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까르띠에·티파니 럭셔리 주얼리, 철물점서 영감 얻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7호 18면

[서정민의 ‘찐’ 트렌드] 명품과 철물의 만남

티파니가 올해 1월 새로 선보인 ‘노트’ 컬렉션 반지와 팔찌. [사진 각 브랜드]

티파니가 올해 1월 새로 선보인 ‘노트’ 컬렉션 반지와 팔찌. [사진 각 브랜드]

코로나 19로 해외여행이 막히고, 면세점 이용 기회 또한 사라지면서 백화점 해외 명품 브랜드 매출은 연일 고공행진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신부의 발길도 분주한데, 요즘 해외 명품 주얼리 브랜드 매장에 입장하려면 두세 시간의 기다림은 기본이다. 막상 매장에 들어가서도 원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기 십상이다.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해도 실물을 받기까지 또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른다. 꼭 결혼 예물이 아니어도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해외 명품 주얼리 매장 앞은 젊은 커플들로 북적인다. 이들 젊은 소비자들이 사고 싶어 안달 난 디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MZ세대가 좋아하는 주얼리 디자인 중에는 엉뚱하게도 ‘철물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꽤 있다. 볼트·너트·와셔·못·망치·와이어(쇠줄)·스터드 등의 모양을 연상하면 쉽다. 한 개에 수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도 호가하는 명품 주얼리와 동네 철물점 공구는 전혀 아귀가 안 맞는 조합이라 의아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주얼리라고 하면 흔히 ‘화려함’이라는 수식어부터 떠오르기 때문이다.

까르띠에 ‘클래쉬’ 컬렉션 반지. [사진 각 브랜드]

까르띠에 ‘클래쉬’ 컬렉션 반지. [사진 각 브랜드]

그런데 화려하다고 해서 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순수한 디자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감이 있다. 와이즈건축 장영철 대표의 “‘~보다 좋은’ 게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한’ 디자인”(『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디자인’이라는 말조차 붙이기 어색할 만큼 익숙한 모양의 제품들이 많다. 각각의 쓰임에 맞게 완벽한 구성과 비례를 갖고 있어서 처음 선보인 이래 수십 또는 수백 년 동안 모양 자체는 큰 변화가 없는 도구들이다. 철물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구부리고, 연결하고, 쌓고, 고리를 걸 수 있는 하드웨어(철물) 특유의 특징은 주얼리 제품들과 닮은 점이 많아 영감을 얻기에도 수월해 보인다.

프레드의 아이코닉 컬렉션 ‘포스텐 윈치’ 반지. [사진 각 브랜드]

프레드의 아이코닉 컬렉션 ‘포스텐 윈치’ 반지. [사진 각 브랜드]

철물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는 프랑스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의 인기 컬렉션 ‘러브(LOVE)’와 ‘저스트 앵 끌루’가 대표적이다. 한눈에 봐도 드라이버로 조인 나사와 못이 연상되는 이 파격적인 디자인은 1970~80년대 초 활동했던 디자이너 알도 치풀로(1953~1984)에 의해 탄생했다. 이별의 상처로 잠 못 이루던 69년의 어느 날 새벽, 치풀로는 사랑했던 사람과의 시간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추억뿐이라며 누구도 그 추억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 버리는’ 주얼리 디자인을 생각해냈다. 이렇게 탄생한 ‘러브’ 팔찌는 전용 스크루 드라이버를 이용해 착용자의 손목에 고정시키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당시 주얼리를 착용하는 방식에서도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프레드의 아이코닉 컬렉션 ‘포스텐’ 팔찌. [사진 각 브랜드]

프레드의 아이코닉 컬렉션 ‘포스텐’ 팔찌. [사진 각 브랜드]

71년에 치풀로는 철물 콘셉트의 주얼리 명작을 또 하나 만들어낸다. ‘못’ 모양의 팔찌다. 치풀로는 생전에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내가 가진 집 두 채 중 두 번째 집은 철물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파격적인 형식과 록 음악의 자유분방함에 끌렸던 그는 24시간 후 못을 똑닮은 모양의 팔찌 디자인을 완성한다. 2012년 이 못 모양의 팔찌는 ‘저스트 앵 끌루’라는 이름의 컬렉션으로 재탄생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다. 장신구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배우 하정우도 ‘내돈내산’할 만큼 남성 고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뾰족뾰족 솟은 스터드를 촘촘하게 세팅한 ‘클래쉬’ 컬렉션도 까르띠에가 자랑하는 디자인으로 과감하면서도 자유분방한 하드웨어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좋은 까르띠에 ‘저스트 앵끌루’ 컬렉션 팔찌. [사진 각 브랜드]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좋은 까르띠에 ‘저스트 앵끌루’ 컬렉션 팔찌. [사진 각 브랜드]

지난 1월 티파니는 새로운 컬렉션 ‘노트(Knot·매듭)’를 출시했다. 브랜드가 시작된 뉴욕 거리의 건축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쇠줄 매듭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티파니 관계자는 “강한 개성과 타인에 대한 무언의 이해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뉴요커들은 개인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들과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며 “체제전복적인 대범한 디자인은 반항의 의미인 동시에 유대감의 징표로 사람과 사람 그리고 뉴욕 그 자체와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티파니의 또 다른 인기 컬렉션인 ‘하드웨어’ 역시 뉴욕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사현장 구조물과 도구가 영감의 원천이 됐다. 볼륨감이 느껴지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우아하고 단순한 디자인에선 활기차게 움직이는 도시 뉴욕의 경쾌함과 여성의 대담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느껴진다.

독특한 볼륨감과 디자인이 돋보이는 티파니 ‘하드웨어’ 컬렉션 목걸이. [사진 각 브랜드]

독특한 볼륨감과 디자인이 돋보이는 티파니 ‘하드웨어’ 컬렉션 목걸이. [사진 각 브랜드]

프랑스 모던 주얼리 브랜드 프레드의 ‘포스텐(Force 10)’ 역시 힘을 상징하는 하드웨어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1966년 첫선을 보인 포스텐 팔찌는 요트 부속품에서 디자인이 출발했다. 굵은 밧줄을 연상시키는 섬유소재 줄 양끝을 리벳으로 세공한 후 배의 닻 고리 형태 버클로 마무리한 모양이 특징이다. 이후 50여 년간 포스텐 디자인은 모든 선원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인 윈치(드럼에 와이어 줄을 감아 짐을 이동시키는 기계) 등이 더해져 업그레이드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해풍에 몸을 싣고 나가는 모험가의 강인한 힘과 낭만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주얼리라는 이미지는 변치 않는다.

전용 스크루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여서 착용하는 까르띠에 ‘러브’ 팔찌. [사진 각 브랜드]

전용 스크루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여서 착용하는 까르띠에 ‘러브’ 팔찌. [사진 각 브랜드]

해외 명품 주얼리와 하드웨어(철물)의 예술적 만남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다. 일단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이미지가 만나 이뤄내는 혁신이다. 이는 아주 대담한 발상인데, 주얼리를 만드는 브랜드 입장에선 오랜 역사와 탄탄한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시도할 수 없는 자신감의 증표다. 철물점이든 어디든,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익숙함 속에서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특별한 미학을 찾아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파격적인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은 디자인이다. 스타일리스트 이한욱씨는 “얼굴에서 시선이 바로 연장되는 목선과 귓불, 그리고 말할 때 가장 많이 움직이게 되는 손목과 손은 의외로 눈길이 자주 가는 부분인데 이때 예상치 못한 디자인의 장신구라면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된다”며 “그 모양이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우아함’이라는 단어와는 멀게 느껴졌던 철물에서 왔다면 패션 감각이 남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또 “금·플래티넘·다이아몬드 등 고가의 보석과 캐주얼한 철물 디자인이 어울린 장신구는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위트가 있어 보인다”며 “MZ세대가 결혼예물이나 커플 장신구로 이런 디자인을 많이 찾는 이유도 기존 보석 장신구에서 연상되는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