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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복지에 열광…집 청소, 골프회원권 대여까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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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호 06면

진화하는 사내복지 

“입사 후에는 따로 미용실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죠. 회사에서 고용한 헤어디자이너에게 제 머리를 맡깁니다. 간단한 커트부터 염색과 두피 클리닉까지 모두 가능해요. 비용이요? 당연히 회사가 지불하죠. 이렇게 케어받을 수 있다 보니 업무 몰입도도 더 높아지는 것 같아요.”

모바일 금융플랫폼 토스에서 일하는 30대 백현지 매니저는 지난 15일 사내 미용실에서 염색 시술을 받았다. 두 달에 한 번씩 이곳을 찾는 백 매니저는 “토스 직원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3~4주 전부터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가 제공하는 사내복지는 직원들도 외우기 벅찰 정도로 다양하다. 출근길 모닝커피 주문부터 옷 수선, 택배 발송 등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회사가 모두 제공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핀테크 기업 핀다는 최대 1억원까지 주택자금 무이자 대출을 지원한다. 서비스 기획자 박모씨는 “올해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 제도를 활용했다”며 “다른 직장도 다녀봤지만, 이런 혜택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업무 장비 구매 시 120만원까지 현금 지급’ 제도도 인기다. 핀다의 인사팀 매니저인 안모씨는 “재택근무에 필요한 자세교정 의자, 모션데스크를 구매했다”며 “회사의 지원 덕분에 소속감도 높아지고, 삶의 질이 대폭 상승했다”고 전했다.

회사 지원을 받아 꾸민 책상. [사진 핀다]

회사 지원을 받아 꾸민 책상. [사진 핀다]

자녀 교육비 지원, 육아휴직 수준에 머물렀던 사내복지가 MZ세대(1980년대~2000년대생)를 만나 또 하나의 신성장 무기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사내복지는 집 청소 서비스, 반려동물 동반 출근, 골프회원권 대여, 심리상담 등 파격적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신한은행은 2020년부터 미혼 직원에게 연 1회 10만원씩 ‘욜로지원금’을 지급한다. 기혼 직원의 결혼기념일에 지급하던 축하금과 형평성을 맞춘 셈이다. LG CNS는 회사 골프회원권을 일반 사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진화하는 사내복지는 구직과 구인의 합작품이다. 지난 14일 커리어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높은 연봉(25.7%), 사내복지 및 복리후생(19.6%), 회사비전 및 성장 가능성(17.8%), 안정성(14.3%) 순으로 목표 기업을 정한다. ‘연봉 많은 곳이 최고’라던 기성세대와 달리, 디테일한 복지 혜택이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오피스 커피 구독 서비스 업체인 블리스커피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회사 커피는 커피믹스였지만 이제는 직원 취향에 맞춰 원두도 골라준다”며 “기업들이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스타트업 최고인적자원책임자(CHRO)는 “20년 전 구글이 하던 복리후생 제도를 국내 스타트업들이 연달아 도입하면서 인재를 확보했고, 최근엔 대기업도 이를 따라가는 추세”이라며 “요즘 기업에는 인사팀과 별도로 직원들의 업무환경·복리후생 컨설팅을 담당하는 피플팀이 필수 부서”라고 말했다.

토스 사내 헤어살롱에서 미용 중인 직원. [사진 토스]

토스 사내 헤어살롱에서 미용 중인 직원. [사진 토스]

MZ세대가 기업 문화를 뒤흔들 정도로 사내복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들이 ‘구성원으로서의 존중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여서다. 권기욱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에게 급여는 더 이상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일한 만큼 월급 받는 건 당연하고, 덧붙여 회사가 직원들을 세심하게 관리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기에 사내복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40~50대는 동종 업계로 이직하면 ‘배신자’ 소리를 들었지만, 20~30대에게 이직은 일을 잘한다는 증거”라며 “급여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연봉 이외의 조건이 좋은 업체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 복지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MZ세대의 인식도 사내복지를 갈망하게 한다. 이들은 4대 보험을 성실히 내지만 은퇴 후 이를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지 않다. ‘개천에서 용 나는’ 계층 이동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엔씨(NC)가 지난 2017년 도입한 직원 학자금대출 상환 제도도 국가 지원이 불충분한 부분을 회사가 메워주겠다는 취지였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최근 ‘청년희망적금’ 광풍을 예로 들며 “청년층 자산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일정 소득 이상의 청년들은 국가의 복지정책에서 배제된 측면이 있다”며 “기성세대만큼의 복지혜택을 받긴 어렵다 보니 직장에서라도 복지 혜택을 지원받겠다는 시대적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과도한 사내복지 열풍이 조직문화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원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내복지만으로 조직문화를 바꾸고, 직원유출을 막겠다는 건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며 “아무리 좋은 복지혜택을 제공해도 업무 자체가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없다면 금방 질리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업무 강도나 커뮤니케이션 절차 등 근본적이고 내재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조직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내복지는 양극화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소수의 ‘좋은 곳’에 다니는 직장인과 대부분의 그렇지 못한 직장인의괴리감이 깊어질 수 있다. 이 교수는 “사내복지 열풍도 안정된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만의 이야기일 수 있다”며 “중소기업에서는 복지는커녕 임금협상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MZ세대, 직장서 가장 얻고 싶은 건 “개인 역량 발전”

“기존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데 치중하는 대기업보다는, 개발자로서 업무를 주도할 수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 16일, 취업 준비생 A(27)씨는 스타트업을 목표로 한 이유를 똑부러지게 답했다. 그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이 아닌 일반 대기업에서는 하나의 부품처럼 한정적인 업무를 소화하게돼 개발 실력을 키우기가 힘들다”며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며 성과도 내고, 개발자로서 성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B(31)씨는 중견기업 취업 1년 만에 연봉이 더 낮은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그는 “이전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했지만 업무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며 “이직 후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등 직무 역량을 높일 수 있었고 타 직군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져 만족한다”고 말했다. B씨는 전 직장 수준까지 연봉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직을 후회한 적은 없다.

A씨, B씨와 같은 MZ세대가 직장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뭘까. 지난해 9월 취업플랫폼 잡코리아가 MZ세대 직장인 및 취업 준비생 1776명에게 물어봤다. ‘개인의 역량 향상과 발전(56.4%·복수응답)’이라는 대답이 1위에 올랐다. ‘높은 연봉으로 경제력을 높이는 것(54.6%)’, ‘일과 가정의 밸런스(46.8%)’는 각각 2, 3위로 뒤를 이었다. 현재 직장에 만족한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일이 적성에 잘 맞고 재미있다(58.8%)’ ‘일을 하면서 자신이 많이 발전하는 것 같다(36.4%)’ 순이었다.

김선애 한국경영자총협회 임금·HR정책팀장은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M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성장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구직할 때도 기업 규모에 연연하기보다 역량 개발과 발전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긍정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MZ세대가 지적 성장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이들이 자라온 환경에 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수많은 선택권이 주어진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신이 결정권을 가지는 것에 익숙하다. 또 개인이 디지털 디바이스로 언제든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성장해 공동체보다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개인으로서 정체성이 강한 MZ세대가 조직에서 자신의 성장을 우선시 하는 건 당연하다”며 “좋아하는 조직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갖기 위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희미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MZ세대는 조직이 나의 미래를 책임져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지금 내가 이 조직에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이직을 대비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이 세대가 원하는 성장의 기회나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기업에서는 인재가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업은 직원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개인의 성장이 조직의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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