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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갑질, 법으로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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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경제에디터

염태정 경제에디터

갈수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택시 앱에 빠져든다. 배달보단 직접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하는 나름 오프라인형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더 그렇다. 네 식구가 앱으로 물건을 사고 간식을 주문하니 택배가 오지 않는 날이 드물다. 택시도 앱으로 부르면 아파트 앞까지 바로 오니 더 자주 타게 된다. 2000년대 초반 IT 담당 기자를 할 때,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휴대전화로 명함 크기 사진을 보내는 기술 시범을 보면서 저걸 어디에 쓰나 했는데, 스마트폰과 맞물리면서 이젠 앱 없는 생활은 생각하기 힘들다.

터치 몇 번으로 물건을 사고, 택시를 부르고, 호텔을 예약하는 그 편리함 뒤에는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다. 이해 당사자 간 갈등과 불만도 상당하다.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소비자간 갈등 구조는 다층적이다. 앱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갈등과 불만도 고조되는데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카카오, 골라태우기·몰아주기 의혹
중소상인, 배달비·수수료에 어려움
공정위, 숙박앱에 광고 시정 조치
플랫폼거래 공정성 전면 검토필요

배달 플랫폼 사업자와 중소 자영업자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음식점 운영자들은 앱으로 매출은 늘었지만, 배달료와 광고료·수수료 때문에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배달 플랫폼 기업들이 요금체계 개편에 나서면서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배달 앱 이용사업자 1000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매출액 절반 이상이 온라인플랫폼을 통해 나온다고 했다. 온라인플랫폼 이용 중 ‘부당행위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다(53.4%). 배달비가 부담스럽다는 응답도 70%에 달한다. 매출 규모에 따라 우대 수수료를 둔다고 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달 플랫폼 업체는 카테고리별로 음식점 광고를 판다. 정액제·정률제 등 다양하다. 광고 위치를 적절히 바꾼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돈을 많이 내야 좋은 자리에 배치된다. 음식점 주인이 내는 광고비는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11월 국회 앞에서 중소상공인이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촉구 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국회 앞에서 중소상공인이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촉구 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배달이 대세라 이용을 중단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록인(lock-in) 상태다. 이미 그런 사례를 카카오택시에서 보고 있다. 카카오택시의 시장 진입, 확대 방식은 플랫폼 기업의 전형이다. 사업 초기 비용을 투자해 손님을 끌어모으고 규모가 커지면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높인다. 카카오택시는 2015년 사업을 시작할 때 이용자에게 스타벅스 쿠폰을 주기도 했다.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당시 이지(이지택시코리아), 리모(리모택시코리아), 백기사(쓰리라인테크놀러지) 같은 경쟁 앱이 있었으나 지금은 보기 힘들다.  카카오택시는 무료였던 콜비를 유료화하려다 거센 비난에 물러서기도 했다.  콜비는 없지만, 블루 같은 서비스를 통해 사실상 요금을 더 받는다. 서울시는 카카오택시가 손님을 골라태우고, 가맹 택시에 콜을 몰아준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관련 조사를 진행중이다.

숙박 앱을 둘러싼 갈등도 만만치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얼마 전 야놀자와 여기어때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광고를 낸 숙박업소들이 앱 화면 어디에 노출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했다. 그동안 그렇게 안 해왔다는 거다.

플랫폼에서의 공정한 거래를 위한 법안이 다수 국회에 올라와 있지만 대선 국면 속에 제자리걸음이다.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온플법)을 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의원입법 형태로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규제 권한을 놓고 부처 간 다투다 정부 안이 최근 새로 만들어졌다. 공정위가 처음 낸 법안에 비해 거래액·매출기준이 대폭 상향되면서 30개로 예상됐던 적용대상 기업이 18개 정도로 줄었다. 네이버·카카오·쿠팡·구글·애플·배달의민족·야놀자 등이다.

플랫폼 사업자는 온플법을 거세게 반대한다. 다른 법으로 이미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 IT산업 발전에 족쇄를 채우고 생태계를 죽일 뿐이란 주장이다. 중소상인과 참여연대는 온플법이 꼭 필요하다,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곳곳에서 갈등이 불거지는 플랫폼 거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살펴봐야 할 때다. 플랫폼사업자와 가맹·입점 업체와의 관계뿐 아니라, 카카오택시에서 알 수 있듯 소비자 보호까지 포함해 다룰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해 논란 속에서도 수십조원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는데 장사를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플랫폼 규제에 대해 대선 주자들의 입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갑질은 안된다는 큰 틀은 같다. 차기 정부에서 이 문제를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