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부터 팝·가요까지, 카운터테너의 변주 보여주고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77호 19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첫 독창회 여는 ‘라포엠’ 최성훈

카운터테너 최성훈이 3월 19일과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독창회를 연다. 19일은 클래식, 20일은 크로스오버로 꾸민다. 전민규 기자

카운터테너 최성훈이 3월 19일과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독창회를 연다. 19일은 클래식, 20일은 크로스오버로 꾸민다. 전민규 기자

바로크 오페라에서 신이나 정령 같은 초월적인 역할을 맡아 소프라노 음역대로 노래하는 특수 성부의 남자 가수. 통상 오페라 무대 밖에서는 만날 일 없기에 클래식 아티스트 중에서도 가장 멀리 있는 존재였던 ‘카운터테너’가 몇 년 새 우리와 부쩍 가까워졌다. 온전히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의 멤버 최성훈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포엠은 JTBC ‘팬텀싱어’가 배출한 여러 4중창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록 샤우팅으로 극한의 고음을 내는 남성 싱어는 꽤 있지만, 정통 클래식 코스를 밟은 카운터테너가 고유의 발성을 그대로 지키면서 대중적 사랑까지 받은 경우는 전에 없었다. 최성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파리국립음악원,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제네바 국립고등음악원을 거쳤고, 스위스 마리아 아마디니 국제 성악 콩쿠르, 프랑스 레오폴드 벨랑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파다.

카운터테너에게 배운 적은 없어

2020년 팬텀싱어 시즌3 우승 이후 팀 활동에 매진하던 그가 첫 독창회를 연다. 3월 19~20일 이틀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 ‘무브먼트’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는데, 양일간 프로그램이 전혀 다르다. 첫날은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에네아스’의 아리아 ‘내가 대지에 묻힐 때’ 등 클래식 레퍼토리만으로 채우고, 다음 날은 팝, 가요, OST 등 크로스오버의 향연을 펼친다. 각각 박기훈과 존노, 유채훈과 정민성을 게스트로 초청해 함께 노래하는 순서도 있다. 클래식 애호가와 크로스오버 팬덤, 양쪽 다 사로잡기 위한 전략인 걸까. “많은 분들께 보여드려야겠다기 보다 제가 하고 싶은 걸 다양하게 해보려고요. 공연 제목도 ‘무브먼트’인데, 클래식 음악은 악장마다 분위기와 느낌이 다르잖아요. 최성훈의 아이덴티티가 담겨 있었던 클래식 음악과, 또 다른 최성훈의 모습인 크로스오버 음악을 둘 다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은데, 하루에 표현하기가 쉽지 않겠더라고요. 좀 더 시간을 많이 잡고 저의 첫 장면을 온전히 드러내보고 싶어요. 같은 사람이 노래하지만 두 공연 느낌은 전혀 다를 겁니다.”

그의 말처럼 클래식과 크로스오버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각 장르에서 카운터테너에게 요구되는 것도 다를 터. 클래식에서 중창을 할 일이 많지 않은 카운터테너에게 크로스오버 4중창 무대는 매번 도전이 아니었을까. “클래식 테크닉을 크로스오버 음악에도 활용하니까요. 라포엠의 어떤 곡에는 카운터테너의 변주를 가미해서 좀 더 화려하게 해본다거나, 카운터테너 중심으로 테너, 바리톤이 다른 음역을 맡아보기도 하구요. 초기에 아이디어 낼 때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다보니 회의시간이 엄청 길어지고 연습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았어요. 이젠 회의시간도 짧아졌죠.(웃음)”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소년소녀합창단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노래하다 변성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카운터테너가 됐다. 하지만 카운터테너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을 정도로 주변에 동료가 없었다. 경북예고에 다닐 때도 학교 역사상 최초의 카운터테너 전공자였고, 카운터테너에게 노래를 배운 적도 없단다.

“예고 때는 소프라노, 대학 때는 테너에게 배웠죠. 스위스에서는 알토이자 지휘자 선생님한테 배워서 정말 많은 레퍼토리를 배울 수 있었어요. 유학을 가니 한국보다는 카운터테너가 많아서 다양한 레퍼토리와 발성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파트를 떠나 성악의 모든 메커니즘이 기본적으로 비슷하거든요. 어릴 때 소리내는 법을 배우고, 자라면서 다양한 음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그렇다보니 카운터테너 선생님이 없다고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어요.”

2018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경연 모습. [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공식 SNS]

2018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경연 모습. [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공식 SNS]

소프라노처럼 부르지만 어딘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음색이 카운터테너 특유의 미학 아닐까 싶은데, “카운터테너에게만 특별한 기교가 필요한 건 아니고, 말하듯이 노래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란다. 쿨하게 말하지만, 그의 음악인생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대학시절 폐절제술을 받을 정도로 심하게 앓은 적도 있다. “그땐 숨이 차서 말하기도 힘들었어요. 노래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죠. 다행히 회복을 했는데, 몸의 컨디션이 달라졌으니 테크닉적으로도 적응에 애를 먹긴 했어요. 지금도 환경적인 변화에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곤 하죠.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노래고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한데,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노래를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정말 완벽하게 해야 되는 게 노래가 아니라, 잘 표현하는 게 노래라 생각하거든요.”

회복 후에는 유학을 가 유럽에서 자신을 알리려 고군분투했다는데, 프랑스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에 다닐 때 매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섰던 것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팀에서 저 혼자만 동양인이고 다 프랑스, 브라질 사람들이었는데, 그 친구들과 매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연주를 하는 게 참 좋았어요. 베르사유는 여행객들이 관광지로 한번씩 가는 곳인데, 우린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매주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궁전에 사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화려한 시절이었죠.(웃음)”

그는 쿨한 척 하면서 은근히 외로움을 타는 남자였다. 2년전 라포엠 멤버들과 함께 만났을 땐 “원래 혼자 있는 게 익숙한 편”이라고 했었는데, 이제 보니 고독을 즐기는 게 아니라 유학 시절 고독이 몸에 뱄을 뿐이다. 늘 혼자 무대를 찾아다니며 외로움을 벗삼아 살았다면서도 베르사유 팀 활동을 가장 즐거웠던 한때로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맞아요. 음악은 유럽이든 한국이든 어디서든 할 수 있고 어려움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내 자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외국에선 혼자라는 외로움이 컸죠. 혼자 있는 걸 좋아할 필요도 없이 그냥 혼자가 생활이었으니까요. 음악적인 고민이나 경제적 상황까지 혼자 헤쳐나가야 했는데, 라포엠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옆에서 나보다 나를 잘 봐주는 3명이 있고,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멤버들의 아이디어가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됐죠.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운데, 그래도 아직 잠은 집에서 혼자 잡니다.(웃음)”

최성훈은 혼자 왔지만, 보이지 않는 라포엠 군단이 함께 있는 듯 했다. 첫 리사이틀에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들을 쳄발로 등 고악기들로만 구성된 바로크 챔버 앙상블과 협연으로 선보인다기에 클래식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 건 아니냐 물으니, 전혀 아니란다. 2년여 팀으로 뭉쳐 있다가 최근 개인 소속사를 정하고 첫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해방감도 느낄 법한데, 지금 이 순간 혼자 있는 게 외롭단다. 뮤지컬 배우들이 많은 EMK엔터테인먼트를 택한 것도 뮤지컬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며, 리사이틀조차 ‘라포엠의 최성훈’으로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크로스오버를 하면서도 늘 클래식에 기반이 되는 곡들을 하고 있어서 향수는 없어요. 라포엠 최성훈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죠. 혼자서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하고 싶은 욕심 보다는 라포엠 안에서 만들고 싶어요. 라포엠 무대를 뮤지컬, 오페라를 접목한 장르로 만들면 되니까요. 늘 최성훈 안에 라포엠이 있는 게 아니라 라포엠 안에 최성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라포엠의 콘서트도 최성훈의 콘서트도 다 라포엠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죠.”

고악기 구성 ‘바로크 챔버 앙상블’과 협연

QR코드를 찍으면 최성훈의 노래가 담긴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으면 최성훈의 노래가 담긴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고독이 몸에 뱄던 유학생이 별안간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지만, 단연코 “그림자는 없다.” “라포엠 활동에는 오직 빛만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마치 다짐처럼 들린다. “물론 TV에 나오고 남의 관심을 받는 입장이 되면서 내 모습이 낯설어 보이고,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걱정도 처음 해봤죠.(웃음) 하지만 팬들의 관심과 응원이 너무 힘이 되고, 제가 하는 도전들도 그 덕에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마냥 좋기만 합니다.”

한국에 정착하면서 좋은 점은 또 있다. 어머니가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선택을 언제나 무조건 지지해준 든든한 지원군이지만, 유학 간 아들의 무대를 영 볼 기회가 없었던 어머니는 그에게 애틋한 존재다. “어머니가 연세가 드셔서 그런지 요즘 부쩍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고, ‘내가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싶어요. 제게 항상 ‘네가 행복한 일을 하라’고 하시거든요.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도 한 번도 반대한 적 없었고, 제가 하는 일에 좋은 말만 해주셨죠. 카운터테너가 뭔지도 모르면서 제가 좋아하니까 흔쾌히 지지해 주셨는데, 그렇게 전적으로 믿어주셨기에 책임감도 생겨난 것 같아요.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 하시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