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진법 제정, 성범죄 무고 처벌…李·尹 안전공약 따져보니

중앙일보

입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디지털성범죄.

여야가 발행한 공약집에서 ‘범죄예방’ 공약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각 당 공약집은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려 새 정부 정책을 짜는데 주요한 기반이 된다. 범죄예방 분야의 경우 최근 스토킹과 데이트폭력이 강력범죄로 이어지고,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분위기가 반영됐다.

더불어민주당이 22일 발간한 정책공약집.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과 디지털성범죄 수사대 설치가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이 22일 발간한 정책공약집.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과 디지털성범죄 수사대 설치가 골자다.

①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 필요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5일 ‘젠더폭력 근절’을 위한 4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을 가장 먼저 앞세웠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처럼 데이트폭력을 명문화해 단독 범죄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법을 이른바 ‘황예진법’으로 부른다. 이 후보는 앞서 지난해 11월 교제하던 남성에게 폭행당해 숨진 고(故) 황예진씨 유족과도 만나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을 약속했다.

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스토킹 행위가 성립되지 않으면 데이트폭력이 발생해도 피해자를 위한 보호조치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스토킹처럼 데이트폭력을 법적인 개념으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현재 법 체계에서 충분히 가중처벌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관련법 제정 대신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을 교제폭력(데이트폭력)까지로 확대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에서 황예진법 제정 공약을 주도하는 정춘숙 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장실 관계자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정의 규정을 일단 만들어야 하고, 처벌을 어느 수위로 할지에 대해서도 해외 사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24일 발간한 정책공약집. 디지털성범죄 피해 구제를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국민의힘이 24일 발간한 정책공약집. 디지털성범죄 피해 구제를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②스토킹 가해자 위치추적 가능할까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모두 찬성하는 공약도 있었다. 스토킹처벌법상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밝혀야 하는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다.

윤 후보는 스토킹 범죄 가해자도 위치추적을 위한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기 전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지난해 12월 10일 “스토킹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내놓은 ‘범죄피해자 보호 1호 공약’ 중 하나다. 현재는 경찰에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신청한 피해자에게만 스마트워치가 지급된다.

다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더라도 가해자가 풀어버리면 무용지물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전자발찌 이외의 위치추적 장치는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때 벗어버리고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기본권 침해도 우려된다. 일각에선 “위치정보를 끄면 스스로 재범 위험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않겠느냐”고 맞받아친다. 격리조치를 위한 근거로 삼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국민의힘이 24일 발간한 정책공약집. 무고죄 법정형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국민의힘이 24일 발간한 정책공약집. 무고죄 법정형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윤 후보는 동시에 “성범죄에 대한 무고는 특수성을 고려해 관련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형법상 무고죄 처벌 조항이 있지만, 성범죄는 입증이 특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우려된다. 한 법조계 인사는 “성범죄에서 무고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은 굉장히 한정적”이라며 “성폭력 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의 역량이 올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③디지털성범죄 근절에 한 목소리

디지털성범죄를 막기 위한 방안으론 이재명 후보는 경찰청 내 디지털성범죄 전담수사대 설치를 약속했다. 윤석열 후보는 정부가 디지털성범죄 전문요원을 직접 고용해 영상물 삭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디지털성범죄 척결을 위한 컨트롤타워는 범정부 합동기구로 운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가해자 처벌보다도 피해자의 영상 유포 차단과 보호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국내외 범죄 수익을 환수도 사실상 경찰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의 도입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며 “또한 상대방이 공약했다고 배척할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과감히 수용해서 실행할 수 있는 의지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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