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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산업도, 소비자 보호도 망쳤다…현 정부의 직무유기 [Law談-구태언]

중앙일보

입력

Law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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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암호화폐의 본질이 중립적인 의미의 ‘토큰’이라고 생각한다. 토큰이라는 기술 장치 위에 ‘계약’이 얹어지고 그 계약의 성질에 따라 토큰의 법적 성질과 용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암호화폐는 미래의 P2P(개인간 거래) 지급 결제 수단이자 증권이 될 수도 있고, 이용권이 될 수도 있는 토큰이다. 만약에 사토시 나카모토(익명의 비트코인 창시자)가 그의 작품을 암호화폐 또는 비트코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암호토큰(Crypto Token)’이거나 ‘비트토큰(Bittoken)’이라고 불렀으면 그 이후의 역사가 어땠을까라는 생각부터 해 본다. 그랬다면 암호화폐의 중립적 성질이 더 강조돼 한국 정부의 부정적 인식을 불러낸 ‘코인 사기단’과 암호화폐 거래소의 ‘펌핑(이유없는 가격 급등) 사기’의 폐해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 4년간 국내 암호화폐 시장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스1

정부는 지난 4년간 국내 암호화폐 시장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스1

암호화폐판 방치한 정부  

정부는 지난 4년간 암호화폐판을 방치했다.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그렇다. 2017년 9월 정부는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개최한 이후 가상통화는 ‘화폐도 통화도 금융통화상품도 아니다’라는 선언을 내놨다. 2018년 1월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조치 발언까지 5개월간 열심히 암호화폐 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려던 정부는 이후 갑자기 눈에 보이는 행보를 접었다.

암호화폐 개발기업들에는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준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정부는 더 이상 현장에 없었다. 200여개로 급증한 암호화폐 거래소마다 자전거래며 펌핑 사기가 판을 치고, 다단계 조직들이 가짜 코인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춘추전국의 시대가 펼쳐져도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사기꾼들을 솎아내는 정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암호화폐 거래를 사실상 금지했다. 이런 결과 경찰서에 사기 피해자가 고소를 해도 경찰관들이 암호화폐를 이해하지 못해 수사가 지지부진하기 일쑤였다. 암호화폐는 새로운 산업이므로 규제가 없다는 특이한(?) 논리로 금융위원회도, 방송통신위원회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공정거래위원회도, 법무부도, 경찰청도 이 산업을 방치하고 아무도 피해자를 보호하러 나서지 않았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코인) 사업자 신고 마감으로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코인 거래소의 과점 체제가 막을 올렸다. 연합뉴스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코인) 사업자 신고 마감으로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코인 거래소의 과점 체제가 막을 올렸다. 연합뉴스

특금법은 암호화폐의 전족

정부가 사실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소위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가상자산 사업자’ 제도를 도입하고 지난해 3월 25일부터 시행했다. 마침 소위 3차 암호화폐 광풍이 휩쓸고 있던 터라 국회에서도 피해 확산 우려 및 규제에 대해 논의가 되었는데, 당시 금융위원장은 “코인 시장 함부로 뛰어드는 청년들, 올바른 길 아니다. 어른들이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모두 갑자기 폐쇄될 수도 있다”라며 그동안 숨겨 왔던 속내를 드러냈다.

필자는 이미 특금법 개정안의 국회 발의 시부터“특금법은 돈세탁 방지 등 범죄 예방을 위한 법으로서 산업법이 아니므로 이를 정부의 암호화폐 산업의 제도화 내지는 진흥책이라고 보면 안 되며, 정부의 의도적 암호화폐 방치 움직임에 비춰 암호화폐 산업을 옥죄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누차 다양한 언로를 통해 경고해 왔다.

큰 돈 앞에서 자율 규제를 바라는 건 아직 무리인가? 시장은 돈놀음에 날새는 줄 모르다가 수많은 피해자를 남기고 이제 몇개 거래소 이외에는 모두 문을 닫을 처지가 현실화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극구 하지 말라고 했는데 했으니 그 피해를 모두 감수해야 할까.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빗썸 라이브센터 현황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뉴스1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빗썸 라이브센터 현황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뉴스1

법률 주무부처들의 방기

가상자산도 ‘자산’으로서 이를 거래하면 전자상거래가 된다. 전자상거래를 둘러싼 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한국에 차고 넘친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공정위), 전기통신사업법(방통위), 개인정보 보호법(개인정보위원회),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금융위, 법무부) 등이다. 그런데도 맞는 법이 없어서 방치했다니!

필자는 오래전부터 반복해 온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바람직한 규제 정책을 다시 제언하고 싶다. 토큰은 기술적 수단이고 그 성질을 가름하는 것은 ‘계약’이므로 암호화폐에 어떤 계약이 얹어지는 가에 따라 그 토큰의 성질은 달라진다고. 스위스나 싱가포르, 심지어 미국까지도 ‘유틸리티 토큰(특정 서비스 내의 이용권)’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정상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법률 의견서를 통해 ‘증권형 토큰’이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상장시킨다. 증권적 성질을 갖는 암호화폐에는 자본시장법이 적용돼 엄격한 규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금융위가 관장할 성질의 토큰과 공정위 혹은 방통위가 관장할 성질의 토큰을 기존 법 제도에 맞춰 구분하고, 각 부처가 각자 갖고 있는 소비자 보호 제도를 적극 운용해 소비자를 보호하는 합리적인 규제 정책을 정부가 취하기 바란다.

새 정부는 기존 소비자 보호 제도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의 보완적 개선에 집중하면 충분할 것이다. 현 정부의 의도적 직무 유기로 인한 암호화폐 투자 국민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 그로 인한 규제의 불투명성으로 가상자산 산업도 선도적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제라도 글로벌 국가들처럼 미래의 비자, 마스터가 생장할 수 있도록 포용적이고 성숙한 정부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로담(Law談) 칼럼 : 구태언의 Tech & Law

기술혁신의 시대에 법 규제는 어떤 철학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전통 산업과 혁신가들의 갈등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해법을 준비해야 하는지 바람직한 관점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구태언 변호사

구태언 변호사

※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크앤로우 부문장(대한특허변호사회 회장)/대한변협 지식재산권·IT 전문변호사/벤처기업협회 자문위원/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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