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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천지현황과 봄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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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최근 변시지 화백의 그림을 알게 되었다. 황학주 시인의 산문집을 통해서다. 황학주 시인은 지난해에 변시지 화백의 그림에 산문을 붙여 책으로 엮어냈는데, 시인에 따르면 서른 해쯤 전에 서울 인사동 어느 찻집에서 변시지 화백의 그림 두 점을 보고 “덜컥 처음 보는 노란색 주조의 아름다움에 끌려 둘 중 하나를 내게 팔아달라고 찻집 여주인에게 사정을 했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한 점 한 점의 그림과 거기에 붙인 시인의 산문을 읽으니 그림이 보다 잘 보였다.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그 노랑색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변시지 화백에겐 이 노랑색이, 황톳빛이 생명의 빛깔로 표현되고 있는 듯했다. 변시지 화백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읽기에 이르렀다.

변시지 그림에 두드러진 황톳빛
황톳빛은 생명력과 봄빛의 빛깔
마음의 화원에도 봄빛 들였으면

변시지 화백은 1970년대 중반에 제주로 터전을 옮겼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동양미의 관찰은 천지의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천지현황(天地玄黃), 검을 현(玄)은 하늘의 색이요, 누를 황(黃)은 땅의 색이다. 하늘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땅은 하늘로부터 받아들여 모든 형태를 만들어낸다. 사람도 그 소산이다.” 이렇게 밝혔듯이 까마득한 우주의 하늘과 넓은 땅은 그의 그림의 근간이었고, 그로부터 해를 받고 있는 땅의 색을 황톳빛으로 드러냈다. 황톳빛 땅 위에 존재하는 것들은 먹으로 그은 선을 통해 그려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을 연일 보면서 이 황톳빛은 생명의 빛깔이요, 봄의 빛깔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한기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볕이 땅에 쏟아지고 그로 인해서 땅과 우주의 빛깔이 황톳빛을 띠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 황톳빛은 땅과 생명세계의 바탕색일 테다. 그렇다면 변시지 화백이 표현한 황톳빛은 자연의 어떤 성품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돌봄, 부드러움, 자족, 수용, 겸양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배제와 내침, 거친 것, 불만과 거만함이 땅과 생명세계의 성품은 아닐 테니 말이다.

나는 이번에 새로 펴낸 신작 시집에 ‘새봄’이라는 제목의 졸시를 실었다. 시를 통해 ‘어린 고양이가 처음으로 담을 넘보듯이/ 지난해에 심은 구근(球根)에서 연한 싹이 부드러운 흙을 뚫고 올라오네// 장문(長文)의 밤/ 한 페이지에 켜둔/ 작은 촛불’이라고 적었다.

흙 아래에서 움트는 싹의 생명력을 어린 고양이의 움직임에 빗대었다. 어린 고양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담장을 넘어서 가려고 의욕을 내듯이 어린 고양이의 호기심과 용기와 모험심을 싹의 탄력에 견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의 에너지를 검은 밤의 한 페이지에 켠 작은 촛불의 불빛에 비유했다. 봄이 도래하면 꽝꽝 얼었던 흙은 그 고유의 황톳빛을 회복할 것이요, 거기에 뿌리를 내린 것들은 하늘을 향해 성장해갈 것이다.

다시 변시지 화백의 그림 ‘아침 해’를 들여다보았다. 황학주 시인은 이 그림에 다음과 같은 감상의 글을 덧붙였다. “아침 해는 마치 작은 비행기가 방향을 틀듯이 올라와 멈칫거린다. 온종일 사내의 눈이 자각하는 것은 노랑이며 손을 통해 나타나는 것도 노랑이어서 설사 그것이 노랑이 못 된다 할지라도 해 아래 흔적들은 노랗다. 그러니 해는 벌써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그림 속에는 해가 떠올라 그 빛으로 인해 황톳빛이 가득하다. 작은 집이 한 채 있고, 집 둘레엔 돌담이 있고, 한 사내는 방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하고, 집 뒤편엔 소나무, 그리고 집 바깥에는 말이 한 마리 홀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먼 곳은 바다인데, 바다에는 배가 한 척 떠 있다. 이 모든 것은 해 아래에, 하늘 아래에 있다. 말과 함께 사는, 그림 그리는 사내는 노랗게 빛나는 일광 아래 소박하고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바람이 많고, 풍랑이 있고, 외롭고 쓸쓸하지만 노랗게 빛나는 일광 아래 무욕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그림에서 먹으로 그려낸 한 사내는 사람을 이름이요, 한 마리의 말은 사람이 의지하는 다른 생명 존재를 이르고 있는 듯했다.

이제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있고, 한라산에 노란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도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봄은 있다. 땅은 황톳빛을 되찾고, 부드러운 흙에 발을 딛고서 사람도, 자라는 식물도, 움직이는 동물도 기지개를 켤 것이다.

계절의 바뀜을 알아차리고 실감한다는 것은 자연의 색감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꽃을 가까이하는 이유는 만개의 모양새와 향기뿐만 아니라 색감이 좋기 때문이다. 봄이 자연을 통해 드러내는 색감을 바라보아서 우리 마음도 봄의 채색을 받았으면 한다. 우리의 마음도 가꾸어야 할 하나의 화원인 까닭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