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으로 수도 키예프가 함락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운명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친러시아 정부를 세울 수도 있고 동부 친러시아 돈바스 지역에 국한해 지배권을 확고히 굳힌 뒤 물러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도 새로운 해법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핀란드화’의 화두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가 긴장 해소 방안 중 하나로 푸틴 대통령에게 제안할 내용 중 하나”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다음날 마크롱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미 국제사회의 관심은 한껏 높아진 뒤였다.
사실 이 카드는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꺼낸 건 아니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던 2014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우크라이나가 살아남으려면 어느 한쪽에 붙기보다는 양측을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며 핀란드화만이 살길이란 요지의 주장을 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미국과 유럽 외교가에서 핀란드화의 실현 가능성을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오가기도 했다.
핀란드화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생겨난 용어다. 옛 소련과 국경을 접한 핀란드가 정치적으로는 친러 성향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서방과의 교류를 증진하는 가운데 군사적으로는 엄정한 중립을 표방하며 양측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주권을 보장받게 된 상황을 뜻한다. 당시 핀란드는 1948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옛 소련의 직접적인 침략은 받지 않았지만 내정과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간섭을 받고 있던 터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가를 문서로 보장하라는 러시아의 주장과, 나토의 개방 정책은 포기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 사이에서 핀란드화가 하나의 절충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중립적 완충지대’로 만드는 게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핀란드 사례를 우크라이나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적잖다. 글로벌 통계전문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조사 결과 우크라이나인의 59.2%가 나토 가입에 찬성해 반대(28.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처럼 나토 가입 찬성 여론이 다수인 상황에서 사실상 무장 해제를 뜻하는 군사적 중립안을 우크라이나 국민이 선뜻 수용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다.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갈라져 동서로 대립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자국 내 상황도 핀란드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내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중립국화를 추진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1인당 국민소득 등 우크라이나와 핀란드의 국력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도 2014년 핀란드화가 처음 거론될 당시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나 국가 청렴도 등에서 핀란드화를 고려할 만한 국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합법적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핀란드화 논의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