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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국가 아냐"…푸틴, 뭐가 맞고 틀렸나[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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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독자 김수현님의 질의를 받아 담당 기자가 심층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1시간에 걸친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역사관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1시간에 걸친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역사관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의 일부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그의 역사관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세다. 서방 외교가와 외신은 푸틴의 인식과 발언에 대해 “잘못된 역사관”이라고 했다. 또 “왜곡된 역사관은 (우크라이나) 추가 침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2일 영국 시사주간지 타임, 미국 CNN 등 주요 외신은 푸틴의 발언을 조목조목 꼬집기도했다. 푸틴 대통령의 말 중 무엇이 틀렸는지 통해 국내·해외 전문가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모였다.[A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모였다.[AP=연합뉴스]

“먼 옛날부터 남서쪽 거주민들은 자신을 러시아인과 정교회 기독교인이라고 불렀다. 이들(우크라이나인)은 우리의 동지이며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들도 있다”

A: 일부만 맞다. 9세기경 지금 우크라이나 지역에 출현한 첫 국가인 키예프루스(루스)는 러시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 3국을 아우르는 땅이었다. 또 루스의 중심, 키예프가 있는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의 종가(宗家)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혈연”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은 ‘루스인’에는 동의하지만, ‘러시아인’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키예프루스는 다민족 국가”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각기 다른 부족에서 파생된 다른 민족”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루스’와 ‘러시아’를 섞어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영향권 아래 두려는 전략이라고 외신 등은 분석했다.

“현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의해, 더 정확하게는 볼셰비키에 의해 1917년 혁명 직후 시작된 나라다”

A: 틀린 주장이다. 대부분의 외신이 부정했다. 포린폴리시(FP)는 “푸틴 대통령은 소련의 구성 국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창설된 1919년을 언급한 것 같다”며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민족주의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고 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데, 그의 지지자들을 위한 헛소리”라고 했다. 또 고대 역사가 오레스트 서브텔니는 CNN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태동하는 시기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위해 오랫동안 싸웠다. 다른 어떤 동유럽 국가보다 더 큰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1954년 흐루쇼프는 러시아에서 크림반도를 빼앗아 우크라이나에 줬다. 사실상 이것이 현대 우크라이나 영토가 형성 방식이다”

A: 흐루쇼프가 1954년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소비에트연방 공화국 내 행정구역 변경이었다. 이것이 “현대 우크라이나 영토 형성 방식”이라고 한 푸틴 대통령의 말은 “수용하기 어려운 궤변”이라는 게 역사가들의 중론이다.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는 “유럽 역사를 보면 50년, 100년 새 지도가 수없이 바뀌는데 ‘예전에 내 땅이라고 해서 지금도 내 땅’이라는 식은 기존 국제질서와 국제법을 무너뜨리는 발언”이라고 했다.

“1991년 말까지 소련은 약 1000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러시아는 소련의 모든 부채를 승계했다. 우크라이나 등 신생국은 빚과 함께 해외 자산을 러시아에 넘겨야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부채만 떠넘겼을 뿐, 자산 양도는 없었다”

A. 사실이 아니다.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15개 공화국이 탄생했다. 이들은 모두 소련의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러시아는 나눠서 갚자고 했다. 하지만, 가난한 신생 독립국은 빚을 갚을 여력이 없었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제로옵션 어그리먼트’다. 소련의 계승자인 러시아가 모든 빚과 함께 해외 자산 전부를 승계한다는 게 골자다. 우크라이나 역시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 또 국제사회는 빚을 승계한 러시아를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파리클럽을 통해 공적 대외부채를, 런던클럽을 통해 민간 분야 부채를 상당 부분 탕감해줬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적은 빚’과 ‘많은 자산’을 승계해 남는 장사를 했다.

“우크라이나엔 국가의 안정적인 전통이 없었다.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우크라이나는 외국 모델을 모방하기로 결정했다”

A. 우크라이나만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주관적 견해라고 다수 외신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는 국경·민족·종교에서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며 “수도 키예프는 모스크바보다 수백 년 전에 세워졌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모두 그 지역이 문화·종교·언어의 발상지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의 말대로 우크라이나가 제대로 된 국가상(像)이 정립하지 못했다면, 1991년 국민투표에서 90% 이상 독립에 찬성표를 던진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데이비드 파트리카라코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를 때려눕히는 러시아의 시도가 최소 한 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안정된 국가로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러시아”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는 16세기 폴란드의 지배를 받은 뒤부터 1991년 독립할 때까지 외세 치하에 있었다”며 “푸틴의 주장을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도움말: 백주현 전 카자흐스탄 대사,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 겸 러시아·CIS학과 주임교수(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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