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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재련은 고발한다

법정 서는 '아이의 공포'는 생각지 않나···6대 3 '헌재 판결'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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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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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위에 올려진 무게만 맞추면 공평한가? 공정이란 무엇일까? 자꾸만 이 생각이 맴돈다.

지난해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례법)에서 정한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한 영상녹화진술을 형사 법정 증거로 사용하는 걸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과잉금지원칙 위반이 이유였다.
현행 성폭력 특례법은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피해 진술을 할 때 영상녹화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수사기관 혹은 법원은 피해 아동을 다시 소환하지 않고 이 피해진술 영상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은 영상녹화물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서 증언하고 피고인 측 반대신문에 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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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한 가장 큰 이유는 피고인의 반대 신문권 보장이다. 법정에서 조사나 신문을 최소화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한다는 공익과 피해자 진술의 왜곡·오류를 막는 동시에 피고인 측의 반대 신문권 보장이라는 사익을 비교했을 때, '법정에서의 2차 피해 최소화 장치'는 이미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반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는 심대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한 거다.

재판관 9인 중 6인이 위헌 결정을 했다. 나머지 3인은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진술'의 약점이 아닌 '피해자' 공격에 집중해 수치심·공포 등 2차 피해를 발생시켜 미성년 피해자에게 심리적, 정신적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소수의견을 냈다. 구체적 사안별로 재판부가 반대신문의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직권으로 증인소환이 가능하기에 과잉금지원칙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다.

헌재 결정 후 피해자지원단체 등에서는 "미취학 피해 아동까지 법정에 세우겠다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아동이든 성인이든 피해자 말이라고 다 믿어야 하는 건 아니다"면서 반긴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녹화 증거능력을 폐기한 헌법재판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1]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녹화 증거능력을 폐기한 헌법재판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1]

이 결정을 보며 그간 성폭력 피해자 법률지원을 해오며 느꼈던 답답함이 다시 떠오른다.
법률사무소에서 단둘이 만나 피해를 이야기할 때는 세세한 내용까지 말하다 법정 증인석에 앉아서는 그저 "예, 아니요" 정도의 말밖에 못 한 학생, 피고인 측 변호사의 교묘한 말꼬리 잡기 신문에 말려들어 속수무책 추궁을 당하던 학생, 공소사실과 무관하지만 사소한 거짓말이 드러나 무죄판결 난 사건….

표현 못한다고 피해를 부정당해서야 

그런가 하면 친족 성폭력 사건 1심에서 피해자가 증언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공판검사가 안타까운 마음에 "혹시 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하자 피해자가 피고인석에 앉은 아빠를 향해 “밥은 잘 먹고 있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말을 듣자마자 피고인 변호인이 벌떡 일어나 "학생, 학생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어요, 지금이라도 솔직히 이야기해요"라고 말했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피해자가 친부로부터 성폭력 당한 사실이 없음에도 지원단체와 변호사 꼬임에 넘어가 허위진술을 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으로 밥은 잘 먹는지 물은 것 아니겠냐"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피해자가 법정 증언을 마치고 나와 고개를 떨구며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변호사님, 제가 너무 말을 못해서 속상하셨죠?" 그렇다. 피해 학생이 정말 말을 못했다. 그러나 말을 잘 못 했다고 어린 아동의 피해가 부정당해서야 되겠는가? 1심은 무죄였으나, 다행히 항소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구성원들이 지난해 6월 대검찰청 앞에서 스쿨미투 피해자 신상정보를 노출한 검사, 판사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구성원들이 지난해 6월 대검찰청 앞에서 스쿨미투 피해자 신상정보를 노출한 검사, 판사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또 다른 친족 성폭력 아동피해사건은 증인으로 출석한 중학생에게 재판장님이 증언 말미에 “증인이 이다음에 애인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을 텐데, 그때쯤 아빠를 고소한 사실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라고 묻는 일도 있었다. 그런 질문을 들어야 하는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법정에서 눈물이 났다. 당시 피해자는 한참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에야 “아빠가 저를 성폭행한 것보다 판사님이 저런 질문을 한 게 더 속상하다”고 했다. 당시 판사는 유죄 실형 선고를 했다. 아마 피해자의 증언이 믿을만한지 확인하려고 한 질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판사 의도와 상관없이 그 질문은 어린 피해자에게 너무나 큰 상처가 되었다. 법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들이다.

2차 가해 빈번한 법정 

생각해보자. 이런 일이 일상이라면 어린 피해자는 법정을 어떻게 느끼겠나. 업으로 법정을 드나드는 변호사에게도 법정은 긴장되는 곳이다. 높은 법대 위에 검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판사는 흡사 저승사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판사는 일목요연하게 작성된 서면이나, 육하원칙에 입각해 말하는 변호사·검사 화술에 익숙하다.
그런 판사들 눈높이에서 봤을 때 법정 증인석에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피해자는 뭔가 거짓말을 해서 겁먹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부수적 내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짓 발언이 드러나면 중요 범죄사실에 대한 증언의 진실성에 의심을 품는다.

피해자들 기억 속 피해 경험을 제대로 진술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의 문이 열려야 기억의 문이 열리고, 기억의 문이 열려야 상세히 진술할 수 있다. 그게 실체적 진실 발견의 열쇠가 된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아동·청소년은 무방비 상태로 법정에 서야 한다. 처음 만난 어른들 앞에서 자신의 피해에 대해 오류 없이 모순 없이 진술해야 한다. 발생 1년도 더 지난 일일 수도, 경찰과 검찰에서 이미 몇 차례 진술을 한 이후일 수도 있다. ‘언제까지 이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고 내뱉어야 하나, 괜히 신고했나'라는 후회가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압도할지 모른다.
이제라도 빨리 피해 아동·청소년이 법정에서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 최소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신속한 수사 및 재판 진행, 공정한 재판절차 참여권 인정, 엄중한 책임 부담 등의 조치 등이다.

우선 신속한 사건 진행을 위해 처리 기간을 명문화해야 한다. 사건 발생 시점부터 1년 이상 지난 상태에서 피해 아동을 법정에 세우고, 잊기 위해 노력하는 사건을 다시 세세하게 떠올리게 하는 건 그 자체로 2차 가해다.

피해자도 재판에 참여해야 

두 번째로, 일본처럼 피해자에게도 재판절차 참여권을 인정해야 한다. 검사와 별개로 피고인과 대등한 형사 절차 참여권을 인정하여야 한다. 피해자도 피고인처럼 수사과정에 제출된 증거, 피고인신문조서, 수사자료를 열람해서 검토 후 재판에 참여하고, 증인, 피고인에 대한 신문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제출한 자료, 진술 조서를 모두 복사해 그 행간까지 분석한다. 반면 피해자는 피고인 신문조서 한장 열람하지 못한 채 깜깜이 상태로 법정에 출석해 오로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진술한다. 매우 공정하지 못하다. 피고인의 반대 신문권 보장이 헌법상 권리라면 재판절차에 주체로 참여하는 피해자의 권리 또한 헌법상 권리이다.
세 번째로, 독일 형사소송법에서처럼 아동·청소년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사항은 재판장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피해자 증언을 탄핵하기 위한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사항은 곳곳에 함정이 숨겨져 있다. 그 질문의 법적, 사회적, 맥락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 어린 피해자가 정교한 답변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피고인의 반대 신문권 보장은 반대신문을 통해 피해자의 기존 진술 중 왜곡이나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동요시키거나 흥분·좌절시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어렵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방어권 향유에 대해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고의로 피해자가 입지 않아도 되는 2차 피해를 보게 했다면 유죄판결 시 가중요소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지원했던 사건 중 특히 어린 피해자를 떠올려 본다. 피해 말하기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상처였다. 끊임없는 진실성을 의심받는 사건 진행 과정, 왜 더 일찍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이 고스란히 그들의 맨살에 송곳처럼 박혀 들었다. "말하지 말걸 그랬어요, 그냥 참을 걸 그랬어요,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잖아요,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어요"라며 후회하던 어린 피해자들의 고통의 무게를 떠올려봤다.

저울 한쪽에는 피해 아동이 앉아 있다, 또 다른 저울에는 가해자가 앉아있다. 그 무게는 어떻게 재야 할까? 눈에 보이는 균형만 맞추면 되나. 피해 아동의 가슴속에 똬리 틀고 있는 성폭력의 상처, 고통의 무게를 우리는 합산하고 있는가? 적어도 피고인의 방어권 무게만큼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공정한 것이다.

[김대근의 인정불가]피고인 방어권 보장은 헌법적 가치다
[별별시각]헌법재판소 결정문과 소수의견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 관련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김재련 변호사의 글에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이 보내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또 헌재 결정문을 소수의견과 함께 소개합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김재련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