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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오스카 후보 '미국판 응칠' 감독 "전염성 강한 젊음, 40년 걸려 만들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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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코리쉬 피자' 주인공 알라나(왼쪽)와 개리. 밴드 '하임'으로 활동중인 뮤지션 알라나 하임(왼쪽)과 실제 10대인 배우 쿠퍼 호프만이 처음 연기 도전해 1970년대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리코리쉬 피자' 주인공 알라나(왼쪽)와 개리. 밴드 '하임'으로 활동중인 뮤지션 알라나 하임(왼쪽)과 실제 10대인 배우 쿠퍼 호프만이 처음 연기 도전해 1970년대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인종 갈등(‘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종교 분쟁(‘벨파스트’), 우주 전쟁(‘듄’)까지…. 유독 묵직한 주제의 영화들이 집결한 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부문 후보 명단에서 풋내기들의 첫사랑을 그린 ‘리코리쉬 피자’(16일 개봉)는 엉뚱한 선정작처럼 보일지 모른다.
1973년 할리우드 인근의 소도시 샌 페르난도 밸리의 중학생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가 학교 행사를 도우러 온 20대 누나 알라나(알라나 하임)에게 반해 첫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할리우드의 영화 기술직들과 왕년의 스타, 지망생이 뒤섞여 살던 동네 분위기에 당대 유행가요, 핀볼장, 석유파동 등 복고풍 추억을 경쾌하게 버무렸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인기 있던 레코드샵 이름에서 따온 영화 제목(Licorice Pizza‧감초색 피자란 뜻)부터 본격 ‘할리우드판 응답하라 1973’라 해도 좋을 정도다.

16일 개봉 '리코리쉬 피자' 앤더슨 감독 #美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 후보 #칸·베를린·베니스 석권한 작품세계 변화 #1970년대 고향 무대로 첫사랑 설렘 담아 #"복잡한 현실 벗어나 사춘기 여름 떠올렸죠"

부기 나이트·마스터 감독의 첫사랑 영화

폴 토머스 앤더슨(52) 감독 작품이란 것도 놀랍다. 그는 미국 포르노 사업을 조명한 출세작 ‘부기 나이트’(1997)부터 베를린 황금곰상을 차지한 ‘매그놀리아’(1999), 베니스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은 ‘마스터’(2012) 등 음울한 시대상에 대한 통찰을 파괴적인 인간관계와 완벽한 미쟝센에 새겨왔다. 다소 낭만적 색채를 띠었던 칸 감독상 수상작 ‘펀치 드렁크 러브’(2002) 같은 예외도 있지만, 가장 최근작 ‘팬텀 스레드’(2017)는 상대를 망쳐서라도 소유하려 하는 맹목적 사랑을 숨 막히게 그렸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오른쪽)이 '리코리쉬 피자' 촬영 당시 현장에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오른쪽)이 '리코리쉬 피자' 촬영 당시 현장에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그런 그가 1970년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샌 페르난도 밸리로 돌아가 가슴설렌 청춘영화를 펼치다니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이 영화로 다음달 27일(미국 현지시간)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각본상‧각본상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그를 22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18살 때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40년이 걸려서야 자신감을 갖고 흥분된 마음으로 그때를 돌아볼 수 있게 됐어요.”
지천명을 넘긴 그의 목소리가 다시 소년 시절을 꿈꾸는 듯 부드러웠다.

역대 연출작 중 가장 ‘사랑스럽다’는 평가인데.  

“동의한다. 나이 들며 내가 부드러워졌을 수도 있지만, 알라나와 개리의 젊음 그 자체로 전염성이 강하다. 배우들의 연기에 배어난 활기, 즐거움에 관객이 반응하는 것 같다.”

전작 ‘팬텀 스레드’와 분위기가 딴판이다.

“영화감독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웃음).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절대 예측할 수 없다. ‘팬텀 스레드’는 날카롭고 폐소공포증을 겪는 듯한 영화였고 이번에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보고 싶었다.”

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아들 캐스팅한 이유는 

이번 영화는 그가 살면서 겪은 여러 순간이 합쳐지며 출발했다. 극 중 한물간 아역 배우 출신의 주인공 개리는 1970년생인 앤더슨 감독에겐 형뻘이다. “실제 유년기 추억들이 자연스레 토대가 됐어요. 저한테는 형들이 많았고 어렸을 땐 늘 그들의 모험을 지켜보는 입장이었거든요. 이젠 다들 60~70대가 됐죠.”
여기에 20년 전 그가 동네 중학교에서 한 소년이 연상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것을 인상 깊게 본 일과, 절친한 할리우드 제작자 개리 고츠먼이 실제 10대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하며 직접 물침대 판매, 핀볼장 사업을 벌인 일화를 버무려냈다.
이번 영화로 연기 데뷔한 두 주연 배우도 그런 추억의 일부다. 동명 캐릭터로 출연한 알라나 하임(31)은 극 중 자매로 나온 두 언니와 실제 ‘하임’이란 자매 밴드로 활동 중인 뮤지션. 앤더슨 감독이 7년 전부터 ‘하임’ 뮤직비디오를 여러 편 찍은 걸 계기로 이번 영화를 함께했다. 자매의 부모까지 온 가족이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알라나 하임의 어머니는 실제로 앤더슨 감독이 7~10살 시절 학교 미술 선생님이었단다. “저의 미술 실력에 엄청난 영향을 주셨죠.”

영화 '리코리쉬 피자' 주연으로 연기 데뷔한 쿠퍼 호프만은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배우 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리코리쉬 피자' 주연으로 연기 데뷔한 쿠퍼 호프만은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배우 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개리 역의 쿠퍼 호프만(19)은 2014년 요절한 배우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아버지 호프만은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 ‘펀치 드렁크 러브’(2002) ‘매그놀리아’ ‘마스터’ 등 대표작마다 출연한 페르소나 배우였다. 쿠퍼 호프만은 원래 감독을 꿈꿨지만, 이번 출연 제안으로 배우에 도전했다. 앤더슨 감독은 어릴 적부터 봐온 그에 대해 “눈에 띄게 사교적이고 노력하길 즐기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또 “영화에서 개리가 알라나와 싸우다가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에서 성난 입매가 그 애 아빠랑 똑같았다”며 옛 친구를 떠올렸다.

OTT 급부상 우려 "90분짜리 8시간 시리즈로 늘리더라"

“1970년대로 돌아간 건 복잡한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빠져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몰라요. 오늘 일어난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구체적인 사실이 너무 많아서 당장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지만, 70년대 사춘기 여름밤은 다르니까요. 학교는 방학이고 한정된 시간 동안 로맨스와 모험 거리를 찾아 나서는 일은 멋지잖아요. 사춘기 여름을 떠올릴 때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만한 그런 느낌을 영화에 담고 싶었죠.”

영화 '리코리쉬 피자'에는 반가운 스타 배우도 카메오 출연했다. 배우 숀 펜(오른쪽)은 한국전쟁 소재 영화 '원한의 도곡다리'(1954)에 출연한 실제 배우 윌리엄 홀든을 모델로 한 왕년의 스타 잭 홀든 역할로 광기어리고 유머러스한 연기를 펼쳤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리코리쉬 피자'에는 반가운 스타 배우도 카메오 출연했다. 배우 숀 펜(오른쪽)은 한국전쟁 소재 영화 '원한의 도곡다리'(1954)에 출연한 실제 배우 윌리엄 홀든을 모델로 한 왕년의 스타 잭 홀든 역할로 광기어리고 유머러스한 연기를 펼쳤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촬영을 마쳤다. 앤더슨 감독은 “운이 좋았다”면서 “팬데믹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즐겁고 다정한 영화여서 다행이다. 이런 때에 ‘팬텀 스레드’ 같은 영화를 보여드리긴 싫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부’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으로부터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인정받을 만큼 작가주의 감독으로 꼽혀왔지만, 마블 슈퍼 히어로 영화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취향으로 알려졌다. 다만 팬데믹 기간 온라인 스트리밍(OTT) 플랫폼이 인기 끌면서 시리즈물 제작이 급증한 것에 대해선 우려도 나타냈다. “90분짜리 이야기를 7~8시간짜리 이야기로 늘리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죠. 나쁜 습관이 될지 몰라요. 90분에서 2시간의 압축적인 시간 안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어려운 만큼 멋진 표현 양식인데 이걸 잃게 될까 봐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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