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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츠랩]안정적인데 호황도...유가 암초만 피하면? 팬오션

중앙일보

입력

증시 전문가들은 흔히 금리 상승기엔 성장주보다는 경기 민감주를 담으라고 합니다.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한 성장기업은 금리가 오르면 금융비용 부담에 성장성이 무뎌질 수 있죠. 하지만 경기에 민감한 기업은 금리 변수보다 경기 사이클이 호황이냐 불황이냐가 실적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건설·조선·은행·해운업 등이 있죠. 지금 호황을 타는 기업이 어디인지 찾는 게 중요하겠죠?

이번 레터에선 경기 민감주 중 하나인 팬오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팬오션은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통째로 싣는 벌크선, 그중에서도 철광석·곡물·석탄 등 고체 화물만 싣는 드라이벌크(284척 중 248척이 이 배)를 주로 운용하는 국내 2위(매출 기준) 해운사입니다.

 팬오션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그랜드 보난자'. 탈황 장치가 탑재된 친환경 선박이다. 연합뉴스

팬오션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그랜드 보난자'. 탈황 장치가 탑재된 친환경 선박이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연초부터 곤두박질치는 국면에서도 이 회사 주가는 지난달 27일 최저점을 찍은 뒤 계속 올라, 22일까지 35% 상승했습니다. 이제 앞으로가 궁금하실 텐데요. 이 회사 분석은 구독자 c98****@naver.com님께서 의뢰하셨습니다.

금리 상승기엔 호황 맞은 업종의 우량 기업을 찾자!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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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벌크 강자'인 만큼 이 회사가 맞닥뜨린 업황은 벌크 화물 물동량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지표는 2020년 초반 코로나19 확산으로 크게 하락. 그러다 작년 들어 각국이 경기 부양책을 펴면서 상승 추세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작년 말 중국이 철강 생산을 줄인 데다 브라질 호우, 호주 사이클론 등 자연재해가 겹쳐 잠시 급락했습니다. 주가도 덩달아 추락.

곡물을 통째로 싣고 있는 드라이벌크선. 셔터스톡

곡물을 통째로 싣고 있는 드라이벌크선. 셔터스톡

올해 분위기는 다릅니다. 중국 춘절(음력 1월 1일) 이후 벌크선 활동성이 늘면서 BDI지수도 반등했습니다. 시장에선 다음 달부터는 중국이 다시 철강 생산을 늘리고 경기 부양책에서 나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만큼 BDI지수는 양호한 흐름을 보이리라 전망합니다. 최근 주가 반등도 이런 관측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발틱운임지수(BDI).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발틱운임지수(BDI).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금리 상승기엔 경기 민감주'란 공식을 알면서도 이를 꺼리는 분이 꽤 많습니다. 경기 따라 기업 재무 상태도 널뛰기 때문이죠. 불황기엔 '조선·해운·건설사 부도' 소식이 종종 매스컴에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

해운사도 이런 속성에서 자유롭진 않죠. 호황 땐 돈을 왕창 빌려 배를 구해 장사를 해도 남는 게 많지만, 경기가 꺾이면 호황 때 투자한 선박이나 빌린 돈이 모두 골칫거리로 돌아옵니다. 팬오션 역시 2013년 기업회생절차를 겪었죠.

하지만 2016년 닭고기로 유명한 하림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한 뒤부터 재무구조가 매우 튼실해졌습니다. 이는 현금흐름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자주 봐서 익숙하죠? 하림 제공

마트에서 자주 봐서 익숙하죠? 하림 제공

현금흐름표는 기업의 '쌩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재무제표입니다. 손익계산서는 나쁜 마음을 먹으면 분칠이 가능합니다.

이런 식이죠. 이익을 부풀리겠다고 마음먹은 기업은 친한 거래처에 허위로 물건을 넘겨 매출(가공매출)로 잡은 뒤 투자자들에게 공시합니다. 그리고선 회계 결산이 끝난 뒤 거래처가 대금을 주지 않는다며 슬그머니 손실 처리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금흐름표에는 이렇게 현금이 들어오지 않은 거래는 영업활동으로 번 돈으로 기록할 수 없습니다. 엄마가 아빠에게 "통장 좀 봐"하는 게 제일 무섭듯, 현금흐름표는 현금이 들락거리는 상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현금흐름표, 이렇게 생겼습니다. 자료는 팬오션 사업보고서

현금흐름표, 이렇게 생겼습니다. 자료는 팬오션 사업보고서

경기 민감 업종에 투자할 땐 현금흐름을 살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영업이익은 꾸준히 흑자인데 현금은 들어오지 않는다면, 뭔가 투자 위험이 커질 신호로 볼 수 있죠.

2015년 3월 최종 부도 처리된 우양에이치씨는 부도 직전까지 영업이익은 계속 흑자였습니다. 그러나 영업활동으로 들어오는 현금은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였습니다. 손익계산서만 보고 투자하면 안 된다는 것! 이해되시죠?

손익계산서 상 영업이익이 흑자라도 현금이 안들어오면 파산할 수 있다. 셔터스톡

손익계산서 상 영업이익이 흑자라도 현금이 안들어오면 파산할 수 있다. 셔터스톡

그럼 현금흐름표는 어떻게 보느냐? 이것도 무슨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재무제표가 아닙니다. 기업이 일상적인 활동을 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현금을 쭉~ 기록한 표죠.

그럼 기업 활동이란 건 뭘까요? 일단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죠(영업 활동). 팔 물건을 생산할 설비에 투자를 해야겠죠(투자 활동). 그런 설비 투자에 필요한 돈을 구해야겠죠(재무 활동). 현금흐름표는 이 3가지 항목으로 분류해 현금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현금흐름표에 나타나는 패턴을 읽을 줄 알면, 기업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신생 기업과 쇠퇴 기업, 성장 기업과 안정적인 기업 등 상황에 따라 현금 흐름은 다른 모습이겠죠. 외우려 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이해해 보시면 됩니다. 아래 표를 좀 보겠습니다.

현금흐름표 패턴으로 가늠해 본 기업 상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현금흐름표 패턴으로 가늠해 본 기업 상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 현금흐름표의 패턴을 이해했으니, 팬오션의 현금흐름표는 어떻게 생겼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팬오션 현금흐름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팬오션 현금흐름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팬오션은 수년 전부터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매우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영업해서 번 돈으로 투자로 꾸준히 현금을 쓰고(-) 있고, 대출 갚는데도 또박또박 현금을 쓰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기업의 전형적인 현금흐름표 모습입니다. 삼성전자 현금흐름표도 이렇게 생겼지요.

이런 현금흐름을 갖추게 된 건 팬오션의 선박 운용 전략 자체가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화물주가 15~25년간 전용선처럼 이용할 수 있는 장기계약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가량(2021년 9월 말 31.4%)을 차지합니다.

건물주로 따지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내줄 세입자를 확보해 놓고, 성수기에는 탄력적으로 단기 임대를 놓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거죠.

안정적인 기업은 현금이 많아야. 셔터스톡

안정적인 기업은 현금이 많아야. 셔터스톡

그래서 부채비율도 50~80% 선을 유지합니다. 일반 가계보다도 부채비율이 낮죠. (내 돈 2억에 대출 2억 받아 4억짜리 아파트만 사도 부채비율은 100%인데….) 팬오션이 얼마나 안정적이었는지는 지옥에서 천당을 오간 HMM의 현금흐름표와 비교해 보면 딱 드러납니다.

HMM 현금흐름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HMM 현금흐름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HMM 현금흐름표를 보면 최근 7년 동안에 기업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모습입니다. 2015년과 2016년은 영업으론 돈을 벌지 못하고(-), 투자는커녕 투자했던 자산을 팔고 있고(+),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대출을 갚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쇠퇴 기업의 패턴입니다. 그리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영업으로 버는 돈은 없지만(-), 투자를 해 나가면서(+) 투자 재원도 마련하고(+) 있죠. 신생 기업 패턴이죠.

그러다 가장 최근 2021년 9월 말 상황을 보면 영업으로 돈을 벌어(+) 투자에도 쓰고(-) 대출을 갚는 데도 쓰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기업으로 돌아선 거죠.

거의 망할 뻔했다가 다시 신생아로 부활하여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투자해 대박을 터트린 스토리가 여기에 다 담겨 있습니다. 개미라면 현금흐름표 패턴을 보고 기업의 옥석을 가릴 줄만 알아도 큰 성과!

자, 그래서 팬오션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자랑하는 건 알겠는데 주가는 어떻게 될 거냐. 이달 14일 작년 4분기 실적 발표 직후 상당수 증권사(NH·유진·신영·신한)는 목표 주가를 올렸습니다.

중국이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원자재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중장기적으로 호주가 철광석 수출을 늘릴 전망이어서 팬오션에도 호재가 될 것으로 봅니다. 향후 BDI지수 전망도 긍정적!

철광석 값이 오른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는다는 것. 그럼 철광석을 배로 실어 나르는 수요도 늘겠죠? 그래픽=전유진

철광석 값이 오른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는다는 것. 그럼 철광석을 배로 실어 나르는 수요도 늘겠죠? 그래픽=전유진

다만, 최근 유가 상승에 따른 영향은 관찰 포인트입니다. 배는 기름을 넣어야 운행을 할 수 있으니, 아무리 유류할증료로 커버를 하려 해도 비용 측면에선 부담이겠죠.

결론적으로 6개월 뒤:

주가 꽤 내렸는데, 다시 찾아온 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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