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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동의 축적의 시간

창업 때 품었던 도전적 질문으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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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플랫폼 비즈니스의 미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 뭘까.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기술혁신 전문가들은 세탁기를 꼽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한겨울에도 찬물에 손을 담그고 몇 시간씩 빨래를 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극히 공감할 이야기다. 『팩트풀니스』라는 책으로 인류가 조금씩 발전해온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던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이나 경제발전의 원인을 평생 연구한 로버트 고든 같은 학자들도 세탁기가 인류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세탁이라는 일에서 해방되어 인간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한 기여는 결코 작지 않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지구상에는 20억 명이 넘는 여성이 물을 긷고 빨래를 하는데 생의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세탁기와 더불어 인터넷을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인터넷의 기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지만, 최근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가 확산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터넷 플랫폼 덕분에 자료나 상품을 검색하는 일도 쉬워졌고, 주목받지 못하던 작가나 구석진 곳의 작은 식당들이 그동안 만나기 어렵던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잔여백신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하여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이런 플랫폼들이 없었더라면 우리 삶이 얼마나 불편했을지를 생각해보면 그 기여가 결코 작지 않다는데 대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왜 이렇게 거래해야 하나’라는 혁신적 질문이 창업 밑거름
혁신의 기수로 환영받던 플랫폼 비즈니스, 이젠 혁파 대상돼
국회 통과 ‘구글 인앱결제방지법’ … 외국도 규제 벼르고 있어
플랫폼 사업자, 규제 파고 넘으려면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그러나 최근 플랫폼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차가워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각국의 정부도 플랫폼 비즈니스를 규제하기 위한 칼날을 벼리고 있는 중이다. 한때 칭송받던 비즈니스가 왜 이렇게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을까. 전통적인 공정거래 규제의 시각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독점적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피해를 끼치는지가 주된 관심이었지만, 플랫폼의 경우 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특성상 네트워크 효과에 의한 고착효과를 만들기 위해 소비자에게는 낮은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랫폼은 소비자의 반대편에 수많은 생산자가 물려있고, 이들도 수수료를 지급하는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의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각국의 공정거래 관련 기관들이 플랫폼 기술의 특성을 반영한 공정거래 규제 원칙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시행을 막기 위한 ‘인앱결제방지법’이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뉴스1]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시행을 막기 위한 ‘인앱결제방지법’이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뉴스1]

최근 국제적으로 일고 있는 플랫폼 규제논의에서는 수수료 등 가격문제보다 플랫폼의 독점적 행태가 장기적으로 경쟁을 가로막고, 그에 따라 미래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사실 경쟁과 혁신의 관계는 오래된 질문이다. 1980년대 미국 독점통신회사였던 AT&T의 분할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과 같은 의미의 플랫폼 비즈니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한 자연독점을 누리고 있던 AT&T에 대해 미국 정부는 1983년 강제분할을 명령했다. 독점체제가 혁신적 통신서비스의 등장을 가로막음으로써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 후 새로운 통신서비스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이래 미국의 부활을 이끈 신경제(New Economy) 붐의 기초가 되었다. 1998년부터 시작되어 2002년에 종결된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기 익스플로러에 대한 분할 소송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송의 결과 익스플로러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구글 등 혁신적인 인터넷 기업들이 탄생할 지평이 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 멀게는 1948년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으로 불리는 영화사 규제도 있다. 20세기 전반기 동안 할리우드 거대 영화사들이 상영관이라는 플랫폼을 장악한 채 자사 제작 영화를 독점적으로 상영해왔는데, 이를 금지하기 위해 영화사가 상영관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법이다. 이 덕분에 많은 신생영화사의 살길이 트였고, 영화산업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플랫폼에 대한 각국 정부의 움직임을 보다 보면 이 과거 사례들이 데자뷔처럼 떠오른다. 2021년 8월 국회가 결의한 구글의 인앱 결제 규제법이 대표적이다. 구글의 자체 내부결제 시스템으로만 결제할 수 있도록 강제한 것을 금지함으로써 많은 앱개발자들에게 숨통을 터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의 법 통과 이후 국내외의 수많은 앱 개발자가 글로벌 규제 움직임에 첫발을 뗀 한국의 조치에 열광했고, 글로벌 게임 개발회사 대표는 ‘나는 한국인이다(I am a Korean)’라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플랫폼 비즈니스를 규제하고자 하는 거대한 글로벌 추세를 감안하면 약과다. 미국 의회는 인앱 결제 금지뿐 아니라, 플랫폼이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며, 무차별적인 M&A를 규제하는 등 여러 개의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유럽도 빠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디지털 시장법’을 통해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자사 서비스를 우대하는 것을 금지토록 할 계획이다. 모두 가격의 문제라기보다 시장의 경쟁을 저해함으로써 혁신의 원천을 말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국제적인 움직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고, 오히려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비대면이 상시화되고 우리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플랫폼에 의존하게 될수록 플랫폼의 행태가 더 눈에 띌 것이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세상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플랫폼 비즈니스는 창조적 파괴의 바람을 몰고 오는 혁신의 기수로 환영받았다. 여러 산업에서 기존의 강고한 지대구조를 깨는 도전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운송 서비스에서부터 금융, 숙박, 엔터테인먼트, 정보비즈니스 등 플랫폼이 뒤흔든 산업 생태계는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이 플랫폼 비즈니스 스스로 경쟁과 혁신을 가로막으면서 혁파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몇 가지 일들도 있었다. 2019년 8월 애플이 애플TV 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을 위해 향후 6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대학교의 경영학 교수이면서 성공한 연쇄 창업가이기도 한 스콜 갤러웨이는 이 계획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23개 캠퍼스 전체에 투자되는 것과 같은 큰 규모의 돈이 애플의 플랫폼 독점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를 주느냐는 쓴소리다. 최근 논란이 된 카카오의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문제도 비슷하다. 합법적이었고,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측면도 분명 있지만, 혁신이 사라진 자리에 자본의 논리만이 남았다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졌다. 혁신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의 규제강화 움직임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들도 억울할 만하다. 세금 쓰는 국가기관이 아닌 다음에야 독점플랫폼을 구축하고 운영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이를 수익으로 회수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히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이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에 비해 규제 측면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독자적인 플랫폼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사실상 우리나라가 유일하므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항변에도 플랫폼 규제에 대한 글로벌 트렌드가 역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 규제의 파도를 넘는 방법은 혁신의 기수로서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실현되지 않고 있던 기회의 장을 새롭게 발굴함으로써 순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 기업의 플랫폼 덕분에 존재하지 않던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비즈니스 장르가 각각 1조원이 넘는 글로벌 신산업으로 탄생하고, 그 와중에 수많은 창작자가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기술혁신의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모습도 필요하다. 좁은 국내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는 전략도 더 역점을 기울여야 한다.

플랫폼은 수많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라는 바다에 떠있는 섬이다.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는 당시 청년 기업가들의 도전적인 질문, 즉 ‘왜 이렇게만 거래하고 소통해야 하나’라는 혁신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처음 창업할 때 가슴속에 있었으나 조금씩 희미해진 그 최초의 도전적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