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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 뱃속 품고 무대 섰다…유방암도 못막은 그녀의 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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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상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상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 얘기보다는요, 함께 공연하는 다른 분들 이야기 많이 써주세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이는 많지 않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상희(46)씨는 그 드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음 달 6일 국립암센터에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콘서트를 여는 그는 24일 통화에서 “국립암센터의 의료진과 환자분들 그리고 함께 흔쾌히 재능기부로 공연을 하는 연주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는 데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공연 이름은 제1회 국립암센터와 함께 하는 이상희 앤 프렌즈 콘서트.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이 공연을 올리는 데 드는 제반 비용은 이상희 씨가 직접 부담하거나 공연자들의 재능기부로 갈음한다. 공연 포스터엔 핑크 리본이 나와 있는데, 유방암 환우를 상징한다. 이상희 씨 본인이 유방암 투병 중이다.

그는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다시는 음악을 못 할 줄 알았다“며 “좋은 병원에서 훌륭한 의료진을 만나 치료뿐 아니라 정신적 위로를 받으면서 외려 건강 관리를 더 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꾸린 것이 이번 공연이다. 그는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님과 의료진들 덕에 암 완치율이 70%까지 올라갔다”며 “저도 조심스럽지만 내년 가을이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기부는 이상희 씨에겐 사실, 생활이다. 인형 수출업을 한 아버지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명절이나 크리스마스면 그를 보육원 등에 데려가 함께 봉사를 했다. 그는 “크리스마스면 보육원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자세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기부의 생활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것. 명문 선화예중ㆍ고를 졸업한 뒤엔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면서는 음악 활동으로 기부하는 생활이 몸에 익었다. 파리에선 현지 한글학교 설립이며,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 단체 등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이상희 씨와 함께 하는 연주 동료들.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하다. [이상희 씨 제공]

이상희 씨와 함께 하는 연주 동료들.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하다. [이상희 씨 제공]

귀국 후에도 그의 기부 DNA는 더 빛났다. 출강하고 제자를 기르면서도 기부는 쉬지 않았다. 차를 바꾸고 쇼핑을 하는 대신 아끼고 아껴서 무대 제작비에 보탰다. 2004년부터는 국제백신연구소(IVI)와 연이 닿아 매년 재능 기부 공연 무대를 펼쳤다. 2021년도까지 달성한 누적 기부액만 2억원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IVI는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도상국에 보급하는 비영리 국제기구다. 지금 같은 팬데믹 시대엔 백신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당시만 해도 IVI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이상희 씨의 활약이 큰 몫을 했다. 개도국 6만 명의 어린이에게 백신을 선물한 셈.

남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무대에 오르면서 정작 자신이 낳은 생명을 잃는 슬픔도 겪었다. 2012년 연주회를 얼마 앞두고 유산의 아픔을 겪은 것. 공연 전날이었다. 뱃속에서 숨이 멎은 아이를 두고 그는 고민하다 무대에 그대로 올랐다. 자신이 입원하면 공연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을 하늘도 어여삐 여겼는지, 그에겐 이후 건강하고 예쁜 딸이 찾아왔다.

90대인 송진호 씨도 이상희 앤 프렌즈의 단원이다. [이상희 씨 제공]

90대인 송진호 씨도 이상희 앤 프렌즈의 단원이다. [이상희 씨 제공]

유방암이라는 새로운 시련은 그를 또 단련시켰다. 그의 뜻을 따라 함께 모인 연주자들의 숫자도 늘었다. 90세인 송진호 성우무역 회장부터 10대 제자까지, 든든한 동료들 숫자는 100명에 육박한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기부의 무대를 꾸미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공연 문의는 02-6412-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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