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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여혐의 출발…페미니즘은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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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대남과 안티 페미니즘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쯤 되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21세기 버전이 아닐까. 여기저기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즘이 싫어요”란 외침이 나온다. 페미니즘 책을 읽었다고, 페미니즘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고 사이버불링 당하던 수준이 아니다. ‘안티 페미니즘’이 대선의 핵심 전략이 되고, 정치권이 나서서 젠더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든다. “페미니즘은 반헌법적 이념”이라는 ‘선언’까지 나왔다.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 사회통합과 남녀화합을 해치는 주범으로 질타하는 식이다. 정치권이 페미니즘을 공공의 적쯤으로 추인해줬으니 앞으론 공공연하게 “페미니스트 알바생 사절”이라는 사상검증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어린 남학생들도 “엄마도 페미야?” “선생님도 페미죠?” 묻는단다. 페미니스트가 최고의 멸칭이 돼버린 시대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뭘 어쨌다는 얘긴가.

안티 페미니즘 이슈된 초유의 대선
이대남, 불공정 저항-성평등 찬성
페미니즘을 불공정 아이콘 인식
성차별 줄이기 반대하는 아이러니
남녀 공존하는 페미니즘 절실해져

‘한국형 여혐’의 출발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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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해체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대남(20대 남자)의 폭발적 호응을 끌어낸 국민의힘은 “여성은 더는 차별받는 약자가 아니고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큰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대남의 주장처럼 동 세대에서는 남녀차별이 사라졌다 해도, 사회 전체를 보면 성차별은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 OECD 가입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 유리천장지수 9년 연속 꼴찌라는 각종 수치가 있다. 이대녀(20대 여자)는 더이상 약자가 아닌데 할당제를 통해 이득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남성 역차별론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성할당제가 아니라 성별 균형을 위해 특정 성이 얼마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는 성 할당제다(남성도 이득을 볼 수 있다). ‘독박 병역’이라 부르는 군 복무도 역차별론의 근거인데, 여성의 군 복무는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남성 일반을 ‘(성폭력·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잠재적 가해자’론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남자도 피해자일 수 있고, 남성 인격이 걸린 문제기도 하다. 그러나 이 또한 성폭력 피해자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밤길 조심하라’는 일상적 당부처럼 여성에게 일반화된 공포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안티 페미니즘의 출발이 되는 여혐이 ‘중2병’ 때 시작돼 대학에 입학할 때쯤 완성형이 된다고 분석한다(『슬기로운 좌파생활』). 우선 특목고와 일반고가 나뉘는 중2를 기점으로 특목고 트랙에서 배제된 남학생들이 게임 커뮤니티에 모여 상실감을 여자 탓으로 돌리며 여혐이 싹튼다. 이때 남녀 사이엔 아직 경제적 갈등이 없기 때문에 여혐은 문화적 취향의 문제고, 그만큼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며 교정도 쉽지 않다. 한국형 여혐은 “여성을 열등하다고 무시하고 낮게 보는 가부장제의 (전통적)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오)와 달리 입시구조와 취업구조가 연결되면서 열등감과 결합된 전형적인 증오에 가깝다”. 여혐과 중2병을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로 보는 그는 여학생들의 남혐 또한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한다.

공정성의 열망과 페미니즘

반면 20대 남성 평론가인 김내훈은 단순 혐오 감정 아닌 공정성에 대한 집착·희구가 안티 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급진의 20대』). 실제 한 연구에 따르면 20대 남성은 다른 세대 남성보다 성 평등 의식이 높았다. 심지어 모든 성·연령에서 20대 여성 다음으로 높았다. 반면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는 다른 어떤 세대 남성보다 높았다(최종숙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가사분담 등에는 호의적이지만 페미니즘은 싫어하는 등 20대 남성이 이해하는 페미니즘의 한국적·세대적 맥락이 있다는 얘기다. 김내훈은 여러 연구를 인용해 기성세대가 만든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2030 개개인에게 맡기는 것 자체를 부당하게 생각하며, 이대남은 자신을 페미니즘 등 ‘정체성 정치’에 핍박받는 남성 소수자로 규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성차별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불공정의 아이콘인 페미니즘이 싫어서 성차별을 줄이는 정책에 반대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내훈은 20대 남녀 공히 최우선으로 집착하는 공정의 내용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현재는 노력하면 보상이 따라오고 잘 살 수 있다는 신화가 깨진 상태다. 남은 것은 덜 노력한 이에 대한 응징이다. 점수가 낮은 사람에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응분의 푸대접이 가해지는 것만큼은 확실해야 한다는 게 90년대생 사이의 암묵적 합의다.” 결과에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고용 할당제, 소수자 배려 등에 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혐오 전쟁과 정치 공학을 넘어

일부 급진적 페미니즘의 문제도 있다. 여혐에 남혐으로 맞서는 미러링 전략은 전투력은 높였지만, 역작용도 컸다. 여혐이라는 원본이 있으니 남혐이라는 미러링이 있는 거지만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혐오 전쟁의 악순환을 낳고 말았다. 숙명여대 입학을 희망하던 트랜스젠더를 숙대생들이 반대해 좌절시키는 등 생물학적 여성중심주의 페미니즘의 폐해도 드러났다. 경직된 ‘PC(정치적 올바름) 주의’에 대한 피로감도 나온다.

페미니스트 가수 겸 교사인 지현은 남중생 젠더 교육 경험담을 통해 “남성 청소년이 위치한 사각지대”에 주목했다. “(소년들은) 위계질서가 철저한 성인중심 사회에서 배제된다고 여기고 양육자와의 관계에서도 약자이고 결정권 없는 수동적 입장에서 차별당한다고 인식하는데,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기득권에 잠재적 가해자로 불리고 차별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니 억울하고 분노할 만했다.”(『소년문화탐방기』) ‘소년 여혐’의 심정적 뿌리다.

한마디로 나는 가부장제 수혜를 입은 적 없는데 기득권 취급하며 양보하라 하고, 나보다 강자인 동 세대 여성에게 특혜를 주는 건 불공정하다는 게 이대남 인식의 요체다. 그들의 불만, 피해 의식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특정 세대에서 유·불리가 갈릴 수 있다는 이유로 누적된 성차별을 바로잡는 일을 부정하거나, 남녀는 물론 소수자까지 차별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길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여성의 인권을 증진하는 일이 제로섬 게임처럼 남성 인권은 돌보지 않고 침해하는 것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의아하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을 가장 섬세하고 급진적으로 확장하는 개념(곽승훈 『페미니스트가 된 남자들』)”이다. “유해한 남성과 무해한 남성을 감별하는 매뉴얼이 아니(김현미 연대 교수)”며,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강요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 함께 해방되자고 소망한다. 모든 선진 사회가 페미니즘을 시민 의식의 기본이자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2주 후 대선이 끝나면 ‘남혐과 페미니즘의 온상’으로 몰린 여성가족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태세다. 거대 양당 후보 중 누가 당선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여가부가 폐지되고 이대남이 ‘안티 페미니즘’의 승리를 확인하면 그다음엔 성 평등과 젠더 화합의 장이 열릴까. 아니, 정치 공학이 젠더 갈등을 부추긴 여진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정부 5년의 결과가 안티 페미니즘의 득세라면 이를 ‘백래시(변화에 대한 반동)’ 아닌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편 이대남 담론을 거부하는 또 다른 이대남들로 구성된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이대남이라는 정치적 집단의 대표성이 고작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과 괴롭힘이라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는 청년 남성들이 겪는 문제가 페미니즘이나 어떤 페미니스트 때문이 아님을 안다”며 “우리는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을 해소하고 공존하고 싶다. 젠더 갈등을 해결해내는 것도 결국 페미니즘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