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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에 디도스 공격…정부·은행 사이트 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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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크라이나 정부·의회·외교부 및 주요 은행 웹사이트가 23일(현지시간) 대규모 디도스 공격을 받아 마비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번 주 국방 부문을 포함한 정부 기관에 대한 대규모 해킹 공격이 준비 중이라는 온라인 경고를 목격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에도 우크라이나 국방부 웹사이트 등이 사이버 공격을 받아 우크라이나는 그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었다.

이날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DHS)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 직후 주 정부와 지방정부, 민간 기업 등을 겨냥한 러시아 측의 랜섬웨어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편 미국과 동맹들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진입을 ‘침공’으로 규정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대러 제재에는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뿐 아니라 일본·대만·호주·싱가포르 등도 동참했다. 한국은 빠졌다. 반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국익, 우리 시민들의 안보는 우리에게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며 제재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 연설에서 전날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두 곳(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군을 투입한 것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으로 규정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날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침공으로 부르는 것을 주저했지만, 하루 만에 선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는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며 국제사회로부터 단호한 대응을 요구한다”며 “그(푸틴)는 훨씬 더 들어가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혀 러시아가 돈바스를 넘어 서진(西進)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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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이날부터 러시아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과 군사특수은행(PSB), 42개 자회사에 대해 미국·유럽 은행과의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또 서구 금융권에서 러시아 국채 발행·거래도 전면 중단된다. 푸틴 대통령 측근인 러시아 고위층 인사와 올리가르히(과두 재벌) 5명에 대한 제재도 시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제재가 “1차 제재”라며 “러시아가 공세를 계속하면 추가 제재를 포함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반도체 칩 등 첨단 기술 제품의 대러 수출 금지를 동맹 및 파트너와 논의하고 있으며, 이들 제품의 주요 생산지인 아시아 국가들에 제재 동참을 요구했다.

일본·대만·싱가포르도 대러 제재 동참 … 한국은 빠졌다

일본은 러시아 정부나 정부 기관이 발행하거나 보증하는 신규 채권의 일본 내 발행·유통을 금지하고, 두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 관계자의 비자 발급 중단, 수출입 금지 방침을 밝혔다. 캐나다는 자국민의 우크라이나 내 친러 지역 두 곳과 금융 거래를 금지하고, 러시아 의회에서 두 지역 독립 승인에 찬성한 정치인을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주는 러시아를 상대로 고위층 제재, 여행 금지, 금융 제재 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심해저 가스관 사업인 ‘노르트스트림2’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영국은 푸틴 대통령 측근이 이용하는 로시야은행 등 5곳을 제재 대상에 올리고 영국 내 자산 동결과 영국인과의 거래를 금지했다.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에 개의치 않는다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 관영 통신은 “푸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재 방안을 발표하는 연설 중계를 보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돈바스 무력분쟁 해결을 위해 2015년 체결했던 민스크 평화협정은 오래전에 이미 사멸했다고 밝히고 이는 순전히 우크라이나 정부의 책임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상원으로부터 돈바스 지역에 대한 해외 파병 승인을 받은 뒤 “지금 당장 군대가 그곳으로 간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며 침공을 부인하는 주장을 했다. 그는 이날 조국수호의날 기념 연설에선 “우리 조국은 언제나 항상 직접적이고 진솔한 대화에, 가장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외교적 해법 모색에 열려 있다”고도 말했다.

우크라이나 접경지에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 등장했던 부대 표식이 없는 군복을 입은 군인들인 ‘리틀 그린맨’들의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돈바스에선 지난 17일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루한스크주 스차스티예 지역에선 22일 화력발전소가 포격으로 파손돼 인근 전기 공급이 끊겼고, 23일 도네츠크TV 센터 구역에선 폭발물이 터졌다고 러시아 매체들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DC)는 23일 돈바스 지역을 제외한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민간인의 총기 소지와 자위권을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TV연설에서 예비군 징집령을 발령하고,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단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미군은 동유럽 작전 지역에 F-35 전투기와 AH-64 아파치 공격 헬기를 추가로 배치하고 발트해 지역에는 보병 800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외교의 창은 거의 닫히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4일로 예정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의 회담을 취소했다. 이미 러시아가 침공한 마당에 침공을 막기 위한 회동은 무의미하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3일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군사적 지원이나 파병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대러 제재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나’라는 물음에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고강도의 수출 통제, 금융 제재 등의 계획을 계속 밝혀 왔다”며 “우방국에도 이런 협의를 쭉 해오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미국 등 관련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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