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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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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한국에선 선거 때 투표일 6일 이내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외부에 발표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의 여론조사 공표 금지 조항(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3월 9일이 투표일이니 3월 3일 이후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투표 종료까지 보도가 일절 금지된다.

사전투표땐 여론조사 보고 찍는데 #본투표자는 여론조사와 6일 격리 #요즘 시대엔 안 맞는 시대착오 규제

 2월 15~17일 실시한 한국갤럽의 대선후보 여론조사.   한국갤럽 제공

2월 15~17일 실시한 한국갤럽의 대선후보 여론조사. 한국갤럽 제공

선관위는 ‘D-6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금지 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보도되면 자칫 선거인의 진의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고,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될 경우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2020년 보도자료)고 밝혔다. 여론조사가 유권자들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나 동정심을 자극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선거 막판에 편파적 여론조사가 나오면 이를 바로잡을 시간이 부족해 특정 후보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설명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D-6 여론조사 공표 금지는 시대착오적 규제다.

 첫째, 무엇보다 사전투표(3월 4~5일)와 본투표(3월 9일)의 차별 적용이 심각한 문제다. 이번 대선에서 3월 2일까지 허용되는 최종 여론조사는 3월 3~4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게 분명하다. 사전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최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고스란히 접한 직후에 투표하게 된다. 그렇다면 본투표자는 여론조사와 6일 동안이나 격리시키면서 사전투표자는 예외로 하는 게 과연 형평에 맞는 일인가?

2월13~18일 리얼미터 대선후보 여론조사.   리얼미터 제공

2월13~18일 리얼미터 대선후보 여론조사. 리얼미터 제공

사전투표가 과거 부재자투표처럼 미미한 규모라면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2017년 대선 때 총투표자에서 사전투표자의 비중은 33.7%나 됐고, 2020년 총선때는 40.3%나 됐다. 앞으론 본투표자보다 사전투표자가 더 많아지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전투표자는 사각지대로 놔둔 채 본투표자에게만 D-6 여론조사 공표 금지를 적용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제도적 모순이다.

 둘째, 선관위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도 실체가 애매한 빅데이터 분석은 보도를 허용하는데, 이는 납득하기 힘든 이중 잣대다. 각종 포털사이트나 SNS 등지에서 유통되는 후보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는 빅데이터 분석이 여론조사의 한계를 보충하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빅데이터 분석은 여론조사처럼 통계학적으로 공인된 분석 기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자칫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2017년 대선 때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시작되자 후보들이 저마다 유리한 빅데이터 자료를 들이대며 자신이 우세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게 뻔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여론조사 공표 규제를 없애는 게 유권자들의 혼란을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셋째, 온라인에서 정보가 광속으로 확산되는 요즘 시대에 여론조사 규제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도 각 후보 측은 판세 분석을 위해 여론조사를 계속 실시한다. 공표만 못할 뿐이다. 그런데 우세 후보 측이 이 자료를 고의적으로 외부에 흘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열세 후보 측이 조작된 숫자를 퍼트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선관위가 뒤늦게 단속해 봤자 이미 숫자는 다 전파되고 난 뒤다. 카톡 몇 번이면 전 국민이 다 연결되는 세상이다. 외국 매체가 한국 여론조사를 보도해도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유럽에선 프랑스의 여론조사를 스위스 언론이 보도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프랑스의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크게 축소된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대부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규정이 없고, 있더라도 1~2일 정도인 경우가 많다. 사실 선관위도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 2016년 여론조사 공표 금지를 2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불발로 끝났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전향적 논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