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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헌기의 별별시각

복합몰을 자본 횡포로 보는 건 낡은 사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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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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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헌기의 별별시각]

수도권의 한 복합쇼핑몰. [연합뉴스]

수도권의 한 복합쇼핑몰.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들의 지지세가 약했을때 ‘역사를 몰라서’라는 망언을 하여 질타받았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가 민주당이 ‘현재를 몰라서’라고 평가한다. 광주의 복합쇼핑몰을 둘러싼 논란도 비슷하다.

나는 ‘식사를 합시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당의 청년대변인으로서 2030세대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기 위해서다. SNS나 e메일 등으로 신청하면 누구든지 만나 식사를 한다. 광주의 청년들과도 만났다. 지난해 전두환 사망 직후였다.

20대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고, 광주의 청년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이에게 결코 표를 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를 찾은 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불만에서 ‘호남홀대론’을 떠올렸다.

‘호남홀대론’은 호남 사람들에겐 정치적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구는 민주당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다. 호남인들은 어차피 학살자의 후예, 민정당 계열 정당에 표를 줄 일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 질린 호남 사람들은 종종 대안 세력이 등장하면 그들을 활용해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2016년 국민의당 돌풍이 그랬다.

내가 만난 광주의 2030세대 역시 유사했다. 그들은 광주의 역사를 무시하진 않지만, 다른 지역 청년들처럼 본인의 삶의 문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싶어했다. 민주당이 현재의 당면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뛰고 역사 이야기를 할 때, 호남 유권자들과 광주 청년들은 민주당이 본인들을 정치적 인질로 잡고 있다고 느꼈다.

광주의 복합쇼핑몰 문제는 온라인상에서 몇 년 묵은 이슈다. 이를 포착한 국민의힘이 대선 시기에 주목받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물론 이게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복합쇼핑몰 유치는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이해 당사자들 간 충돌이 벌어지는 일이기에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의 소상공인, 그리고 기업이 협의체를 만들어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을 향해 이런 문제 제기는 가능하다. 오죽했으면 대선에서 이런 이슈가 통할까. 그만큼 광주엔 ‘빈 공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빈 공간’은 민주당이 ‘현재’를 외면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5년 전 대선에서 김부겸 총리는 대구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격정어린 유세를 했다. “이번에는 기회를 달라. 칠성시장 앞에 대형 기업형 수퍼마켓(SSM)이 들어올 때 우리 못난 야당만 여러분 곁에 서 있지 않았느냐.” 민주당 정치인들 대부분의 세계관이 이렇다. 물론 약자를 보호하자는 의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칠성시장 앞에 대형 SSM을 유치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그러나 광역시에 복합쇼핑몰 하나 없다는 현실도 지나친 일임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거대자본 대 소상공인 보호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보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기업과 소상공인이 상생하여 도시의 발전을 추구해야지, 거대자본은 악이고 소상공인 보호는 선이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어떤 문제도 풀 수가 없다.

심지어 일부 민주당 지지층은 호남의 저개발 상태를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낭만적 오리엔탈리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지독한 수도권중심주의의 발로다. 호남사람들 입장에서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이 논란을 통해 민주당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어느새부터 민주당이 관성에 갇혔다는 점이다. 십년 전 만들어낸 진보적 정책 대응을 지금 시대에도 고루하게 답습하고 있다. 삶의 양상이나 청년들의 욕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복합쇼핑몰 유치 논란은 이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민주당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불만들을 수용하고, 어떤 미래가치를 제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국민의힘과의 상대평가는 일단 하지 말자)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