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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태화의 별별시각

중국은 우정·존중의 올림픽 정신 준수하라

중앙일보

입력

홍태화 국제관계 연구자

자오리젠 대변인님, 안녕하십니까. 중국 외교부는 거의 매일 브리핑을 하더군요. 최근 몇 주간 브리핑 주제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었습니다. 대변인께서는 "(미국 동맹들이 외교적 보이콧을 통해) 편견과 거짓말로 올림픽을 방해하려 하며, 이는 올림픽 정신을 위배한다"고 하셨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1956년 대만의 멜버른 올림픽 참가를 허용하자 중국은 아예 선수단을 안 보냈던 걸 잊으신 건가요? 사실 저는 미국 동맹국들이 아니라 중국이 올림픽 정신, 즉 탁월함·우정·존중을 진정으로 구현하고자 하는지 의문입니다.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한 장면. [뉴시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한 장면. [뉴시스]

#첫째 올림픽 정신: 탁월함
올림픽은 중국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 왔습니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은 '세계 중심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8월 8일 8시 8분 8초에 2000개 드럼을 울리며 중국의 문명과 발전을 과시했죠.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중국의 체제 우위를 선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건재함과 '탁월함'을 보여주려고 하겠죠. 코로나를 핑계로 해외 기자단 활동은 통제하면서 일상을 회복한 듯한 모습만 부각하면서요. 코로나 초기 중국 정부가 관련 사실을 은폐한 탓에 국제사회의 대처가 늦어 지금 전 세계가 2년 넘게 고통받는데도 말입니다.

중국은 유럽에서 마스크 외교를 통해 서유럽 국가들과 그들에게 외면받은 동·남유럽 국가들 간의 분열을 꾀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디저컬 감시, 안면 인식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전파합니다. 코로나 계기로 중국 주도의 '보건 실크로드'를 구축하고, 통제와 감시의 일상화를 통해 중국식 모델의 '탁월함'을 홍보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사실 중국에선 관료의 은폐와 정치인의 무능함 탓에 코로나 사태와 같은 비극이 빚어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58~63년 대약진 운동 당시 농촌에서 수백만 인민이 아사하던 와중에도 베이징에는 '기록적 생산량을 달성했다'는 허위 보고가 난무했죠. 공산 독재의 폐쇄성이 초래한 참극입니다.

#둘째 올림픽 정신: 우정
중국 공산당은 신장에서 위구르족을 수용소에 몰아넣고, 강제 노역을 시키며 여성을 강간하고 유산시킵니다. 또 홍콩에선 1997년 반환 이후 '50년간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대만을 상대론 군사행동까지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대만·홍콩·신강 모두 중국 내정이며 핵심 이익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다른 국가들은 보편적인 가치와 원칙을 포기하더라도 중국의 '핵심 이익'을 숭배해야 한다는 오만한 태도입니다. 2011년 아세안 지역포럼에서 양제츠 당시 외교부장은 "중국은 대국이고 다른 나라들은 소국"이라고 주장했죠. 중국이 꿈꾸는 세계 질서에는 주권 평등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중국이 원하는 대외관계는 우정입니까, 폭정입니까?

대변인께서는 신장에서의 제노사이드가 "세기의 거짓말"이며 "모든 인종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 인종차별을 거론하며 "미국은 인권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 해결하려 합니다. 예컨대 미국인들은 인종차별 문제를 인정합니다. 반면 중국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한 수많은 인권운동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공산당 간부의 성폭행을 폭로한 테니스 선수 펑솨이는 정말 안전합니까?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은 올림픽 정신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을 중시해서 외교적 보이콧을 선택했습니다.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아서 비판받는 게 절대 아닙니다. 문명국가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지 않고 제노사이드를 자행하며,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뜨리고 평화를 저해하기 때문에 비판받는 겁니다.

#셋째 올림픽 정신: 존중
대변인님과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을 비판하는 미국 동맹국들을 조롱합니다. 대변인께서는 자국 내 대만 대표부 설립을 허가한 리투아니아를 가르켜  "역사의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라 비웃었습니다. 지난해 9월 환구시보는 호주를 '미국 사냥개'라고 표현했죠. 일본의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은 "독립을 포기한 친미정책"이라고 비판합니다. 어디에도 존중은 없습니다.

중국 지도층은 중국이 서구 열강의 놀이터로 전락했던 19∼20세기를 '백년국치'로 명명하며 다시는 그런 순간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집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중국 이웃들에게는 '천년굴종'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존중이 결여된, 중국이 원하는 수직적 주종관계를 수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 세계인들의 관심은 지금 동계 올림픽에 집중돼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하계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을 뛰고 있는 거 같습니다.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길고 치열한 마라톤 말입니다.

중국 전문가 마이클 필스버리 『백의년의 마라톤』에 따르면, 중국은 2049년까지 미국을 몰아내고 세계의 리더가 되려고 합니다. 그 백 년 마라톤의 9개 전략 중 마지막은 "적들에게 포위되는 것을 경계하고 피하라"입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동맹은 구시대적 유물이며, '아시아인들을 위한 아시아'를 만들자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대중봉쇄망을 촘촘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의 압박이 아닌 중국 정부 자신의 올림픽 정신 부족입니다.

이번 올림픽의 모토는 '공동의 미래를 위해 함께'입니다. 진정한 공동의 미래를 위해 올림픽 정신을 준수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