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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훈천이 고발한다

불가사의 광주 복합몰 제로…토호세력 '가스라이팅'이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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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배훈천 광주 시민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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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신세계는 광주 버스터미널 주변에 복합쇼핑몰 건립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인근 건물에 걸려 있던 플래카드엔 "재벌유통 복합쇼핑몰 결사 반대"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픽=김현서

2017년 신세계는 광주 버스터미널 주변에 복합쇼핑몰 건립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인근 건물에 걸려 있던 플래카드엔 "재벌유통 복합쇼핑몰 결사 반대"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픽=김현서

지난해 8월 27일, 광주의 여름은 유난히 우중충했다. 흐리고 습한 데다 비까지 뿌리는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날은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가 개장한 날이다. 193m 높이의 엑스포 타워를 뽐내며 지하 3층, 지상 43층 규모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시국에 채용박람회까지 열면서 3000여 명을 신규 채용했다는 소식에 부러움을 넘어 한탄과 분노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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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동네 좋은 일을 시기해서가 아니다. 대전 신세계 아트앤싸이언스에 광주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데엔 사연이 있다. 지난 2015년 광주광역시와 신세계가 투자협약을 맺고 특급호텔과 면세점이 들어간 복합쇼핑몰을 조성하려 했지만 2년 넘게 시간만 끌다가 무산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중소상인 단체가 반발했고 이에 정치권이 편승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 결과 광주에서 막힌 7000억원대 투자가 고스란히 대전으로 옮겨갔다.

지난해 8월 대전에 문을 연 신세계 백화점의 복합쇼핑몰. [뉴스1]

지난해 8월 대전에 문을 연 신세계 백화점의 복합쇼핑몰. [뉴스1]

지난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광주 유세에서 ‘광주 복합쇼핑몰’을 언급하자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나는 ‘대기업 복합쇼핑몰 유치 광주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를 지난해 6월 조직하고 7월에 광주시민 660명의 서명을 받아 광주시의회에서 ‘복합쇼핑몰 유치 광주 시민운동 660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시 시민회의는 전국 광역시 중 광주만 유일하게 복합쇼핑몰은 물론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복합쇼핑몰 유치’가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에 오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쇼핑몰 유치에 정치를 끌어들인 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심상정 후보 모두 광주복합쇼핑몰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 유치가 무산된 주요 이유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구 145만 명이 넘는 광역시에 복합쇼핑몰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놀랍다, 처음 알았다, 문화적 충격이다"라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복합쇼핑몰의 부재가 호남의 낙후를 상징하며, 민주당에 의한 호남 홀대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한편 호남 비하가 무참하게 재현된다. ‘광주에 없는 것 총정리’라는 글이 버전을 업그레이드해가며 인터넷을 달군다. 여기에 광주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는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광주에는 5일장이 세 개나 있다”며 성난 광주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온라인으로 돌고 있는 '광주에 없는 것' 리스트. [온라인 글 캡처]

온라인으로 돌고 있는 '광주에 없는 것' 리스트. [온라인 글 캡처]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매력이 약해서 대형 유통자본이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다. 2021년 국내 5대 백화점의 국내 매출 순위를 보면 광주신세계는 12위로 대전의 갤러리아보다 높다. 해마다 인구유출이 심각하지만 2020년 현재 광주 전남 인구는 여전히 약 325만 명이나 된다. 상위권에 속하는 역외소비율까지 고려하면 복합쇼핑몰은 물론 대형 창고형 매장 하나 들어서지 못할 정도의 취약한 구매력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더불어민주당이 텃밭이라고 여겨서 호남을 홀대하기 때문인가? 솔직히 부정하기 힘들다. 광역시별 균형발전 특별회계 예산 및 증감률을 보면 2021년 예산에서 광주가 1533억원으로 울산 다음으로 작은 규모이며, 2008년 대비 증감률에서는 -9.0%로 최하위일 뿐 아니라 전국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광주를 소홀히 한다는 걸 보여주는 자료인 셈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여당의 광주 홀대가 사실일지라도 민간 상업시설이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 불가사의한 일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지역 내 다른 개발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광주 도시철도 2호선은 2002년 최초 승인·고시된 이후 16년 동안 ‘건설이냐 백지화냐’를 놓고 논란에 논란을 거듭했다. 현 이용섭 광주시장은 전임 시장이 우여곡절 끝에 확정한 도시철도 건설안을 백지화하고 공론화위원회를 만들면서 또다시 논란을 키웠다. 각종 다툼 끝에 2019년 10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첫 삽을 뜨게 됐다.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은 또 어떠한가? 2005년 계획 수립 이후 17년째 공회전 중이다. 시민단체의 반대로 단지 내 상가 면적을 줄이게 돼 사업자를 구하지 못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법적 분쟁에 휘말려 있다. 광주 북구 임동의 방직공장 용지 재개발 사업도 비슷하다. 일신방직은 1994년 광주광역시와 도시환경개선을 위한 공장 이전, 부지개발, 대체공장 부지 조성에 합의했으나 사업이 표류하다가 2020년에 부동산 개발업체에 이 땅을 매각했다. 이후 광주시민단체 협의회를 필두로 '기라성 같은' 15개 지역시민단체를 망라하여 ‘전남·일신방직 부지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대책위와 광주시 그리고 민주당이 독점하고 있는 광주시의회는 근대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협상대상지 선정 검토 전문가 합동 TF’를 구성했다. 그 활동의 결과? 폐공장 시설물 전체 27개소 가운데 14개소를 보존하기로 하고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보존을 강조한 재개발 프로젝트는 최초”라고 자랑에 나섰다. 일제 강점기 폐공장과 고물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으면 근대문화유산이라는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속물로 취급하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민간기업의 투자가 시민단체의 반발과 갈팡질팡 우유부단한 행정에 의해 가로막힌 경우가 셀 수 없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들어서지 못한 대형마트만 해도 남광주 홈플러스, 운암동 롯데마트, 매곡동 이마트, 첨단2지구 빅마켓, 힐스테이트 첨단 롯데몰 등이 있다.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가 ‘광주에도 스타필드보다 큰 초대형 복합쇼핑몰이 있다’며 예로 든 수완 롯데아울렛이 2009년 개점한 이래 10년 넘도록 단 한 개의 대형마트나 백화점, 아울렛이 신규 출점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중대형 식자재 매장은 별다른 규제 없이 동네 요소요소에 자리를 잡아 진짜 소상공인의 소매점 씨를 말리고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잠식했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의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 저지 시위 장면. [뉴시스]

광주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의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 저지 시위 장면. [뉴시스]

유난히 광주에만 소상공인들이 많아서 복합쇼핑몰은커녕 대형마트조차 쉽게 들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위원장인 송갑석 의원은 윤석열 후보의 광주 복합쇼핑몰 공약을 비판하는 성명에서 “광주 인구 144만 중에서 60만여 명이 자영업자와 중소 상공업에 관련돼 있다. 광주의 소상공인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광주의 소상공인 종사자는 24만3000명으로 대전과 비슷하고 대구의 절반에 그친다. 인구 대비 비율로 보더라도 광주의 소상공인은 16.5%로 대구의 18%보다 낮고 대전의 16.4%와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원인일까. 첫째, 광주에 유난히 세가 강한 시민단체. 둘째, 민주당의 일당독점 지배구조. 셋째, 기층민중의 여론보다 조직된 여론에 휘둘리는 행정. 나는 이 트라이앵글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삼각 세력이 기층민중의 욕구를 억누르고 ‘나눔과 연대의 광주정신’을 내세워 광주시민을 ‘가스라이팅’한다.

호남의 토호세력은 조선 시대 양반의 행태를 빼닮았다. 기층민중에게는 정신적인 가치를 내세워 물질적인 욕구를 죄악시하면서 본인들은 서울에 따로 기거하면서 풍요를 만끽한다. 민주당 측 변호사가 방송에 나와 ‘너 명품시계 차면 부자 된 거야?’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며 복합쇼핑몰에 대한 광주시민의 욕구를 비하하는 것을 보라. 호남 지배층의 ‘선비질’로 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은 일찍이 김승환 전북 교육감 행태에서 드러난 바 있다. 악덕 재벌에게는 협조할 수 없다는 본인의 신념에 따라 삼성이 저소득층 중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드림클래스에 공식적인 협조를 거부한 사건, 관내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학생들을 삼성에 취직시키지 말라고 지시한 사건이 그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 교육감 아들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유학했다.

광주시 대형쇼핑몰 유치 관련 여론조사.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광주시 대형쇼핑몰 유치 관련 여론조사.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광주로 대표되는 호남 토호세력의 전근대성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호남의 기층민중을 향한 조롱과 비하는 부당하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호남 민중은 지배층의 멸시에도 아랑곳없이 구국의 선봉에 서 왔다. 호남민중은, 그리고 광주시민은 6·10 민주화 대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역이다. 선조가 버린 나라를 이순신 장군과 함께 되찾은 주력군이다.

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윤석열 후보의 복합쇼핑몰 공약과 GRDP(지역총생산) 꼴등 발언에 대해 "철 지난 갈라치기"라고 비난하면서 “그렇다면 윤석열 후보는 대구에 가서 국민의힘의 일당독재로 대구의 1인당 GRDP가 전국 꼴등이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대구는 58조원으로 11위이며, 광주는 41조원으로 15위이다. 광주와 대구의 낙후 원인이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경쟁이 사라진 일당독점은 필연적으로 무사안일과 부패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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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호남이 잘되는 것이 영남이 잘되는 것이고 대한민국이 잘되는 것이다. 어느 대선 후보가 말하기 전부터 나라 걱정하는 광주 사람들은 다 이렇게 믿어왔다.

[하헌기의 별별시각] 복합몰을 자본 횡포로 보는 건 낡은 사고
[민주당의 인정불가] "윤석열의 계략" "타협안 만들자"
[광주시의 인정불가] 복합몰 추진 중이니 갈등 조장 말라

광주광역시 복합쇼핑몰 건립 무산을 비판하는 배훈천씨의 글에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이 보내 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광주 복합몰 추진 공약에 대한 민주당과 광주광역시의 입장을 전합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배훈천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