8% 높아진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EU 보고서에 나온 유럽의 조기 사망 숫자는 2012년 소음도 자료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도 UNEP 보고서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프랑슈 콩트대학 연구팀은 24일(현지 시각)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도시 주거지역 교통 소음 노출과 남성의 죽상 혈전 위험 사이에 중요한 연관성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죽상혈전증(粥狀血栓症, Atherothrombosis)은 동맥벽에 지질·섬유질·미네랄 등이 쌓여 동맥이 좁아지고 동맥경화 병변 부위에 혈전이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죽상혈전증은 급성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혈전증을 보여주는 그림 [식품의약품안전처]

혈전증을 보여주는 그림 [식품의약품안전처]

연구팀은 프랑스 중동부의 인구 23만 명 도시 디종(Dijon)의 6개 병원에서 2004~2008년 사이 심근 경색증으로 입원한 환자 879명을 추적, 이들이 노출된 소음 수준과 죽상 혈전 위험도의 상관관계를 조사했습니다.

환자들이 노출된 소음도는 예측 모델을 사용해 주거지 실외 노출 소음 수준을 추정했습니다. 소음도는 '일일 등가 가중 소음 수준(L-Aeq,24시간)'과 야간 등가 가중 소음 수준(L-night) 두 가지로 평가했습니다.

L-Aeq,24시간의 경우는 오르내리는 소음의 24시간 총에너지를 합산한 다음 이를 24시간 고르게 해서 이를 다시 소음도로 환산한 값입니다. L-night도 같은 방식인데, 24시간이 아니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8시간 동안만 산출한 것입니다.

소음 증가하면 남성 죽상혈전증 위험 상승

프랑스 연구팀이 논문에서 제시한 연구 지역의 소음지도(윗 그림)와 1000명 당 심근경색증 환자 발생 빈도. [Scientific Reports, 2022]

프랑스 연구팀이 논문에서 제시한 연구 지역의 소음지도(윗 그림)와 1000명 당 심근경색증 환자 발생 빈도. [Scientific Reports, 2022]

분석 결과, 죽상혈전 위험도는 L-Aeq,24h가 10㏈ 증가할 때 16.5% 상승했고, L-night가 10㏈(A) 증가했을 때는 15.7% 올랐습니다. 초미세먼지나 이산화질소 등 대기오염 영향을 보정한 후에도 L-Aeq,24h가 10㏈ 증가할 때 16.2%가, L-night가 10㏈ 증가할 때는 15.9% 상승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소음이 10㏈ 증가하면 죽상혈전증 위험이 15~16% 높아진다는 얘기입니다.

특이한 것은 L-night가 10㏈ 증가할 때 남성의 경우는 위험도가 26%나 상승했으나, 여성의 경우는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는 여성이 낮은 강도의 소음에 민감하지만, 수면 중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교통 소음에 더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대부분의 연구는 소음이 산화 효소에 의한 혈관 산화 스트레스나 고혈압 악화 등을 통해 심혈관 질환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지지한다"며 "야간 교통 소음이 코르티솔·카테콜아민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이고 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음이 혈관 기능 장애나 고혈압의 발병을 촉진하고, 이에 따라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팀도 '가설'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소음이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작용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국내에서도 소음 증가하면 뇌혈관질환자 늘어

서울 서초구청 소음 특별기동대가 소음민원이 들어온 공사현장에서 소음을 측정중이다. [사진 서초구청]

서울 서초구청 소음 특별기동대가 소음민원이 들어온 공사현장에서 소음을 측정중이다. [사진 서초구청]

UNEP 보고서에서도 인용한 경희대 산업경영공학과 신정우 교수팀의 논문도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종합 환경 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국제 저널에 실린 논문입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과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 2007~2008년 36개 지역, 2009~2013년 37개 지역에서 뇌혈관 질환 환자 총 4만6303명, 고혈압 환자 총 9만5280명, 심장 질환 환자 총 4만4811명을 분석했습니다.
이에 따라 소음이 1㏈ 증가하면 입원 건수는 뇌혈관질환이 0.66%, 고혈압 0.17%, 심장질환 0.3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소음 측정 지점 숫자는 제한돼 있고, 측정 지점과의 거리에 따라 개인이 실제 노출되는 소음 수준은 측정한 소음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연구의 한계입니다.

더욱이 좀 더 들여다보면 소음과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없지 않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환경보건(Environmental Health)' 국제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소음과 뇌졸중 발병의 상관성을 다뤘습니다.

덴마크 연구팀은 1993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모집된 덴마크 여성 간호사 동일집단(코호트) 2만5660명을 2014년 말까지 추적, 이 중 1237명이 첫 뇌졸중(1089건의 허혈성, 148건의 출혈성) 증상을 보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의 소음 노출은 모델을 사용해 예측했고, 24시간 가중 평균의 연평균 값(L-den)으로 평가했습니다. 저녁 시간(오후 7~10시)에는 소음 수준에 5㏈을, 야간 시간(오후 10시~이튿날 오전 7시)에는 10㏈을 가산했습니다.

덴마크 연구에서는 상관관계 낮아 

덴마크의 소음 지도 {Environmental Health, 2021]

덴마크의 소음 지도 {Environmental Health, 2021]

연구팀 분석 결과, L-den과 전체 뇌졸중 발병률 사이에는 10㏈ 증가에 6%의 발병률 상승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초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 오염도 등을 반영해 조정한 결과, 10㏈ 증가하더라도 발병률은 겨우 1%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덴마크 연구팀은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연구팀은 "대기오염 영향을 조정했을 때 상관관계가 떨어지긴 했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44세 이상의 덴마크 여성 간호사 코호트 조사에서 도로 교통 소음과 전체 뇌졸중 또는 허혈성 뇌졸중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소음이 뇌졸중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고 애써 강조했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작업장 소음은 심혈관 질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요?
지난해 2월 '국제 환경(Environment International)' 저널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작업장 소음과 심혈관 질환 문제에 관한 기존 연구 결과들을 분석했는데, 상관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85㏈ 이상의 높은 직업 소음이 유해하다는 증거가 제한적이었고, 이런 소음이 뇌졸중·고혈압 발병률이나 사망률을 높인다는 증거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연구팀은 "직업적 소음 노출이 심혈관 질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추정치를 산출하는 것은 현재로써는 확실한 근거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내 도시 대부분 소음 기준 초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권고하고 있는 소음 수준. [UNEP, 2022]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권고하고 있는 소음 수준. [UNEP, 2022]

소음이 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증거가 더 쌓이면, 지금보다는 훨씬 분명해지겠지요. 그렇다면 소음 대책도 그때부터 세우면 될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지금부터 소음을 낮추려고 노력해야겠지요.

하지만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서울 등 전국 주요 도시의 연평균 소음도는 63.6~71.7㏈이었습니다. 도로변 주거지역의 주간 소음 기준치가 65㏈이니 대부분 도시가 국내 환경 기준치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 53~54㏈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경희대 연구팀은 논문에서 국내 환경 소음 기준을 준수한다면 국내 인구 100만 명당 뇌혈관 질환은 2077건, 고혈압은 5705건, 심장병은 1151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끄러운 오토바이 및 기타 차량에 대한 단속 계획의 일환으로 설치된 소음 제어 음향 레이더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에서 시끄러운 오토바이 및 기타 차량에 대한 단속 계획의 일환으로 설치된 소음 제어 음향 레이더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UNEP 보고서에서도 언급했지만, 독일 베를린의 경우 편도 2차로 자동차 도로를 1차로로 줄이고 자전거 도로를 늘리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소음을 줄였습니다. 덕분에 50만 명 이상이 50㏈ 이상의 야간 소음에 노출됐는데, 이 중 5만 명이 야간 소음 고통에서 풀려나게 됐다고 합니다.

소음 문제에 대한 관심,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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