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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만진 샤넬 디자이너…‘5명의 소녀’와 10년만에 이룬 기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페넬라 차리티 레고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 레고그룹]

페넬라 차리티 레고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 레고그룹]

레고는 세계 최고 완구기업이지만 1950년대 플라스틱 블록세트가 출시된 이래 오랫동안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인식됐다. 무언가를 집중해서 조립하고 완성(성취)하는 행위가 남성에게 어울린다는 편견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0년대에 들어서도 레고의 주력 시리즈인 ‘레고시티’에 포함된 사람(미니피겨) 중에 여성은 10%에 불과했다.

1950~60년대 레고 박스. 남자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노는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사진 레고그룹]

1950~60년대 레고 박스. 남자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노는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사진 레고그룹]

그러다 10년 전인 2012년, 다섯 명의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레고 프렌즈(LEGO Friends)’ 시리즈를 내놨다. 프렌즈 시리즈는 출시 후 9년 연속 세계 레고 판매 상위 5위에 들었다. 특히 한국에선 2020~2021년 기준으로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샤넬 디자이너 출신으로 연구 단계부터 지금까지 레고 프렌즈를 이끌어 온 페넬라 차리티 레고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좋은 놀이’에 대해 들어봤다.

굳이 여자아이들을 위한 제품을 낸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레고를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고객이 늘면 당연히 고객이 ‘더 좋아할 만한’ 제품을 고민해야 한다. 레고 프렌즈는 ‘여아용 레고’가 아니라 ‘여아들이 좋아하는 레고’다.”
여자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나.
“4년 동안 전 세계 여자아이들과 엄마 1000여명을 대상으로 놀이문화를 연구했다. 그 결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소녀들은 친구 관계, 그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알록달록한 색상과 집에 있는 찻잔·문틀·화분과 같은 정교한 장난감을 좋아했다.”
레고 프렌즈의 다섯 주인공. 왼쪽부터 미아·엠마·안드레아·스테파니·올리비아. [사진 레고그룹]

레고 프렌즈의 다섯 주인공. 왼쪽부터 미아·엠마·안드레아·스테파니·올리비아. [사진 레고그룹]

레고 프렌즈 인물 피겨 모습. [사진 레고그룹]

레고 프렌즈 인물 피겨 모습. [사진 레고그룹]

레고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 친구 사이인 다섯 명의 소녀를 등장시키고, 가상의 도시 ‘하트레이크 시티’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제품으로 만들었다. 과학에 재능이 있는 올리비아, 그림과 사진을 좋아하는 엠마, 동물을 사랑하는 미아, 춤과 노래를 즐기는 안드레아, 운동에 자신있는 스테파니 등 성격과 성향, 관심사가 모두 다르다. 블록 크기는 기존 레고와 같아 100% 호환되지만 사람은 크기가 조금 크고 얼굴도 훨씬 사실적이다.

아직도 놀이에 남녀구분이 있을까.  
“아이들은 고정관념이 없는데 부모들이 문제다. 지난해 세계 7개국 부모와 6~14세 아동 7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부모들은 여전히 아들에겐 신체를 움직이거나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활동을 추천하고, 딸은 패션·제빵제과·예술 분야 활동을 하길 원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젠더 차이를 더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020년 조사결과 한국 아이 2명 중 1명은 ‘다른 성별의 장난감을 갖고 놀면 놀림당한다’고 답했다. 어린이 40%가 남들의 평가가 두려워 자기 생각을 말하기 망설여진다고 했다. 부모들이 자랄 때 겪은 사회적 분위기가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레고그룹은 2018년부터 격년으로 전 세계 부모와 아이, 성인 약 5만명을 대상으로 ‘플레이 웰 스터디(Play Well Study)’를 실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잘 놀기’위한 연구인데 레고란 이름도 덴마크어로 ‘Leg Godt(play well)’에서 따왔다.

레고그룹 실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레고그룹 실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결국 부모들이 아들·딸 놀이를 구분한단 얘긴데.
“대신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일례로 한국 부모의 과반수(62%)가 젠더 포용적이라고 생각되는 장난감만 사주겠다고 답해, 세계 평균(55%)보다 훨씬 높았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지 고민하는 부모도 58%로 세계 1위였다.”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
“팬데믹(코로나19)을 기점으로 놀이의 힘, 놀이의 중요성을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단적으로 한국 부모의 절반(50%)이 ‘아이의 미래에 공부보다 놀이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또 아이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노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며 물리적으로 더 많이 놀기를 원했다.”
놀이가 왜 중요한가.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거치며 전 세계 부모들이 자녀가 가졌으면 하는 3가지 역량은 ▶창의적 자신감 ▶회복력 ▶소통능력이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려는 의욕,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서는 용기, 내 의견을 전달하고 남을 이해하는 능력은 사회에서 꼭 필요하고, 놀이 과정을 통해 기를 수 있다.”
레고 프렌즈의 '우정 트리하우스' 제품. [사진 레고그룹]

레고 프렌즈의 '우정 트리하우스' 제품. [사진 레고그룹]

실제 프렌즈 시리즈는 역대 어떤 레고보다 ‘관계’와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정 트리하우스’의 경우 친구들이 이웃돕기 장터에 내놓을 물건을 만드는 하루를 그렸고, ‘거북이 보호 차량’은 힘을 합쳐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친구를 돕는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밖에 다양한 일화들이 TV 애니메이션과 책, 게임, 유튜브 등으로 계속 만들어져 하나의 독립적인 콘텐트로 자리 잡았다.

10년이 지났으니 제품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 삶을 바탕으로 한 역할 놀이를 매우 좋아한다. 이 점을 고려해 앞으로도 실제 세계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하려 한다. 특히 이번에 선보인 나무 심기 차량, 풍력 터빈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 휠체어를 탄 캐릭터 등과 같이 함께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세상,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메시지를 제품에 자연스럽게 반영할 계획이다. 또 10주년을 맞아 또 다른 개성을 가진 새로운 캐릭터도 곧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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