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만 하면 지지율 치솟는다, 푸틴이 국경선 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2.02.24 00:02

업데이트 2022.02.2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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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국 군대의 우크라이나 동부 진입을 위한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투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밀어붙이기 배경에는 정치력과 지지율에 도움을 줬던 지난 세 차례의 전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푸틴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상원이 해외파병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뒤 “군대가 당장 그곳(돈바스)으로 가는 건 아니다”면서도 2015년 돈바스 분쟁 중단을 위해 맺었던 민스크 정전협정에 대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두고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으로 규정하며 경제제재에 들어갔다.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 가능

우크라이나 동부의 정부군과 친러 분리주의자 지역 경계에 있는 루한스크(러시아어로 루간스크)주 스차스티예 발전소가 지난 22일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 비상상황부가 제공했으며, 친러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은 이날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의 정부군과 친러 분리주의자 지역 경계에 있는 루한스크(러시아어로 루간스크)주 스차스티예 발전소가 지난 22일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 비상상황부가 제공했으며, 친러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은 이날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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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푸틴이 국제법에 신경 쓰지 않은 지 꽤 됐다”며 “그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염두에 두는 것은 러시아 내 자신의 이미지뿐”이라고 지적했다.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도록 헌법까지 고친 ‘차르’ 푸틴이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2024년 대선 전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알자지라 방송이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푸틴이 군사행동에 들어간 배경의 하나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푸틴의 지지율은 69%로 지난해 11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 확산 이후 6%포인트 올랐다. 푸틴의 지지율은 전쟁 위기 때마다 이처럼 뛰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그전까지 60%대이던 지지율은 80% 이상으로 급등했다. 당시 유가 하락 등으로 경제가 곤두박질쳤지만, 러시아 국민은 ‘강한 조국’을 보여준 푸틴을 지지했다.

지난 21일 국가안보회의 뒤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가 강탈당한 곳”이라고 표현하고 돈바스 주민의 안전을 강조했다. 크림반도 병합 당시 그가 내세웠던 ‘러시아의 역사적인 유산’ ‘러시아계 주민의 구조’라는 명분과 거의 동일하다.

푸틴

푸틴

푸틴은 이번 결정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에 대항하는 ‘러시아의 생존권 투쟁’이라는 점도 강조해 왔다. 지난해 12월 연례 기자회견에서도 “지난 90년대에 나토는 동유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뻔뻔스럽게도 다섯 차례나 우리를 속였다”며 “안전을 보장하라는 게 왜 협박인가”라고 강변했다. 다섯 차례란 99·2004·2009·2017·2020년의 나토 확장을 가리킨다.

이는 2008년 조지아 침공 당시와도 비슷하다. 나토가 2008년 4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염원을 환영한다”는 선언문을 채택하자, 나토 동진에 대한 러시아 내 반발 여론이 높아졌다. 그 뒤 조지아가 자국에서 분리를 원하는 친러 소수민족 지역 정권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진압에 나서자 푸틴은 이를 빌미로 그해 8월 조지아를 침공해 닷새 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미국 등 서방은 푸틴을 비난했지만, 러시아에서 그는 서방에 맞서는 강력한 지도자로 떠올랐다. 당시 3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실세 총리를 맡고 있던 푸틴의 지지율은 2008년 9월 역대 최고인 88%까지 올라가며 차기 집권의 정당성까지 확보했다.

조지아(옛 그루지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조지아(옛 그루지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FP와 프랑스24 등은 푸틴이 돈바스 지역 정권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러시아어로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을 국가로 승인한 목적은 이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분쟁지역화하고, 나토 가입을 막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조지아는 러시아에 패배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분리하면서 나토 가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분리를 원하는 친러 지역 정권을 미끼로 쓰는 것은 푸틴이 이미 조지아 침공 당시에도 사용했던 수법의 반복이라는 지적이다. 인명 피해와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운 점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흡사하다.

2000년 체첸 수도 점령 뒤 대선 당선

정치 신인이던 푸틴이 보리스 옐친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전쟁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옐친은 1999년 8월 분리독립을 원하는 무슬림 체첸인과의 제2차 체첸전쟁이 발발하자 이틀 뒤에 푸틴을 총리로 발탁했다. 러시아군은 끈질긴 공격으로 2000년 2월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했다. ‘허약한 러시아’와의 결별이었다. 1999년 연말 옐친의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푸틴은 2000년 대선에서 처음 당선했다.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러시아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먼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무력을 이용한 정치적 목적 달성이란 측면에서 푸틴은 그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뛰어난 성적을 얻어 왔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FP는 “러시아는 조지아와 최근 우크라이나에 군사비를 줄이고, 사상자도 적게 내는 모델을 적용했다”며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고, 각종 무기를 보내는 상황에선 심각한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자칫 전면전이 벌어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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