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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500만 팩 히트 약콩두유, 푸드테크로 발전시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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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수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18) 이기원 밥스누 창업자 인터뷰

이기원 밥스누 창업자(현 서울대 교수)가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 스마트팜에서 실험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기원 밥스누 창업자(현 서울대 교수)가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 스마트팜에서 실험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사실 ‘약콩두유’는 애초에 개발하고 싶은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2일 경기도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 B동 6층 연구실에서 만난 이기원(48) 서울대 교수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 교수는 2015년 국내산 약콩(쥐눈이콩)을 껍질째 갈아 첨가물 없이 맛을 낸 약콩두유를 개발, 출시 첫해에만 500만 팩 이상 판매고를 올리면서 ‘연구실 창업스타’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꾸준한 콩 관련 연구를 해온 ‘콩박사’이기도 하다. 제자 여럿의 창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약콩과 도라지·당귀 등 활용해
개인 맞춤형 바이오 식의약품 개발
“규제 걸림돌은 신산업이 겪는 진통
대학이 정부·산업 연결고리 돼야”

그런데 그는 왜 약콩두유가 사업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걸까. 이 교수와 약콩두유의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즈음 건국대에서 모교인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그는 첫 과제로 ‘평창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서울대가 강원도 평창에 평창캠퍼스를 짓던 때다. 당시 평창은 인프라나 인재 등이 부족해 기업을 유치하기엔 조건이 열악했다. 결국 이 교수는 ‘우리가 직접 하자’는 생각으로 평창에 입주했다.

‘할머니표 콩국수’ 먹다가 아이템 구상

푸드테크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푸드테크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사업 아이템 결정에는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었다. 당시 이 교수의 할머니는 수십 년째 서울 강남에서 콩 전문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평창 프로젝트로 관계자들과 논의할 때 가끔 이곳에서 콩국수와 비지를 먹고는 했다”고 소개했다.

“할머니는 ‘콩은 강원도산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평창 지역의 농산물을 고부가 가치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또 (우유 사업을 하는) 건국대 교수로 있으면서 우유·유업과 친숙해지면서 식물성 두유를 만드는 사업계획을 만들었습니다.”

약콩두유라는 아이템이 정해지니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검정콩 중에서도 가장 약성(藥性)이 우수한 검정약콩을 선택했다. 콩 껍질이나 비지를 버리지 않고 볶은 콩을 통째로 갈아 넣는 기술을 개발하고, 첨가물이나 유화제 없이 안전한 두유를 만들자는 게 시작이었다. 이런 아이디어가 서울대기술지주의 자회사 ‘밥스누(BOBSNU)’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SNU홀딩스에 밥스누 지분 무상증여

밥스누는 어떤회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밥스누는 어떤회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후 약콩두유는 7년 누적 1억 팩이 넘게 팔리는 히트상품이 됐지만, 이 교수는 “두유 회사가 아니라 약콩을 이용해 맞춤형 식의약품, 바이오 식의약품을 만들자는 게 처음부터 지향점이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교수가 이끄는 밥스누는 약콩 추출물로 10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했다. 콩에 있는 ‘오로볼’ 성분이 대사성 질환 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해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기술 특허 등이다.

상품도 다변화했다. 콩 추출물로 ‘약콩모’라는 탈모 예방 샴푸를 만들고, 약콩 분말을 이용한 초콜릿도 상품화했다. 전지분유를 첨가하지 않아도 밀크초콜릿 맛이 나고,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단맛이 나는 약콩 초콜릿은 현재 국내 유명 호텔에 공급하고 있다.

다음 달 8일이면 밥스누는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자회사를 더해 직원은 50여 명이 근무 중이고, 지난해 매출은 150억원이었다. 이렇게 회사는 성장했지만, 현재 이 교수는 밥스누를 떠난 상태다. 그는 지난해 서울대가 창업지주회사인 SNU홀딩스를 설립할 때, 자신이 갖고 있던 밥스누 지분을 SNU홀딩스에 무상 증여했다. “이제는 기술과 사업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경영인이 사업화·수익화에 나서는 방식이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돌아온 연구실에서 ‘푸드테크’에 매진

밥스누 연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밥스누 연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 교수가 근무하는 광교 연구실엔 ‘차세대융합기술원 창발센터XO’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그 이름에 그가 바라는 미래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끝까지 도전해,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창발(創發)’이라고 합니다. 늘 마음에 새기고 있던 문구입니다. 연구실 이름에 붙은 ‘XO’ 역시 비슷해요. 세상에 없던 것을 뜻하는 ‘X’를 ‘O’로 바꾼다는 의미지요.”

여기서 X는 무엇이고, O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대표 먹거리로 불리던 IT(정보기술)와 BT(바이오기술), CT(문화기술)를 식품과 융합해 ‘FT(푸드테크놀로지)’라는 창발산업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대답했다.

그가 미래 먹거리로 제시한 ‘푸드테크’는 식품과 기술을 더한 합성어로, 식품 및 연관 산업에 생명공학이나 나노·바이오·정보통신 등 혁신 기술을 더해 기존보다 진화한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을 말한다. 다소 생소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려는 듯, 이 교수는 “보여줄 것이 있다”며 취재진을 같은 건물 지하 1층 연구실로 안내했다. 어둑한 복도를 따라 들어가 두꺼운 출입문을 여니 지하 한 칸에 ‘식물공장’이 나타났다. 규모가 17㎡쯤(약 5평) 되는 바이오팜이다.

이곳에서는 약콩과 도라지·당귀, 무순 등 여러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실험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약콩은 서로 다른 빛의 파장을 이용해 특정 단백질을 더 늘리고 무순은 지방세포 분화를 억제하는 물질을 다량 함유하는 식으로 재배된다. 기관지 질환에 효능이 있는 플라티코딘D와 디컬신 성분 함량이 높게 재배한 도라지와 당귀는 막 싹이 튼 상태였다. 이 교수는 “실험실에서 특화 재배한 식물로 식품과 의약품을 개발하는 파이토슈티컬(식물에서 유래한 기능 성분)이 현재 진행 중인 푸드테크 연구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대체식품을 만들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연구실 한쪽에는 식품을 섭취할 때 뇌파 변동을 측정할 수 있는 실험실이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실험자에게 영화의 잔인한 장면을 보여줘 스트레스가 감지되면, 달콤한 음식이나 술을 통해 스트레스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여기서 설탕이나 알코올을 대체하는 ‘새로운 음식물’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궁극적으로는 개인별 맞춤형 식이 설계가 가능한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다. 한 사람의 나이·성별·질환 등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칼로리와 어떤 영양 성분, 어떤 기능성 물질을 섭취해야 하는지 맞춤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플랫폼이다.

이미 민·관과 협력해 연구에 나섰다. 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해부터 농림축산식품부 및 식품진흥원과 67억원 규모의 공공데이터 활용 맞춤형 식이 설계 플랫폼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는 주요 식품에 대한 영양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고 질환 맞춤형 기능성 소재 DB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는 여기서 축적한 DB를 맞춤형 식품으로 이용 가능하도록 분류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내년에는 이 DB를 메뉴나 제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민간업체 ‘쥬비스 다이어트’와도 협력해 고객별로 맞춤형 식단과 단백질 섭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걸음마 뗀 국내 푸드테크 산업

푸드테크는 아직 국내에서 생소한 개념이다. 식품에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기술을 접목한 경험이 많지 않다. 식품 규제도 걸림돌이다.

이용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부상하고 있는 대체육이나 식물성 고기 같은 대체식품에 대해서도 식품 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게 2019년”이라며 “푸드테크는 국내에선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진단했다. 이어 “무엇보다 적절한 기준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강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24일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 창발센터를 방문해 규제 개선에 대해 언급했다. 김 처장은 이날 푸드테크 기업과 간담회에서 “새로운 변화를 식품안전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푸드테크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합리적 규제를 마련하는 등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올해 안에 대체 단백질 식품의 정의와 명칭·유형 신설을 검토하고, 첨단 기술로 개발된 새로운 식품첨가물의 인정 기준을 만드는 등 신기술 적용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예를 들어 푸드테크 기술로 항노화 식의약품을 만들고도 정부 당국의 인증 절차가 쉽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산업이 겪어야 할 필수적인 진통 가운데 하나죠. 당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기술 진보와 산업화에 대해 설득해 나가겠습니다.” 푸드테크 분야에서 학계의 기술과 산업계의 투자, 정부의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대학이 맡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교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