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색5미 감자옹심이, 외지인 부르는 강원 토속의 맛

중앙선데이

입력 2022.02.26 00:21

업데이트 2022.05.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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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병산감자옹심이 집에서 판매하는 감자옹심이칼국수. 감자옹심이는 마을 토박이 부부가 5000㎡ 밭에 농사지은 두백 감자를 매일 강판에 갈아서 만든다. 두백 감자는 전분이 많고 갈변은 느려 옹심이나 전 부치기에 좋다. [사진 이택희]

병산감자옹심이 집에서 판매하는 감자옹심이칼국수. 감자옹심이는 마을 토박이 부부가 5000㎡ 밭에 농사지은 두백 감자를 매일 강판에 갈아서 만든다. 두백 감자는 전분이 많고 갈변은 느려 옹심이나 전 부치기에 좋다. [사진 이택희]

3월이면 고구마와 감자 농사를 시작한다. 3월 초에는 밭에 심을 순을 얻기 위해 실내에서 고구마 싹을 틔운다. 3월 중순~4월 초에는 씨감자를 밭에 심는다. 남녘 끝 진도 오일장에서는 지난 주말에 씨감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시골집 텃밭 가꾸기 놀이가 올해로 5년째다. 감자와 고구마는 직업적 경작이 아니면 실패가 적고 손이 덜 가는 작물이다. 내다 팔지는 못해도 맛볼 만큼은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체험 농부들이 마음 편하게 심는다. 직접 키운 감자로 네 가지 음식을 해봤다. 감자전, 감자범벅, 감자옹심이, 언 감자로 전분 만들기다. 결과는 각각 성공, 성공, 절반 성공, 실패였다.

맛·스타일 규격화 안돼 음식점마다 달라

병산감자옹심이 집. [사진 이택희]

병산감자옹심이 집. [사진 이택희]

전분으로 앙금은 만들었으나 잡티가 많고 색이 탁했다. 역한 냄새도 빠지지 않았다. 둥근 옹심이는 끓여도 속이 안 익었다. 이 얘기를 들은 당시 한식진흥원 이사장 선재 스님은 반죽을 새알심 빚기 조심스러울 만큼 질게 하고, 옹심이는 가운데가 움푹한 원반처럼 얇게 떼 넣으라고 비법을 알려줬다. 반죽이 되면 익지 않고, 너무 질면 익기 전에 풀어져 죽이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감자 심는 철이 다가오고, 그 실패의 추억이 떠오르자 감자옹심이 생각이 났다. 이 음식을 파는 식당이 가장 많은 곳은, 두부와 커피에 이어 최근에는 분식(장칼국수·짬뽕)으로 외지인 발길을 이끄는 강릉이다. 시에서 지정한 ‘감자옹심이마을’까지 있다. 강원도 향토 음식인 감자옹심이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 거른 건더기와 가라앉은 앙금을 따로 여러 차례 치대고 헹구고 우려내 섞어 반죽한 다음 새알심을 빚어 장국에 끓인 일종의 수제비다. ‘옹심이’는 새알심의 강원도 말.

병산감자옹심이 집에서 판매하는 장칼국수. [사진 이택희]

병산감자옹심이 집에서 판매하는 장칼국수. [사진 이택희]

강릉시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4년 전부터 시내 5개 권역에 특산음식 마을을 육성했다. 초당 두부마을, 사천 물회마을, 주문진 해물마을, 소금강 산채마을과 병산(柄山) 옹심이마을이다. 바닷가 농촌인 병산에는 감자옹심이·감자적 음식점 8곳이 몰려 있다. ‘감자적’은 감자전의 강릉 말이다. 하지감자가 나오는 여름이 이들 음식의 제철이지만, 요즘은 저장시설이 좋아 사철 먹을 수 있다. 지난주 강릉에서 이틀 동안 다섯 곳의 감자음식(옹심이·송편·전)을 맛봤다.

병산감자옹심이에서 감자를 강판에 갈아 만든 옹심이반죽. [사진 이택희]

병산감자옹심이에서 감자를 강판에 갈아 만든 옹심이반죽. [사진 이택희]

첫날 처음 간 곳은 지역 음식점들을 탐색해 인터넷에 소개하는 40대 강릉 여성이 추천한 집이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찐 맛집’이라 했다. 병산이 아니라 단오공원 근처에 있는 ‘만나옹심이손칼국수’다. 단호박과 감자를 썰어 넣고 끓인 국물은 걸쭉하면서 시원한 맛이다. 국물이 걸쭉한 건 반죽이 묽어 옹심이 표면의 전분이 풀어져 섞였기 때문이다. 반죽에 밑간을 한 듯 국물과 맛이 잘 어우러졌다. 말간 옹심이 한 점을 입에 넣자 감자 섬유질이 아삭하게 씹히는 질감이 상쾌하다. 국물은 해물을 달여 쓰는 듯하다. 다른 업소에서는 못 본 다시마 나물이 반찬으로 나왔다. 젊은 여주인은 옹심이 국물을 내고 남은 걸 채 썰어 볶았다고 한다. 가족 손님이 많았다.

솔바람감자적의 감자적. [사진 이택희]

솔바람감자적의 감자적. [사진 이택희]

병산으로 옮겨 마을을 둘러보다 손님이 많은 ‘감자적본부’로 들어갔다. 앞마당에 노송이 가득해 눈에 띄기도 했다. 길 건너에 새로 문을 연 ‘감자적1번지’와 친척이라 한다. 감자옹심이는 말간 국물에 애호박과 당근 채가 들어갔다. 맛이나 간이 국물처럼 말갛고 슴슴하다. 옹심이는 감자 섬유질 가닥이 고슴도치 등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보이고 질감도 아삭하다. 감자를 강판에 손으로 갈아야 그런 모양과 질감이 나온다고 한다. 여행자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다.

만나옹심이손칼국수의 감자옹심이. [사진 이택희]

만나옹심이손칼국수의 감자옹심이. [사진 이택희]

강릉에 살면서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가르치는 50대 교수는, 병산 ‘솔바람감자적’에서 전에 막걸리 마시고 옆집 옹심이를 주문(두 그릇 이상 가능)해 먹으라고 추천했다. 접시를 덮고도 남는 커다란 전은 차져서 젓가락으로 잘 찢어지지 않는다. 가끔 씹히는 매운 고추는 미각을 일깨워준다. 실내 포장마차 같은 업장은 노송 군락 가운데 자리 잡아 운치도 그만이다. 25년쯤 전부터 이 마을에서 감자 음식을 처음 판 집이라 한다. 노부부가 3300㎡(1000평) 넘는 바닷가 밭에서 농사지은 감자를 갈아 전분 한 숟갈 넣고 반죽해 전을 부친다. 감자는 전분이 많고 갈변은 더딘 설봉 품종이다. 골프를 화제로 막걸리를 마시는 중년 남자들이 여럿 보였다. 배가 불러서 옹심이 맛보기는 다음날로 미뤘다.

감자적본부의 감자옹심이. [사진 이택희]

감자적본부의 감자옹심이. [사진 이택희]

택시에서 70세쯤으로 뵈는 기사에게 강릉 음식을 물었다. 오래 연구했다고 강조하며 ‘강릉감자옹심’을 추천했다. “강릉에서 이 집이 원조이고 45년 넘었다”며 “맛도 역사도 1등”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25~26년 전 감자옹심이를 처음 알게 된 집이다. 다음날 찾아가니 가정집을 개조한 예전 모습 그대로이고, 운영은 며느리가 하고 있었다. 다른 집 옹심이는 수제비 모양인데 여기는 새알처럼 동그랗고 표면도 거칠지 않다. 멸치 맛이 나는 국물은 점도가 좀 있으나 색은 말갛다. 맛은 집에서 해 먹는 것처럼 수더분하고 고전적이다. 1998년 강릉세무서장이 ‘특산음식 업소’로 지정했다는 증서가 벽에 걸려 있다. 손님 구성은 다양하고, 인증샷을 찍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감자전, 젓가락으로 안 찢어질 만큼 차져

강릉감자옹심 강릉본점의 감자옹심이. [사진 이택희]

강릉감자옹심 강릉본점의 감자옹심이. [사진 이택희]

끝으로 대학교수가 전날 추천했지만, 배가 불러 못 들른 ‘병산감자옹심이’로 갔다. 마을 토박이 부부가 농사지은 감자를 매일 갈아 옹심이를 빚는다. 옆집(‘솔바람감자적’)에서 전을 팔기 때문에 여기는 전이 없다. 5000㎡(1500평) 밭에 두백 감자를 재배한다. 두백은 전분이 많고 갈변은 느려 갈아서 옹심이나 전 부치기에 좋다. 하지만 소출이 적어 농부들이 재배를 기피해 시장에서 드물다. 여주인 김정자(68) 씨는 어려서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감자 갈라고 해 배운 일을 반세기 넘게 하고 있다. 음식점은 2000년쯤 시작했다. 퇴직한 남편과 자식에게 용돈 신세 지지 말자고 나선 게 ‘병산 옹심이마을’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그 전에는 ‘솔바람’만 있고, 옹심이 음식점은 없었다.

“다른 집들은 우리 집에 손님이 줄을 서니까 그 이듬해부터 너도나도 했어요. 이 음식이 쉬워 보여도 아주 까다로워요. 감자를 갈아 자루에 넣고 여러 번 치대고 헹궈야 해요. 그래야 아린 맛은 빠지고 색이 안 변하고 옹심이 색깔이 뽀얗게 나와요. 옹심이가 더 부드럽기도 하고요. 갈고 치댈 때 나온 전분도 가라앉혀 물을 몇 번 갈아주면서 우려야 해요. 엄마가 하던 옛날 방식 그대로 하는데 보통 힘든 게 아녀요.”

말은 그래도 하얀 반죽 덩이와 커다란 강판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담겼다.

맛이 시원한 국물에선 자잘한 홍합 살이 보였다. 아침마다 속초중앙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다가 국물을 만든다고 한다. 옹심이는 선재 스님 설명과 같은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맛이 꽉 찬 느낌이다. 장칼국수 맛도 놀라웠다. 토속적인 강원도 맛이다. 막장을 쓰는지 물었더니 메줏가루 많이 넣고 고추장을 직접 담가 쓴다고 한다. 먹지 못한 장칼옹심이에 아직 미련이 남는다.

감자옹심이 맛과 스타일은 집마다 달랐다. 학교나 선배 요리사에게 배운 조리법이 아니라 집에서 해 먹던 가정 음식이 식당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규격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토속음식들이 미식 시장에서 위축되지 않고 손님을 끌고 있는 것은 저변 음식문화의 뿌리 깊은 생명력 덕분일 터이다. 반갑고 응원할 일이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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