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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우크라이나]마크롱이 제안한 우크라의 핀란드화, 내부 사정 복잡해 실현 미지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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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호 10면

SPECIAL REPORT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으로 수도 키예프가 함락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운명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친러시아 정부를 세울 수도 있고 동부 친러시아 돈바스 지역에 국한해 지배권을 확고히 굳힌 뒤 물러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도 새로운 해법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핀란드화’의 화두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가 긴장 해소 방안 중 하나로 푸틴 대통령에게 제안할 내용 중 하나”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다음날 마크롱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미 국제사회의 관심은 한껏 높아진 뒤였다.

사실 이 카드는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꺼낸 건 아니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던 2014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우크라이나가 살아남으려면 어느 한쪽에 붙기보다는 양측을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며 핀란드화만이 살길이란 요지의 주장을 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미국과 유럽 외교가에서 핀란드화의 실현 가능성을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오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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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화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생겨난 용어다. 옛 소련과 국경을 접한 핀란드가 정치적으로는 친러 성향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서방과의 교류를 증진하는 가운데 군사적으로는 엄정한 중립을 표방하며 양측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주권을 보장받게 된 상황을 뜻한다. 당시 핀란드는 1948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옛 소련의 직접적인 침략은 받지 않았지만 내정과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간섭을 받고 있던 터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가를 문서로 보장하라는 러시아의 주장과, 나토의 개방 정책은 포기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 사이에서 핀란드화가 하나의 절충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중립적 완충지대’로 만드는 게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핀란드 사례를 우크라이나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적잖다. 글로벌 통계전문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조사 결과 우크라이나인의 59.2%가 나토 가입에 찬성해 반대(28.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처럼 나토 가입 찬성 여론이 다수인 상황에서 사실상 무장 해제를 뜻하는 군사적 중립안을 우크라이나 국민이 선뜻 수용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다.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갈라져 동서로 대립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자국 내 상황도 핀란드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내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중립국화를 추진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1인당 국민소득 등 우크라이나와 핀란드의 국력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도 2014년 핀란드화가 처음 거론될 당시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나 국가 청렴도 등에서 핀란드화를 고려할 만한 국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합법적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핀란드화 논의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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