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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초청 받고도 안 갔다…뮌헨 '안보올림픽' 韓외교 실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최대 규모의 연례 국제안보포럼인 뮌헨안보회의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초청을 받고도 가지 않은 것으로 21일 나타났다.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국의 정상급 및 장관급 인사들이 독일 뮌헨에 총출동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 글로벌 안보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에 한국 외교는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P Photo/Michael Probst. 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P Photo/Michael Probst. 연합뉴스.

'안보 올림픽'에서 발 뺀 韓

뮌헨안보회의는 안보 분야의 ‘다보스 포럼’ 혹은 ‘안보 올림픽’으로 불린다. 코로나19로 인해 화상으로 개최됐던 지난해를 제외하면 매년 독일 뮌헨에 각국의 고위급 외교ㆍ안보 분야 인사들이 모인다.

한국도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시절인 지난 2015년부터 사무국의 초청을 받아 거의 매년 참석했다. 북한의 도발 등 한반도 안보 정세도 비중 있게 다뤄지곤 했고, 지난 18일(현지시간)부터 사흘 동안 열린 올해 회의의 주요 의제는 우크라이나 사태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한국 대표로 초청 받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 장관의 부재는 다른 주요국 참석자 면면을 보면 더 두드러진다. 미국에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나란히 참석했다. 이외에도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 마리스 페인 호주 외교장관 등이 참석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등도 자리했다. 각국 정상급 인사 30여명, 장관급 및 국제기구 수장 100여명이 참석했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뮌헨안보회의는 사전에 초청 받은 인사들만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회의 대부분이 비공개이기 때문에 직접 참석하지 않으면 회의 중 논의된 내용을 즉각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준비를 이유로 불참했다가 "북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선제 타격론이 뮌헨에서 한창 거론돼도 외교부는 실시간 파악조차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다.

이에 강 전 장관은 그 이듬해인 2019년부터는 2년 연속으로 뮌헨안보회의에 직접 참석했는데, 당시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까지 열어 "뮌헨안보회의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히는 등 중요성을 부여했다. 당시 회의를 주재했던 국가안보실장이 지금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다.

20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발언하는 모습. EPA/RONALD WITTEK.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발언하는 모습. EPA/RONALD WITTEK. 연합뉴스.

"韓이 유럽에 가스 지원" 발언도 나왔는데...

이처럼 뮌헨안보회의의 무게감을 잘 아는 정 장관이기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으로 회의에 불참한 데 대한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회의에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유럽 안보 관련 세션에서 "한국이 스와프 계약을 통해 EU에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할 의사가 있다"고 말하는 등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한국의 경제안보와 직결된 논의도 이뤄졌다.

또 지난 19일(현지시간)에는 회의 참석 차 뮌헨에 있던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간 긴급 회담도 열렸다. 이날 회담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추가로 침공할 경우 금융ㆍ경제 제재가 있을 것"이라는 공동성명도 나왔다.

오는 24일(현지시간) 미ㆍ러 외무장관 회담을 앞두고 뮌헨에서 미국이 동맹과 우방을 규합하는 사실상의 전략 회의가 열린 셈이다. 한국이 G7 회원국은 아니어도 현지에 있었다면 다양한 양자 및 다자 접촉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하다면 고위급 회담을 갖는 등 외교적 기회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는 뜻이다.

19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외무장관 긴급회담에 참석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EPA/Alexandra Beier. 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외무장관 긴급회담에 참석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EPA/Alexandra Beier. 연합뉴스.

외교부 "곧 있을 파리 출장과 내용 겹쳐 불참"

정 장관이 회의 기간 시급히 다룰 다른 현안도 특별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이 지난 14일 하와이 출장에서 귀국한 이후 뮌헨안보회의가 종료된 20일까지 외교부 출입기자단을 비롯해 외부에 공개된 장관의 주요 일정은 없었다.

정 장관은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인도ㆍ태평양(인태) 협력에 관한 장관회의' 참석 차 출국했다. 정 장관이 뮌헨안보회의 참석 의지만 있었다면 프랑스 방문 전 인접국인 독일을 거치는 식으로 출장 동선을 충분히 묶을 수 있었다는 뒷말도 나온다.

정 장관의 뮌헨안보회의 불참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중앙일보에 "금년도 뮌헨안보회의의 경우 여러 외교 일정, 의제, 참석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정 장관이 22일(현지시간) 참석할 '인태 장관 회의'와 의제 및 참석자가 상당 부분 겹친다는 설명이다. 다만 인태장관회의는 유럽연합(EU)이 인태 지역 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보다 폭넓게 시급한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뮌헨안보회의와는 급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뮌헨안보회의에서 주요하게 논의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경제 안보 등 측면에서 한국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 또 최근 이어졌던 북한의 도발 등 한반도 정세도 당사자인 한국이 회의에 참석했다면 충분히 논의될 수 있었다"며 "한국이 선진국을 자부하면서도 정작 글로벌 외교의 장에서 존재감을 부각하지 못한 채 한반도 중심 외교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하와이에서 열렸던 한ㆍ미ㆍ일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뉴스1.

지난 12일(현지시간) 하와이에서 열렸던 한ㆍ미ㆍ일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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