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북한 국가주석이 6ㆍ25 전쟁을 16개월 가량 앞두고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스탈린 소비에트 연방(옛 소련) 총리겸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자개로 제작한 다량의 가구를 선물한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 통일문화연구소는 창설 50주년(2월1일)을 맞아 21일 당시 북한 내각에서 제작한 ‘쓰딸린(스탈린) 대원수에게 들이는(드리는) 선물 도해집’ 원본을 러시아에서 입수해 공개했다. 당시 37세의 내각 수상이었던 김 주석은 73년 전인 1949년 2월 22일부터 약 한 달 가까이 모스크바에 머물며 스탈린 등과 회담을 하고, 대북지원을 요청했다.
북한은 “김 주석이 생전 각국 정상 등으로부터 7만 1000여 점의 선물을 받았다”며 평북 묘향산 기슭에 국제친선전람관을 지어 전시하고 있다. 스탈린이 김 주석에게 선물한 열차(48년12월)와 승용차, 모택동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한 열차(53년11월) 등이다. 북한은 이를 김 주석의 위대성 선전에 활용하고 있는데, 김 주석이 스탈린에게 선물을 마련한 사실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에선 ‘지구상에 정치인은 김일성ㆍ김정일ㆍ김정은 뿐’이라고 선전하고 있다”며 “김 주석이 스탈린에게 선물을 준비한 건 이번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A3용지 크기의 두꺼운 도화지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제작한 도해집은 모두 30쪽 분량이다. 선물목록과 선물 사진, 선물 제작자 인적 사항 등이 한글로 적혀 있다. 또 두꺼운 도화지 각장 사이에 사진 설명을 타자로 타이핑한 창호지를 덧대 사진이 앞장에 들러 붙지 않도록 했다.
도해록에 따르면 북한이 준비한 선물은 책장과 사무용 테이블, 삼층장ㆍ이층장, 탁자, 문갑, 경대, 병풍, 보료, 평상 등 사무실 및 거실ㆍ침실용 가구 26종 36점이다. 당시 북한 고위층 또는 부자 등 특권층이 사용하는 고급 가구 일체로, 북한은 도해집에 선물로 꾸민 사무실과 거실, 침실 샘플 사진도 담았다. ‘소시민’ 출신의 최연해 등 11명이 제작했다.
특히 도해록 첫 장에는 스탈린 초상을 자개로 새긴 꽃병을 실었다. 북한은 화물열차에 선물을 실어 모스크바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선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6ㆍ25 전쟁 전문가인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김 주석은 북한 정권 수립(48년9월9일) 이후 49년 2월 22일 처음으로 소련을 공식 방문했다”며 “당시 스탈린과 회담에서 군사 및 경제 지원을 요청했고, 스탈린의 환심을 사기 위해 김 주석 측에서 정성을 다해 선물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주석은 그해 3월 5일 박헌영 부수상 등을 동반해 스탈린을 만난 자리에서 소련의 군수 및 경제 원조를 요청했다. 본지가 별도로 입수한 당시 회담 대화록(러시아 외무성 보관 자료)에 따르면 김 주석은 4000만~5000만 달러 상당의 차관을 희망했다. 스탈린은 루블로 차관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김 주석은 "미국 달러"로 요구했다. 김 주석은 또 북한-소련간 항공 운항, 소련어 선생 파견과 함께 아오지(경흥군)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인근의 그라스키노(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한 곳)간 58㎞의 철도 연결도 요청했다.
회담에서 스탈린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병력 현황에 관심을 보였고, 김 주석은 공군ㆍ해군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양측은 실무협의를 거쳐 그해 3월 11일 공장설비 관련 차관과 청진항의 소련해군 일시적 주둔, 조(북)ㆍ소항공운수회사 설립, 조ㆍ소 철도 건설 등을 4000만 달러 상당의 지원을 골자로 하는 ‘조ㆍ소 양국 간의 경제적 및 군사적 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금가격을 기준으로 현재 12억8900만 달러(약1조 5,358억 4,350만 원) 수준이다.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장은 “북한은 소련에 ‘우호 및 상호원조 조약’체결을 주장했지만 미국을 의식한 소련의 반대로 경제문화 교류협정을 체결했다”며 ”동 협정에 따라 두만강역과 하산역을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했고, 러시아의 하산역이 51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