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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질병 중 하나는 ‘피로’다. 평상시에 하던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지친 상태를 말한다. 피로 해소의 열쇠는 멀리 있지 않다. 자신을 고갈시키는 피로의 신호를 읽고, 무심코 해오던 일상의 습관을 되짚어 보는 게 먼저다.
피로의 원인은 다양하다. 나쁜 생활습관에 적응해오던 신체가 더는 감당할 수 없어 피로할 수 있다. 피로는 또 다양한 질병의 초기 증상으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두통·식욕 변화 동반 피로 땐 검진
이유 없이 극심한 피로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두통, 식욕 변화 등 다른 증상을 동반한 경우에는 병원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현재의 피로 증상이 생활습관에 따른 피로가 아닐 수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피로감의 약 20%는 특정 장기의 이상 등 질병을 알리는 신호”라며 “한 달 이상 이해할 수 없는 피로감이 지속할 때는 건강기능식품이나 몸에 좋은 약을 찾기 이전에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로를 일으키는 흔한 질환으로는 에너지 대사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갑상샘기능 항진증·저하증이 있다. 빈혈의 경우도 어지럼증보다는 오히려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일어날 때 두통이 있고 낮에 심하게 졸리면서 피곤하면 수면 무호흡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심장·폐 등 산소를 운반하는 장기에 이상이 있거나 해로운 물질을 대사시키는 간, 노폐물을 제거하는 신장에 질환이 있을 때도 피로감이 생긴다. 오래된 피로를 호소하는 환자에서 흔한 원인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기도 하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주로 피곤하고 의욕이 없다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피로는 다양한 바이러스성 감염 질환에서 회복한 뒤 후유증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상 교수는 “감염을 치료한 환자의 1~5%에서 피로 증상이 확 높아지는 ‘바이러스 감염 후 피로증후군’이 발생한다”며 “감염성 질환은 몸에 염증을 많이 일으키는데, 이에 따른 후유증의 주요 형태가 피로”라고 설명했다.
감염성 질환을 겪은 뒤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피로감은 숙면과 영양 섭취, 명상·요가·반신욕과 같은 신체 이완으로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충분히 휴식해도 풀리지 않는 피로감을 최소 한 달 이상 겪는 때다. 김 교수는 “감염 회복 후 염증은 사라졌어도 염증 반응에 따른 혈관 손상이나 호르몬·자율신경 기능 등에 불균형이 남아 있으면 만성 피로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감염 후 만성 피로로 병원을 찾으면 자율신경기능·호르몬·혈액 검사 등으로 피로를 일으키는 불균형의 원인을 찾는다. 진단 결과에 따라 호르몬 균형이나 항산화를 돕는 영양 치료, 점진적인 유산소 운동 처방, 필요한 경우 소량의 항우울제 치료를 한다. 김 교수는 “치료가 필요한 만성 피로일 땐 뇌 신경 변화를 동반했다는 뜻이라서 변화의 원인을 찾아 대처해야 한다”며 “충분히 쉬고 영양을 섭취했음에도 낫지 않는 피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병적인 원인이나 후유증으로서의 피로가 아닐 때 원인은 생활습관이다. 물리적·정신적 자극과 이를 이겨내는 방어 능력 사이에 균형이 깨진 것이다. 잦은 음주와 흡연, 불규칙한 수면만이 문제가 아니다. 평소에 일을 몰아서 하고, 휴식한다며 움직이지 않는 습관이 있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외부 자극과 방어 능력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먼저 일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몰아서 하지 않아야 한다. 신체적·정신적 에너지의 80% 정도만 쓸 수 있도록 일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20%의 여유분은 비상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남겨둔다. 그러려면 우선순위를 정해 제일 중요한 일을 가장 기운이 남아 있을 때 먼저 하면 도움이 된다. 일을 몰아서 했다가 지치는 것을 반복하기보다 한 주에 걸쳐 일정하게 일을 분배해 중간중간 휴식하는 것이 좋다.
피로가 쌓이면 누워 있으려고만 하고, 몸을 움직이길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운동하면 피로가 심해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즐기면서 하는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피로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운다. 유산소 운동은 온몸을 지속해서 움직이는 운동으로, 심장을 평소보다 빨리 뛰게 하고 숨을 차게 하는 운동을 말한다. 빨리 걷기, 수영, 에어로빅, 자전거, 탁구, 배드민턴 등이다. 몸을 약간 피곤하게 하면 신체는 피곤을 이기기 위해 적응해 나간다. 운동도 몸에는 일종의 스트레스지만 결과적으론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에너지원이 된다.
유산소 운동은 하루 최소 30분 이상을 하는 게 좋은데 한 번에 10분 이상씩 세 번을 해도 된다. 다만 최소 주 3회 이상은 하는 것이 도움된다. 주 2회 이하의 운동은 심폐 기능을 향상하는 효과가 별로 없어서 자칫 운동할 때마다 피로를 느끼게 되고, 활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피로회복제’는 별로 도움 안 돼
피로감을 줄이려면 신체 활동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시간에 적당량 골고루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에너지가 필요할 때 영양 공급이 제때 안 되거나 활동량보다 음식 섭취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면 피로로 이어진다. 박민선 교수는 “운동하는 날엔 간식을 통해서라도 음식 섭취를 늘려야 체력이 바닥나 피곤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운동량만 늘리면 힘이 고갈돼 움직이기 싫어지고, 체력 저하로 이어져 피로 해소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지칠 때마다 습관적으로 마시는 ‘피로회복제’ 드링크류는 어떨까. 이 역시 피로 해소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피로를 가중한다. 피로회복제를 마시면 피로가 해소되는 듯 정신이 드는 이유는 주성분인 카페인·타우린·과라나 등 때문이다. 이런 성분 때문에 기운이 나는 것 같지만, 이는 피로가 풀려서라기보다 각성 효과다. 다양한 드링크류의 대다수가 고카페인 음료다. 드링크류를 마신 뒤 밤잠을 설치면 다음 날 다시 피곤해지고, 다시 드링크류를 찾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이 제거되는데 카페인이 숙면을 방해해 노폐물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면 피로물질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