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타는 우크라이나]유럽은 무기력, 미국은 허 찔렸다…속내 감춘 푸틴 교란 전략에 말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77호 09면

SPECIAL REPORT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부터)이 지난 8일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부터)이 지난 8일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은 무기력했고 미국은 허를 찔렸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미국 워싱턴 조야에서 나오는 평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에 일정 부분 말려들었다는 얘기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동부 도네츠크·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러시아군 파병을 지시했다. 24일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아주 똑똑한 결정을 했다”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대로 미국과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말 이후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하며 주도권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서방 각국의 미묘한 입장 차가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 대응 전략을 둘러싸고 주도권 다툼을 벌여 왔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지나친 간섭으로 국익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한편 미국이 주축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대신 EU를 앞세워 사태 해결을 모색했다.

관련기사

실제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7일 직접 러시아로 건너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이후에도 전화 회담 등을 통해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같은 행보에는 지난해 미국의 기술 공여로 호주와의 핵잠수함 계약이 불발되는 바람에 깎였던 국제사회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 확보에 집착하다 쓴잔을 마셨다. 숄츠 총리는 최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발트해를 관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하자 뒤늦게 사업 중단을 발표했다. 러시아 제재보다 자국 이익을 앞세우다가 명분만 잃게 된 셈이다. 영국 입장에서도 런던 금융시장의 큰손인 러시아 고객들이 서방의 제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건 달갑지 않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AP통신 등은 “서방 내부의 ‘동상이몽’으로 인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러시아 통제에 실패했다”며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된 것은 푸틴 대통령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전쟁이 터지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 유럽 국가들과 한발 떨어져 대응할 수 있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점도 대러시아 공조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런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서방 국가들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나섰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한목소리를 내면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 전쟁은 푸틴이 선택했다. 러시아 침공은 묵인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미 정부도 러시아의 경제와 국제 경쟁력에 타격을 주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러시아의 주요 은행 4곳을 제재하기 위해 서방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막고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 정부가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나 장비를 사용한 첨단 제품에 대한 러시아 수출도 금지했다. 수출 제한으로 러시아 산업의 목줄을 죄겠다는 의도다. EU와 영국도 로시야은행과 크림반도 흑해은행 등 주요 은행과 러시아 재벌들의 자산 동결 및 거래 금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제재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잖다. CNN도 “현재까지 내놓은 제재로 인해 러시아가 군사작전을 중단할 가능성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러시아 외환 보유고가 635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넉넉하고 지난해 국가 부채 비율이 18%에 불과해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미 정부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 등 보다 강력한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의 전면적인 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