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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결국 2차 중재로 가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vs 어피니티 2조원대 풋옵션 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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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중앙포토]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중앙포토]

교보생명 주요 주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교보생명 주요 주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교보생명 주주간 갈등 어떻게 볼 것인가 

#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523호. 교보생명 측의 고발에 따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어피니티 컨소시엄(이하 어피니티) 관계자와 주식 가치평가를 한 딜로이트안진의 회계사 등 5명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방청석은 만석이었다. 자리를 찾지 못한 20여 명은 복도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법정에서 나오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법원은 피고 5명 전원을 무죄로 판결했다. 검찰은 15일 항소했다.

교보 기업공개 연기되며 다툼 시작 #1차 중재 판결에 서로 “승리” 주장 #FI “이달 풋옵션 2차 중재 신청” #교보 “성공적으로 기업공개 완수” #‘'어피티니=외국자본 프레임’ 잘못 #국내 연기금 자금도 들어가 있어

# 지난해 9월 초 국제상사중재원(ICC)은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과 사모펀드인 재무적 투자자(FI)와의 풋옵션 분쟁에 대한 판정을 내렸다. 어피니티는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054억원에 매입하면서 2015년 9월 말까지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최대주주인 신 회장 개인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 이를 둘러싼 분쟁에 대한 판정이 무려 2년 반 만에 나온 거다.

그런데 언론 보도는 혼란스러웠다. 신 회장이 2조원대 풋옵션 소송에서 이겼다는 보도가 많았는데 온도 차가 있었다. ‘일부 승소’ ‘절반의 승리’라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그냥 ‘승기(勝機)’를 잡았다는 정도의 분석도 있었다. 반면, FI를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ICC가 신 회장 측의 ‘패소(losing party)’라고 명확히 표현했다며 중재판정문 원문 일부를 공개했다. 과연 누가 이긴 걸까.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관련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관련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사건의 시작…백기사로 등장한 FI

풋옵션이 왜 나왔을까.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11%)과 ㈜대우(24%)는 1980년대 이후 교보생명 지분 35%를 갖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 해체로 이 지분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관리로 넘어간다.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대우인터)로 분할됐고, 교보생명 지분 24%는 대우인터로 갔다. 대우인터 대주주가 캠코였다. 캠코가 관리하는 교보생명 지분은 신창재 회장이 상속세를 대신해 낸 지분 6.26%까지 포함해 한때 42%를 넘어섰다. 당시 신 회장 지분(37%)보다 많았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캠코 지분이 통으로 매각되면 경영권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 회장은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FI를 끌어들였다. 2007년 미국 사모펀드 코세어캐피털과 스탠다드차타드(SC) 사모펀드가 주주가 됐다. 2012년 캠코와 대우인터 보유 지분이 새로운 FI에 넘어갔다. 캠코 지분 9.9%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사학연금에, 대우인터 지분 전량 24%는 주당 24만5000원, 1조2054억원에 어피니티에 팔렸다. 주주 간 계약(SHA)으로 신 회장은 2015년 9월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FI 지분을 되사들이는 풋옵션을 약속했고, FI는 그 대가로 의결권을 대주주인 신 회장에게 위임했다. 신 회장은 경영권 위협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고, FI는 안정적인 자금 회수(exit)를 보장받는 윈-윈(win-win) 계약이었다. FI의 시작은 아름다운 백기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장 여건이 나빠졌다. 저금리가 이어졌고 과거에 팔았던 고금리확정형 상품 탓에 보험사 부채가 늘어났다.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보험사 부채를 시가평가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2009년 10월 동양생명이, 이듬해 3월과 5월 한화생명과 삼성생명이 잇따라 상장했지만 현재 주가는 공모가를 한참 밑돈다. 교보생명 IPO는 계속 미뤄졌고 결국 FI는 2018년 10~11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니트 측이 산정한 가격은 주당 40만9912원, 2조122억원이었다. 신 회장이 풋옵션을 이행하지 않자 어피니트는 2019년 3월 ICC에 국제중재를 신청했고 그 결과가 지난해 9월 나온 거다.

삼성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화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화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동양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동양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래에셋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래에셋생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로 이겼다고 주장하는 이유

교보생명이 지난해 9월 6일 배포한 보도참고자료 제목은 ‘신창재 회장, 주주 간 분쟁서 승소’였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이 어피니티가 제출한 40만9000원이라는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피니티 측을 대리한 김앤장 관계자는 “최종 승소는 어피니티”라고 밝혔다. 중재판정부는 풋옵션이 무효라는 신 회장 측의 주장에 대해 “놀랄만하다”며 “2018년 FI가 행사한 풋옵션은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김앤장 관계자는 “FI 측의 법률비용 50%, 중재비용 100%를 신 회장 측이 보상하라고 명령한 것만 봐도 누가 이겼는지 분명하다”고 했다. 관련 비용은 1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HA에 따르면 FI가 풋옵션을 행사할 때 기업가치 평가를 위해 30일 내에 양 측이 각자의 평가보고서를 동시 제출하기로 약정했다. FI는 딜로이트안진을 평가기관으로 선정했지만 신 회장 측은 풋옵션이 무효라는 이유로 평가기관 선정을 하지 않았다.

한쪽이 평가기관 선정을 하지 않고 다른 한쪽만 가격을 내면 어떻게 될까. 명시적 규정이 SHA에는 빠져 있었다. ICC는 ‘계약의 공백’이라고 표현했다. ICC가 분쟁의 핵심인 풋옵션 행사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FI가 제출한 40만9000원에 신 회장이 풋옵션을 매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한 이유다.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공정가격(FMV)이 없기 때문이다. 일견 FI가 판정승을 거둔 듯한데, 당장의 실익은 별로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교보생명 사옥

교보생명 사옥

중재 갈등, 국내 법원으로 확전

분쟁은 국내 법원으로 확전됐다. 지난해 10월 인피니티는 평가기관을 선정해 FMV 절차를 이행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신 회장은 FI가 2019년 3월 자신의 자택 등을 가압류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신청을 국내 법원에 냈다. 지난해 12월 서울북부지법은 어피니티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하고 신 회장의 가압류 취소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해야 할 권한이 있는 ICC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 임시 조치인 가처분의 필요성을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며 “투자자들에게 급박한 위험이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봤다. ICC에서 해결하라고 문을 열어둔 셈이다.

형사재판 1심 판결 해석도 다르다. 김앤장 측은 “ICC에 이어 국내 법원에서도 FI의 풋옵션 행사가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확인됐다”고 봤다. 교보생명 측은 “1심 무죄 판결은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지 안진이 산출한 풋옵션 금액이 유효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결국 시시비비는 2차 중재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김앤장 측은 “이달 중 2차 중재를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중재 판정은 단심제지만 드물게 2차 중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보생명은 이번 형사 판결과 무관하게 IPO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은 IPO를 위해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교보생명 측은 “공정시장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IPO”라며 “2차 중재를 통해 이를 막으려는 행위야말로 공정시장가치 산출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 "교보생명 예상기업가치 3조"

분명한 건, 시장 여건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교보생명의 예상 기업가치를 약 3조원으로 추정했다. 단순 계산으로, 상장시 교보생명 가치가 8조원은 돼야 어피니티는 24% 지분으로 목표 수준의 투자 회수가 가능한 셈이다. FI 고위 관계자는 “IPO와 상관없이 풋옵션으로 간다”고 말했다.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측의 여론전도 거칠어졌다. 교보생명 측은 “FI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회사 이미지만 훼손됐다”고 말했다. FI 관계자는 “자기들 필요할 때는 우리를 백기사로 써먹고 결국 토사구팽당했다”고 말했다.

한 가지 꼭 첨언할 것은 이 사태를 토종 금융자본과 외국자본의 갈등으로 보는 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에는 국내 공적 연기금 자금을 굴리는 토종 사모펀드 IMM도 들어있다. 물론 외국자본이라고 해서 색안경을 쓰고 볼 일도 아니다.

FI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금융은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비즈니스 아닌가. 이번에 신뢰가 깨졌다. 앞으로 소수지분을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대주주를 믿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돈이다. 자금 회수가 늦어질수록 대주주가 불리해지는 차등배당 등의 계약조항이 복잡하게 추가될 것이다. 결국 앞으로 변호사들만 좋아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