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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새벽, 폭발음 쏟아졌다…'최후 항전' 우크라 운명의 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세번째 아침을 맞는 26일(현지 시간) 도심은 시가전에 돌입했다. CNN·BBC 등은 이날 새벽, 키예프가 사방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우크라이나군을 인용해 "적이 트로이에쉬시나 근처에서 CHP-6 발전소 근방을 공격 중"이라며 "우크라이나 방위군이 교전 중"이라고 전했다. 트레이에시나는 키예프 북동쪽 주택가 지역이며, 발전소에 대한 공격은 키예프에 전기를 끊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BBC는 관측했다.

26일 키에프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가운데, 섬광과 연기가 상공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6일 키에프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가운데, 섬광과 연기가 상공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키예프에 있는 CNN 취재팀은 "연속적인 섬광이 캄캄한 밤하늘을 밝히는 가운데, 도시의 서쪽에서 남쪽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수도 남쪽에서도 교전 중이다. CNN에 따르면 군 당국은 키예프에서 남서쪽으로 29㎞ 떨어진 바실키프에서 치열한 교전이 보고됐다고 전했다. 이 곳은 러시아군이 키예프 공격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는 군공항이 있는 곳이다. 북쪽 벨라루스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 기갑부대가 키예프 남쪽까지 도달해 도시 포위가 이뤄진 것으로 관측된다.

BBC도 키예프 시내 마이단 스퀘어와 트레이에쉬시나 방면에서 여러 차례 폭발음이 보고됐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키예프에 대한 포격은 도심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을만큼 컸다. 폭스뉴스의 키예프 현장 기자는 "여러 방면에서 공격받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최후까지 항전하겠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심야 영상 성명을 통해 "오늘 밤 몇시간 안에 러시아는 키예프를 공격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운명을 밤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BBC는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 공수부대를 태운 'IL-76' 수송기를 격추했다고 보도했다. 단, 이를 확인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개전 첫날 대부분의 방공 시스템이 파괴된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은 러시아보다 절대 열세에 있다.

25일(현지시간) 우크리아나 방위군이 키예프 시내 교각 위에서 군 트럭과 장갑카로 방어선을 치고 러시아군을 맞을 태세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우크리아나 방위군이 키예프 시내 교각 위에서 군 트럭과 장갑카로 방어선을 치고 러시아군을 맞을 태세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남 전선에서 큰 저항 없이 밀고 들어오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동쪽 제2의 도시 히리키우는 사실상 포위 상태에 있으며, 남쪽에서도 크림반도를 통해 국경을 넘은 러시아군이 드네프르강 남쪽 요충지 멜리토폴에 닿았다고 BBC가 러시아 국방부를 인용해 보도했다. 멜리토폴에서 드네프르 강을 따라 북상하면 우크라이나 제3의 도시 드니프로에 닿고, 더 올라가면 키예프다.

이렇게 되면 침공 후 러시아군이 목표로 삼은 북·동·남 삼면 전선이 거의 장악되는 셈이다. 개전 전 서방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동부 분쟁 지역 돈바스를 넘어 서쪽 드네프르 강까지 진격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날 키예프 시민들은 공습 사이렌 소리와 함께 지하철 등으로 피신했다. 또 이날까지 모집한 자원병에게 개인 화기를 보급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키예프 시내에서 AK 소총을 들고 CNN 인터뷰에 응한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푸틴이 얼마나 많은 병사와 무기를 가졌는지 상관없이 우크라이나는 점령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민에게 "화염병(몰로토프 칵테일)을 준비하라"고 했다. 세계 최강의 군대 중 하나인 러시아를 화염병으로 맞겠다는 데서 키예프의 운명이 그만큼 벼랑 끝에 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몰로토프 칵테일은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한 '겨울 전쟁'에서 핀란드군이 러시아 전차 엔진을 향해 던져 항전했던 무기다. 당시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이 핀란드에 쏟아부은 폭탄을 "빵"에 비유하자, 핀란드는 몰로토프에게 "칵테일로 대접하겠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

러시아의 파죽지세 공세와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측은 '정전 협상'에 대한 발언을 주고받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평화·정전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세르게이 니키로프 대통령 대변인이 25일 늦은 시간에 SNS를 통해 밝혔다. 앞서 러시아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위해 벨라루스 민스크에 대표단을 보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회담 장소를 벨라루스가 아닌 폴란드 바르샤바라고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니키로프 대변인은 "시간·장소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날 미국 재무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BBC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벨라루스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시리아 대통령) 등 독재자와 같은 '아주 작은 그룹'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도 제재 리스트에 추가했다. 앞서 유럽연합(EU)과 영국·캐나다도 이날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 및 러시아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역내 자산 동결 등 개인에 대한 직접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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