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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 점령보다 협상 염두에 둔 동시다발 제한전 위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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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작전 시나리오

"흑해함대와 크림반도 위협하지 말라" 

러시아군, 3가지 축선으로 공격
드네프르강 완충지 구축 최우선
흑해함대 상수원과 교통로 확보
수도 키예프엔 군사압박·심리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시동을 걸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의 눈치를 보며 절치부심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영토인 돈바스에 있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해 독립시키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 지역에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했다. DPR과 LPR은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이 수립한 러시아의 꼭두각시 정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주변에 러시아군 19만 명을 전개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이제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와 러시아의 군사작전만 남았다. 푸틴 대통령은 왜 이런 무리한 행동을 했을까. 그의 칼은 무엇을 목표로 어디까지 휘두를까. 성공할 가능성은 있을까.

세 가지 작전 시나리오
 우크라이나 서쪽을 제외한 3면을 포위하고 있는 러시아군이 전면전을 감행하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전선이 확대되고 나토군의 견제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전면전보다 심리전을 곁들인 제한전 또는 국지전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서북지역 공략이다. 우크라이나 북쪽 친러 벨라루스에는 러시아 1군 예하의 기갑 및 포병부대가 배치돼 있다. 양국은 연합훈련도 했다. 1군은 서유럽에 대비해 모스크바를 지키는 가장 큰 지상군 부대다. 그런데 서쪽 폴란드와 루마니아에는 미군과 나토군이 증강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섣불리 우크라이나에 깊이 들어갔다가 나토군과 우크라이나군의 협공을 받아 낭패를 볼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 북쪽 40여㎞쯤 동서로 흐르는 벨라루스 프리피야트강 주변의 광대한 습지가 장애물이다. 이 습지는 2월 말부터 녹기 시작해 3월엔 진창이 된다고 한다. 독·소전쟁 때 독일군이 혼났던 곳이다. 그런 데다 러시아군 선봉대 격인 대대전술단(BTG)은 전차와 야포 등 무기는 많지만, 병력(600~800명)과 군수지원은 제한돼 장기작전이 어렵다. 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부대다. 러시아는 전체 BTG 168개 가운데 100개를 우크라이나에 투입했다고 한다. 전차만 1000대 수준이다.

러시아군의 대대전술단의 핵심 무기인 최신 전차 T-90. 125mm 주포를 장착하고 시속 65km로 달린다. 승무원은 3명 [위키피디아]

러시아군의 대대전술단의 핵심 무기인 최신 전차 T-90. 125mm 주포를 장착하고 시속 65km로 달린다. 승무원은 3명 [위키피디아]

 미군이 분석한 BTG 전술은 적진에서 반군을 방패막이로 활용한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북부지역엔 반러감정으로 항전의식이 높다. 반군 도움 없이 나 홀로 작전해야 하는 BTG는 적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에 배치된 미군과 나토 공군이 군수지원을 차단하고, 대전차 미사일로 대응하면 BTG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따라서 러시아군은 깊숙이 침공하기보다 위력을 과시하며 협상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
 수도 키예프 공략도 쉽지 않다. 키예프 위로는 넓고 긴 호수가 있고, 좌우로는 큰 강이 흐른다. 전차부대가 지나갈 통로가 좁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항전은 심각한 장애물이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 때와는 완전히 반대 조건이다. 당시엔 크림반도 주민이 친러 성향인 데다 우크라이나도 준비가 안 돼 러시아가 거의 무혈입성했다. 설상가상 보병이 적은 러시아 BTG 전차부대는 시가전에서 맥을 못 출 것으로 보인다. 빌딩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도심에서 러시아 전차는 미국 등이 대량 공급한 대전차 무기에 녹아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러시아는 키예프를 점령하기보다 군사작전과 심리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전을 구사할 것이라는 게 미군 측 분석이다. 군사적 압력을 가하면서 사이버전과 거짓 정보(misinformation)를 흘려 키예프에 혼란을 야기해 정치 지형을 바꾸려는 시도다. (모스크바 타임스, 1월 24일자) 일종의 회색지대 전략이다.

러시아가 개발한 하이브리드전은 기갑전력 등으로 피해와 압박을 가하면서 왜곡되거나 거짓 정보를 흘려 혼란을 조성하고, 사이버전을 통해 통신 등 기반시설을 와해시키는 복합전략이다.[Dreamstime.com]

러시아가 개발한 하이브리드전은 기갑전력 등으로 피해와 압박을 가하면서 왜곡되거나 거짓 정보를 흘려 혼란을 조성하고, 사이버전을 통해 통신 등 기반시설을 와해시키는 복합전략이다.[Dreamstime.com]

드네프르강과 남부지역 점령
 둘째 시나리오다. 키예프 공략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한 푸틴이 전투 개시 명령을 내린 곳은 돈바스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친러 반군이 지난 8년 동안 전쟁을 벌여온 곳이다. 러시아는 20군 예하 부대를 동원해 친러 반군을 도와주고 있다. 푸틴은 돈바스의 친러 DPR와 LPR 2곳에 대해 분리 독립에 서명해 평화유지 명분도 만들었다. 러시아군 작전은 현재로썬 돈바스 지역에 제한하고 있지만, 푸틴의 추가 명령이 떨어지면 우크라이나 내부 깊숙이 들어갈 것이다.
 이때 러시아군은 주공(主攻)과 조공(助攻)으로 나눠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군이 주력인 주공은 드네프르강의 최대 도시인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점령을 목표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루한스크(LPR)에선 300㎞ 거리다. 남북으로 흐르는 드네프르강은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나누는 큰 강이다. 러시아가 주공작전에 성공하면 우크라이나 동쪽 절반을 완충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우크라이나군 50%가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보다는 약하지만 거의 같은 무기를 갖고 있다. T-80과 T-64 전차 등이다. 물론 첨단무기와 전술 차원에선 러시아군이 한 수 위여서 승산이 있다.
 셋째 시나리오인 조공작전은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지역의 회랑을 확보해 교두보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의 러시아군 주력과 싸우는 틈에 러시아 노보로시스크의 8군과 스티브로폴의 49군으로 구성된 조공 세력이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 도시 마리우폴을 거쳐 크림반도와 연결하는 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크림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공군과 특수부대, 흑해에 대기 중인 상륙부대가 합세할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가 남부회랑 확보에 성공하면 아조프해 연안을 장악할 수 있고,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육상 물류수송 루트를 얻는다.

러시아군 선봉부대인 BTG의 핵심 화력무기인 다연장포 TOS-1 부라티노. 30발을 15초 이내에 쏜다. 사거리는 3.5km(TOS-1A는 6km) [위키피디아]

러시아군 선봉부대인 BTG의 핵심 화력무기인 다연장포 TOS-1 부라티노. 30발을 15초 이내에 쏜다. 사거리는 3.5km(TOS-1A는 6km) [위키피디아]

 여기에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400㎞ 서쪽 도시인 부자크에 정치적 혼란을 조성하는 동시에 몰도바 트리아스폴에 주둔한 2개의 기계화 보병대대와 해병대 상륙작전 등으로 흑해 연안의 오데사를 장악할 수도 있다고 한다. (헤리티지재단 엘리슨센터 루크 코피 소장) 그럴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를 통제할 수 있고, 흑해함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푸틴의 전략과 목표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반발과 강력한 제재에도 과감한 군사작전을 결행하는 이유는 3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편입하지 않도록 차단하면서 중립화하는 것이다. 푸틴은 지난 21일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가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 수립하고, 원대한 목표인 유라시아경제연합을 추진할 수도 있다.
 둘째 목표는 흑해함대가 있는 크림반도의 안정이다. 흑해함대는 1783년부터 크림반도 남단 세바스토폴에 240년 가까이 주둔해왔는데 우크라이나가 2017년 이후엔 이전하라고 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이다. 함정 200척이 넘는 흑해함대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관할하면서 유럽 남부를 항상 견제하며 큰 소리 친다. 흑해함대가 없는 러시아는 북쪽 변방의 덩치 큰 북극곰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러시아로썬 흑해함대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크림반도에는 흑해함대 외에도 러시아 군사기지가 10여 곳이나 있다. 사실상 크림반도 전체가 러시아 군사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흑해함대를 세바스토폴에서 나가라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폐부를 찌르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2014년) 후인 2015년 4월 러시아 해군의 날을 맞아 흑해함대 함정들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해군기지 앞에서 해상사열을 연습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2014년) 후인 2015년 4월 러시아 해군의 날을 맞아 흑해함대 함정들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해군기지 앞에서 해상사열을 연습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

 그런데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지만, 늘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크림반도는 상수원 86%를 드네프르강에 연결된 운하로부터 공급받는다. 이런 여건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 뒤, 운하를 차단하면 크림반도는 생존 자체가 곤란해진다. 흑해함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또 크림반도에서 러시아로 통하는 길목인 케르치 해협의 교량은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는데 물류수송이 차단될 수 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군부대에 대한 군수지원이 러시아 노보로시스크에서 온다. 결국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위한 상수원과 육상 군수지원 수송로를 확보하려면 우크라이나 남부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동부지역을 완충지대로 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우크라이나군을 더 약체로 만드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와 싸우면 심각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지금도 어려운 우크라이나 경제는 파탄이다. 우크라이나가 다시는 딴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나라
 우크라이나는 영토는 넓지만,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끼여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일부 영토를 러시아 등에 뺏기기도 했다.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속국으로 생각한다. 돈바스 등 일부 지역엔 러시아 사람이 많이 산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냉전 때 소련의 공장이었다. 소련 핵무기 5000여 발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적도 있었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로 호적을 바꾸겠다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놔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는 탈냉전 후 부패와 국내 정치 불안, 빈약한 경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러시아로부터 벗어날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강했던 군사력은 와해했고, 동맹도 없이 떠돌이 신세로 세월을 보냈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끝없는 견제에 국내 정치로 오락가락하는 한국이 반면교사 해야 할 교훈이다.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러시아가 체첸전쟁과 조지아분쟁, 크림침공을 겪으며 개발한 전술. 군사적인 압박과 함께 조작 및 왜곡된 정보를 흘려 여론전을 형성해 상대방에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전술. 전쟁의 문턱을 넘지 않는 군사적 행동.

☞대대전술단(BTG·Battalion Tactical Group)=러시아가 2014~15년 사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쟁을 치르며 개발한 확장된 대대급 부대. 전차 10대와 장갑차 40대, 야포 12문, 병력 600~800명 등으로 구성. 하이브리드전과 결합해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 뒤 신속하게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