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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김원기·최장집 등 원로들 “최악 대선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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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대권은 없애고 민권은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대권은 없애고 민권은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국내 정치·사회·학계 원로들이 “20대 대선은 진영 대결과 적대가 역대 최악 수준”이라며 “문제의 원인인 한국의 대통령제는 이제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일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진영과 대권을 넘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다.

토론회 발제자인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회 갈등과 진영 대결이 대통령 후보라는 한 인물에 집중되고 있다”며 “최고 권력 장악이란 목표를 제외해도 과연 이토록 생사투쟁적인 갈등이 발생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준비가 안 된 후보들이 개과천선이나 환골탈태를 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며 “새 대통령과 행정부가 선출되면 대통합, 대상생의 국정운영을 해주길 호소한다”고 말했다.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미·중 대결과 양극화로 문명사적 대전환을 겪고 있는 시기에 잘 대처하기 위해 이번 대선을 과정을 잘 치르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미·중 대결과 양극화로 문명사적 대전환을 겪고 있는 시기에 잘 대처하기 위해 이번 대선을 과정을 잘 치르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이번은 처음으로 대선 이후 대한민국이 잘 될 거 같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수가 적은 선거다”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987년 군사 독재 세력이 국민에게 권력을 자진해서 반납한 뒤로 한국 민주주의가 큰 진전이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상식적인 얘기이지만 대권을 없애고 민권을 다시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선거에 너무 기대를 크게 걸기보다는 선거가 끝난 뒤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의 뜻을 합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정치 개혁의 첫 번째 과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정치 개혁의 첫 번째 과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이어 논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과 개헌 방안으로 전개됐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부터 내가 정치 개혁을 주장해왔는데 역량이 부족했는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며 “많은 개혁 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투표자의 40% 미만을 득표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상대 후보보다 한 표만 더 얻으면 모든 권력을 독식하는 게 한국의 민주주의”라며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은 더 많은 국민이 있지만 대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이들은 배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다수결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거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언론에서 지적하는 비호감 대선의 원인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 참석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언론에서 지적하는 비호감 대선의 원인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정당 제도를 먼저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선욱 전 이화여대 총장은 “한 후보는 당원도 아니었는데 당의 대선 후보가 됐고, 다른 후보는 의회 경험이 전혀 없다”며 “이런 후보들을 선출한 정당의 제도 발전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성철 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도 “대표가 당론을 정하면 국회의원들이 다 따라야 하는 정당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미국은 국회의원이 당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며 “대통령제와 헌법을 고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거란 오해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헌법개정 시민운동을 해온 이상수 전 노동부장관은 “권한을 분산하고 협치를 하자는 것에 모두 동의가 돼 있는데 문제는 대선 후보들이 관심이 없다”며 “대선까지 보름밖에 안 남았지만 후보들에게 정치 개혁과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5일과 다음 달 2일 열리는 대선 후보 방송토론회에 참석자들이 질문지를 보내고 답변을 받자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대선 후의 정국이 어디로 갈 것인지 매우 불안하고 걱정스러워서 이렇게 급작스럽게 대화모임을 열게 됐다”며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지 승자 독식의 대권 정치가 더욱 심화할 거 같다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엔 이외에도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박은정 전 권익위원장, 박인제 변호사(법무법인 두우), 이대근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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