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수정의 시선

중국 욕만 하지 말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 4일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24회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관중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일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24회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관중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림픽 계기 반중·혐중 목소리 커져  

동맹 강화,정체성 지킨 호주 참고할만

국민통합 바탕 둔 국익 극대화 외교 절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20일 폐막했다. 선수들의 땀, 결실에 환호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불편했던 올림픽이다. 언론 통제와 편파 판정 논란, 중화주의 애국심에 젖은 관중, 약물검출 뒤에도 출전한 15세 피겨 소녀와 그 뒤 어른들의 모습 등에서 전체주의, 권위주의 강대국들의 어두운 면이 도드라졌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1984년 LA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 역대 올림픽은 개최국 체제의 성격, 국제사회 힘의 흐름까지 보여준 역사의 상징이다. 이젠 IT 발달로 수억 명이 실시간 현장을 지켜보고 평가한다.
현장 분위기에 더해 주한 중국대사관의 상궤에 벗어난 행동으로 국내 반중(反中) 정서는 커졌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보복과 문화공정, 문재인 정부의 저자세 대중외교로 축적된 감정이다. 전체보다 개인의 삶과 자유, 공정에 예민한 청년 세대에선 혐중(嫌中)기류마저 느껴진다.
 최근 주한 호주 외교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경제보복을 당하면서도 중국에 수년간 맞서고 있는 호주의 입장을 우리 국민이 이해할 수도 있겠다"고 하자 정색하듯 답했다. “반중이 호주의 목표가 아니다. 호주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길에서 어쩔 수 없이 취하고 있는 접근법일 뿐.”
2017년 5월 말 호주에서 정부 관료·학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대화 주제는 온통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였다. 미국 중심으로 안보동맹을 맺고 있는 호주는 2000년대 이후 '아시아국'이란 지형적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10년 협상 끝에 2014년 중국과 FTA를 체결했다. 호주의 최대 수출국(38%)이자 최대 무역 흑자 상대국이 중국이고, 호주 내 유학생의 30%가 중국인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휘둘리던 한국보다 당시 중국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확연했다. 호주 방문 중 만난 한 관료는 한 달 전 중국대표단이 망친 국제회의 얘기를 하며 절레절레했다. 호주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거래 관련 회의에 옵서버로 참여한 대만을 내보내라며 줄리 비숍 외교장관의 개막 인사말을 막고 ‘깽판’을 쳤다는 거다. 2016년 중국측 자금을 받은 호주 정치인 스캔들도 있었다는데, 어쨌든 '더는 중국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 결기가 느껴졌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보도를 하던 네덜란드의 쇠르드 덴 다스 기자(오른쪽)가 중국의 보안 요원에 의해 강제로 카메라 밖으로 끌려나가는 모습. 이 모습을 네덜란드 현지 스튜디오에서 보던 앵커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NOS 트위터 캡처]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보도를 하던 네덜란드의 쇠르드 덴 다스 기자(오른쪽)가 중국의 보안 요원에 의해 강제로 카메라 밖으로 끌려나가는 모습. 이 모습을 네덜란드 현지 스튜디오에서 보던 앵커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NOS 트위터 캡처]

2017년은 호주 정부가 대외 정책 방향을 재정립하는 외교백서 태스크포스를 가동하던 때다. 호주 정부와 6개 주 정부, 해외공관, 산업계, 싱크탱크,대학의 전문가들이 총망라 돼 1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그해 11월 총리와 외교 및 상무장관이 함께 발표했다. 호주 정부가 14년 만에 낸  백서의 핵심은 패권국으로 부상한 중국. '(시진핑 집권 이후) 더 호전적이 돼 가는 중국과 민주주의 가치를 두고 충돌할 수 있으니 호주는 동맹 관계를 심화하고 생각이 비슷한 역내 국가들과 전략적 제휴를 확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자유민주주의와 정치·경제· 종교의 자유, 인권·법치 등 호주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거다. 최근 오커스, 쿼드 동맹 결성의 배경이다.
"중국의 보복은 호주의 주권을 수호하고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간주한다. 이를 두고 호주 내 논란은 없는 편"(이백순 전 호주대사)이라니, 백서를 내며 치열한 사회적 논의를 거쳤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호주 외교부에 따르면 백서는 "정부의 방향과 재량에 따라 대외 정책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때 만들며, 향후 5~10년의 가이드라인을 담은 포괄적인 틀"이라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매년 나오는 외교백서는 외교부가 부내에서 취합한 1년 외교 활동 모음집으로 자화자찬성이 짙다. 기실 우리는 국가 정체성을 지키고 국익 극대화를 위해 어떤 외교 축을 세울지에 대한 국가적 총론을 모은 적이 없다. 그러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정책은 춤을 춘다. 대선 후보들이 "영해 침입 중국, 북한 어선을 격침해 버려야 한다" "사드 같은 흉악한 것 말고 보일러 놔 드리겠다"(이재명)고 하고, "사드 추가 배치" (윤석열)란 6자짜리 공약을 툭 던져대는 데선 한숨만 나온다.
물론 한국 사회의 외교·안보 정책을 하나로 담는 과정은 쉽지 않다. 북한을 놓고 극과 극으로 나눠진 데다 대북 관점에서 파생하는 대미·대중 외교 노선도 진영의 늪에 빠져 있어서다. 하지만 하고자만 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의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 매력국가 한국의 생존과 평화번영 정책 로드맵을 짤 현인들은 많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이웃한 덩치 큰 나라들의 정체성을 온 국민이 다시 확인했다는 점은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반중 목소리만 높여서 될 일은 없다.

올림픽 계기 반중·혐중 목소리 커져 #동맹 강화,정체성 지킨 호주 참고할만 #국민통합 통한 국익 극대화 중요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